고인돌은 유럽에서 기원전 3500년,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에서는 기원전 1500~1300년경 등장했다. 무덤 위에 큰 돌을 덩그러니 올려놓았을 뿐이다. “저것이 뭐 그리 대단할까?”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핵심은 돌이 아니다. 인류가 드디어 추상적인 개념, ‘죽음’을 떠올렸다는 점이다.
물리적인 형상을 넘어 진정한 가치를 발견하려면, 상상력을 꼭짓점까지 끌어올려야 한다. 폐허 속 고대 유적을 감상할 때도 마찬가지다. 지나간 문명의 번영과 멸망의 역사를 오늘로 불러오려면, 상상력이 필수적이다.
2019년 11월 튀르키예 에페소스에 있는 고대 그리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지역을 관광했다. 비잔티움 수학자 필론이 ‘세계의 7개 경관’ 중 하나로 꼽은 곳이다. 최고 번성기였던 고대 로마 시대에 무려 25만 명이 거주했으며, 이곳 항구를 통해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가 연결되었다.
방화와 지진, 그리고 종교적 이유로 파괴되어 자취를 감췄다가 1874년에야 발굴되기 시작했다. 약 15퍼센트 정도만 발굴된 이곳 입구엔 길이 549미터, 넓이 10.7미터의 대리석으로 잘 포장된 '아르카디아네 대로'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도심과 항구를 연결했던 길 양편에 휑하니 기둥만 남아 열병식을 한다. 바다가 4.83킬로미터나 물러나 항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쯤 아르테미스 신전의 영광도 종말을 고했다.
조금 더 가면, 서기 125년에 완성하여 고대 건축물 중 최고로 평가받는 ‘켈수스 도서관(대문 사진)’이 나타난다. 전면만 남아 있지만, 에페소스 건축물 중 유일하게 원형이 보존된 유적이다. 2층으로 이루어진 도서관은 당시 1만 권 2천여 권 이상의 책을 소장했다. 멀지 않은 고대 이오니아 도시국가 페르가몬 도서관의 20만 권,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60만 권에 비해 양적으로 열등했다. 그러나 이것은 아테네의 식민국가 에페소스가 상업뿐만 아니라 학문의 중심지였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상상력은 인간을 동물과 구분한다. 그리고 상상력에 기초한 창조성은 예술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다.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 드농관 중앙 계단에 이르면, 대리석 조각상 한 점이 관람객을 맞는다. 고대 그리스의 대표 조각상 <사모트라케의 니케>다. 여신은 오른쪽 발을 앞으로 내민 채 허리를 살짝 틀었다. 바람에 휘날리는 옷자락과 활짝 편 여신의 양 날개는 금방이라도 하늘로 치솟아 오를 듯하다.
1863년, 프랑스 샤를 샹프와조가 에게해 북서부의 작은 섬 사모트라케에서 머리와 양쪽 팔이 없는 길이 328센티미터 크기의 몸통을 발견했다. 그 후 주위에서 118개의 파편을 찾았고, 오스트리아 고고학 파견대가 뱃머리 형태를 발견함으로써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파편을 통해 조각상은 오른쪽 팔꿈치를 살짝 구부린 모습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오른손으로 어떤 행동을 취했다는 방증이다. 니케가 ‘승리의 여신’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올리브 가지, 즉 승리자에게 하사하는 월계관을 들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사토 가쓰노리가 CG로 제작했다. 그리고 1880년에는 벤도르프와 하우저가 다른 모델을 만들었다. 뱃머리에서 오른손으로 승리의 트럼펫을 부는 니케의 모습이다.
결론적으로 얼굴은 어려워도 최소한 오른팔 정도는 복원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박물관 측에서는 나중에 알려질지 모르는 원 조각상의 이미지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손대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경이로움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복원은 여신상의 날개 하나와 왼쪽 가슴 정도에서 그쳤다. 나머지는 관람객의 상상에 맡기겠다는 결정이었다. 오히려 이 점이 호기심을 불러일으켜 관객 각자의 이미지를 창출하는 힘으로 작용했다. 몰입했다는 뜻이다.
문학적 상상력은 국가 정체성까지 규정한다. 고대 로마의 시성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가 그것이다. 당시 이탈리아반도의 최강대국은 에트루리아였다. 그들은 속국 로마의 국왕과 유명 가문을 배출했다. 그리고 문자, 예술, 아치 공법, 마차 경주와 함께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로마에 전수했다.
베르길리우스는 로마 최초의 시인 리비우스 안드로니쿠스가 라틴어로 번역한 ≪오디세이아≫를 읽었을 것이다. 베르길리우스는 호메로스처럼 국가 서사시를 써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그는 로마의 정체성을 에트루리아나 고대 그리스에서 찾지 않았다. 트로이 전쟁의 패배자 아이네이아스를 선택했다. 그는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패한 후 불타는 조국을 뒤로하고 도망친 트로이의 영웅이었다.
베르길리우스는 트로이가 그리스와 근본이 다르지 않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패자를 선택한 것은 나약함이 아니라 그리스와의 차별성을 부각하는 대안이었다. 그리스 문화에 로마를 접목한 것이다. 훗날 이탈리아 작가 알리기에리 단테가 그의 서사시 ≪신곡≫에서 베르길리우스를 저승의 안내자로 삼은 것이 우연이 아니다.
상상력은 예술가만 지닌 특권이 아니다. 이성의 열매라고 할 수 있는 과학에서도 상상력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데모크리토스는 빵의 냄새를 통해 원자를, 뉴턴은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만유인력을 끌어냈다.
같은 맥락에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은 "과학이 별의 구조를 분해하여 고유의 아름다움을 빼앗아 간다"라는 시인들의 불평을 근거 없다고 일축했다. 자신의 상상력은 회전목마를 탄 채 드넓은 하늘을 가로질러 무한히 뻗어나갈 수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팔로마산 천문대의 헤일 망원경으로 하늘을 바라보면, 이 우주가 태초의 출발점에서 서로 멀어져 가고 있음을 누구나 느낄 것이다. 이 거대한 이동 패턴의 의미는 무엇이며, 이런 일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조금 안다고 해서 우주의 신비함이 손상되지 않는다. 진리란 과거의 어떤 예술가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경이롭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는 영생불멸을 제외하곤 신의 영역을 넘보고 있다. 상상력 덕분이다. 이 점을 고려한다면, 상상의 세계는 허구가 아니다. 검증되지 않은 현실이다. 상상하지 않는 사람은 지금 여기에 머물지만, 상상하는 사람은 오늘도 시공간을 확장한다. 청년이여! 마음껏 상상하라. 그 상상력을 믿고, 새로운 미래를 창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