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과 대한민국 아파트 신화

by 노인영

신을 위한 건축가가 가우디라면, 르 코르뷔지에는 인간을 위한 건축가였다. 그는 고민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잿더미가 된 곳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이들을 위한 집은 어때야 하는지를. 그는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고 스스로 결론 내렸다.

권위적인 기존의 건축 양식을 모두 접고, 돔이노(domus 집+inovation 혁신)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리고 도시로 몰려든 서민을 위해 작은 공간에 위생적이면서 실용적인 주택을 짓기 시작했다. 비용 절감을 위해 공기를 최대한 단축하려고 필로티 구조를 선택했다. 최소한의 공간에 최대 효과를 내기 위해 ‘모듈러 다이어그램(전체 시스템의 기능을 구조적으로 구분, 각 기능을 모듈 단위로 표현한 도구)’을 적용했다. 또한 183센티미터 키의 남성이 팔을 들어 올렸을 때 적절한 천장 높이 2.26미터를 도출했다.

이런 시도와 관련 당시 많은 사람은 그를 미친 사람처럼 취급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이 직접 계산해 본 후 격려 편지를 썼다.


“악을 어렵게 하고 선을 쉽게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비례라는 척도입니다. 어떤 사람은 당신의 모듈러가 비과학적이라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나는 이것이 세상을 바꿀만한 연구라고 생각합니다.”


1952년, 르 코르뷔지에는 마르세유에 방 337개, 1,6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최초의 현대식 아파트를 드디어 완성했다. <유니테 다비타시옹>, 당시로선 혁신이었다. 대한민국에서도 아파트를 따라 지었다. 그런데 다른 곳과 달리 꺼질 줄 모르는 신화가 되었다.




폴 고개, <순결의 상실(혹은 ‘봄의 각성’, 1891)>

혁신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회화사를 장식한 화가 한 명, 한 명이 모두 혁명가다. 그만큼 예술에서 독창성은 큰 대접을 받는다. 그중 대한민국에서 미운털이 박혀 평가 절하된 폴 고갱은 상징주의 2세대를 대표한다.

그의 <순결의 상실(부제 ‘봄의 각성’)>은 제목부터 모호하다. 수동적으로 누워 있는 여성과 손에 꺾여 있는 꽃을 중심에 놓으면, ‘순결의 상실’을 의미하는 듯하다. 그러나 지켜보는 여우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 여인의 무심함, 멀리 보이는 결혼식 행렬, 자극적인 원색을 묶으면, 자연의 순환으로써 ‘봄의 각성’이 그럴듯하다.

고갱의 독창성은 색채에 있다. 그는 “조화를 위해서라면, 색을 임의로 사용할 권리가 화가에게 있다”라는 태도를 보였다. 이 그림에서도 들판을 비현실적인 빨간색을 칠해 몽환적인 세계를 표현했다. 이후 그의 혁신은 상징주의 ‘나비파’와 앙리 마티스의 ‘야수파’로 이어졌다.



인류의 등장 또한 혁신으로부터 출발했다. 직립보행이 그것이다. 뇌가 커지고 구강 구조가 바뀌었다. 손이 자유로워지면서 불을 사용하고, 문자를 만들었다. 산도(産道)가 좁아지고, 다른 동물과 달리 아기의 얼굴을 돌려 낳았기에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해졌다. 차제, 뛰어난 지구력을 이용하여 함께 사냥하면서 사회적 동물로 성장했다. 그러다가 기원전 약 1만 년 전 어느 날부터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길렀다.

그럼, 인류의 혁신은 항상 올바른 방향으로 진행되었을까? 아니다. 이전 수렵 채취 시대의 삶은 농경 생활과 달리 윤택했다.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놀 수 있었다. 그래서 사회구조는 단순, 평등했다. 게다가 영양실조와 전염병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척박한 농경 시대에 오히려 인구가 급증했다. 식습관, 이유식 등장 등으로 엄마의 호르몬 작용에 변화가 생겨 출산 기간이 4~5년에서 2년으로 단축되었기에 가능했던 현상이었다. 결과적으로 농경의 발달은 유전자 차원의 혁신, 즉 변이로 인해 다양성이 확대되었다.

반면, 인구 증가는 인류에게 비극을 던져 주었다. 많은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더 넓은 농경지가 필요해지자, 인류는 제한된 땅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계급이 생겼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수렵·채취 생활로 되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적자생존, 지속적인 혁신만이 대안이다.


그러나 혁신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천 개의 가닥과 연결되어 있기에 치열하게 공부하고, 토론하고, 검증해야 한다. 행동경제학자 조지 로웬스타인의 “어느 정도의 무지는 용납하겠지만, 우리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라는 말에 동감한다.

처음부터 환영받는 혁신은 없다. 혁신의 우월한 점이 분명하게 드러난다면, 그것은 이미 혁신이 아니다. 따라서 혁신에는 강력한 저항과 수 없는 실패가 필연적으로 뒤따른다. 하지만 혁신이 주류로 자리 잡히면, 신념으로 발전한다. 독선적인 주의, 주장을 반복하면서 새로운 혁신의 장애물로 바뀐다.

천동설도 처음 등장했을 때는 훌륭한 과학이었다. 그러나 1,500여 년 동안 인류의 역사를 지배하면서 이데올로기로 변했다.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자에게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다그쳤고, 에디슨의 직류가 테슬라의 교류를, 최초의 전위예술 인상주의자가 고갱의 화풍을 공격했다. 따라서 혁신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도 틀린 아이디어와 실패를 관용적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여야 한다.


영국 항공기 제조업체 드 하빌랜드의 창업자 제프리 하빌랜드 경은 아들 제프리가 DH108 시험 비행하다가 음속 돌파 중 사고로 죽는 슬픔을 겼었다. 최신 프로토타입 DH110도 1952년 판버러 에어쇼에서 추락했다. 기체가 산산조각이 나면서 두 명의 조종사와 27명의 관객이 사망하고, 60명 이상의 중상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다음 날 에어쇼에는 전날 사고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14만 명이나 모였다. 혁신과 진보를 위해서라면, 어떤 위험도 감수할 수 있다는 시대적 정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더욱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비용이 과거에 비해 훨씬 높아졌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사회적 관용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요조건이다.


다시 아파트 이야기로 돌아가자. 르 코르뷔지에는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아파트를 지었다. 하지만 아파트는 매우 획일적인 공간이다. 수요자의 다양한 개성을 반영하지 못한다. 르 코르뷔지에 자신도 말년에 ‘4평짜리’ 오두막집을 해변가에 짓고 살았다.

어느덧 대한민국에서는 34평 아파트가 백억 원을 웃돈다. 문제는 돈이 아니라, 동일한 공간에서 그만한 가치를 창출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그런데도 최근 들어 서울과 일부 수도권 지역에서 아파트 가격은 물론 전세가도 천정부지로 상승했다. 아파트 한 채가 없다면, 가만히 앉아서 애써 모은 돈을 까먹는 형국이었다.

전세 만기가 다가오자, 나도 부랴부랴 임장에 나섰다. 아뿔싸, 대한민국 아파트는 여전히 거주 공간이 아니었다. 투자 혹은 투기 자산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었다. 세상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 내 생각을 바꿔야 했다. 어렵게 수도권에 집을 마련했다. 물론 아파트다.


돈이 부동산에 묶이지 않고, 증시로 옮겨가야 한다는 정책 방향에 동의한다. 과밀한 서울 인구를 지방으로 분산해야 한다는 당위성도 인정한다. 그러나 국민 정서가 요지부동이다. 더욱 기발한 대안을 찾아야 한다. 재택근무를 확장하면 좋을 텐데···. 샌프란시스코 집값은 직원들이 교외로 이사하면서 떨어졌다고 하더라.

청와대, 국방부까지 몽땅 지방으로 이전하면 어떨까? 횡적으로 길게 깔린 전방 군부대도 이제는 종심 배치를 고려할 때가 됐다. 수요자가 직접 아파트 내부 설계를 하면, 최소한 공간의 다양성이라도 확보되지 않을까? 그러나 이보다 먼저 매스컴에서 실시간 부동산, 아니 최소한 강남 3구와 비교하는 뉴스를 송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곳은 이제 서민이 낄 리그가 아니다. 계층 간 골을 깊게 파고, 청년을 무력감에 빠트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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