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설 “스승은 글보다 말을 편애했다”

by 노인영

“흘러가는 것은 저러하구나.”


김훈은 ≪자전거 여행 1≫을 통해 강가에서 공자가 한 말을 이렇게 전했다. 그는 "강물 속에는 다만 진행 중인 흐름이 있을 뿐"이라고 풀어 설명했지만, 공자의 말은 대한민국 사투리 ‘거시기’와 같은 유형이다. 적절한 어휘를 찾지 못한 공자가 두루뭉술하게 표현한 말이다. 현장에 같이 있던 제자는 스승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는지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글로 옮기기에는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었으리라.


공교롭게도 공자를 비롯해 석가모니, 소크라테스 등 인류의 스승 모두가 자신이 말한 바를 직접 쓰지 않았다. 그래서 제자가 ~왈, ~가라사대, 여시아문(如是我聞, 내가 듣건대) 등으로 시작하는 어록으로 남겼다.

이와 관련 미국 칼럼니스트 에릭 와이너는 “소크라테스가 글을 의심했다”라고 주장했다. 글은 종이 위에 생기 없이 누워 있으며 오직 한 방향, ‘저자에게서 독자에게로’ 움직인다는 게 의심의 이유였다. 하지만 초기 그리스 알파벳은 소크라테스가 자기 뜻을 온전히 표현하기에 어휘가 절대 부족했을 것이다.

소리를 바탕으로 한 그리스 알파벳은 페니키아(현재 레바논) 무역 상인들이 전해주었다. 그 뒤 몇백 년이 흐르면서 혁신이 이루어졌고, 그제야 그리스 비극이 널리 퍼졌다. 이후 교역과 정복으로 희곡도 함께 전파되면서 마침내 그리스 문화가 머나먼 곳의 여러 도서관에 보존될 수 있었다.


(대문 사진: 나일강에서 맞은 '룩소르의 아침')




자크 다비드, <소크라테스의 죽음(1787)>

신고전주의 선구자 다비드의 <소크라테스의 죽음>이다. 기원전 399년 5월 7일, 소크라테스가 사약을 마셔야 하는 상황을 담았다. 다만, 실제와 달리 소크라테스의 발목 족쇄와 쇠사슬이 풀렸다. 또한 왼편에 앉아 고개를 숙인 채 괴로워하는 플라톤은 병으로 그 자리에 없었다. 다비드가 극적 효과를 위해 꾸민 구성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패전국 아테네는 전후 어수선한 정국을 수습하기 위해 정치적 속죄양이 필요했다. 이전 30인 참주제의 지도자 크리티아스, 조국을 배신한 알키비아데스가 소크라테스의 아끼는 제자였다. 트라쉬불스 정부는 소크라테스를 알키비아데스 등 청년들을 타락시켰고, 신성을 모독했다는 죄목으로 고소했다.

그는 재판을 받고도 얼마든지 살 기회가 있었다. 크라튀로스를 비롯해 주변에서는 형을 거부하라고 권했다. 판결이 정당치 못했으므로, 그것이 차라리 정의라 했다. 탈옥하여 테살리아로 망명을 가면 될 일이었다. 친구 크리톤(그림 속 소크라테스 무릎 위에 팔을 얹은 인물)이 필요한 돈을 준비했다. 그리고 11명의 형무위원과 거래를 마쳤고, 간수들과도 교감이 이루어졌다. 소크라테스의 결심만 서면, 쉽게 행동으로 옮길 일이었다.

하지만 이때의 소크라테스는 일흔 살이었다. ‘어떻게 살아갈지’보다, ‘어떻게 죽어갈지’를 진지하게 고민했을 나이다. 그는 해악을 해악으로 대처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리에 누운 그는 독이 퍼진 몸이 거의 다 식을 무렵 마지막 말을 남겼다.


“오! 크리톤, 아스켈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네. 나 대신 꼭 갚아 주게나.”


플라톤은 극작가의 길을 포기하고, 소크라테스를 따랐던 제자였다. 글솜씨를 지녔던 플라톤은 자신의 책 ≪대화편≫에 소크라테스의 언행을 기록함으로써 스승을 추모했을지 모를 일이다.


글은 단어의 선택으로 시작한다. 그 단어에는 쓰는 사람의 사상과 심리 상태가 스며든다. 나도 모르는 나의 모습까지 들어가 있기에 단어는 거울이기도 하다. 박상현은 ≪도시는 다정한 미술관≫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와 관련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한다.

아프리카 나미비아 공화국의 힘바족을 대상으로 실험했다. 함바족은 파란색을 찾지 못했다. 그들의 눈은 서양인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파란색이라는 단어가 없었기에 찾지 못했을 뿐이다. 색깔은 문화권에 따라 다르게 취급한다. 결국, 학습받고 나서야 하늘을 파란색으로 칠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언어 없는 실재(實在)가 없다”라는 후기 구조주의 언어철학과 맞닿아 있다. 언어와 대상 간 필연적인 내적 관계가 존재하지 않기에 언어는 철저하게 사회·문화적인 약속일 뿐이라는 것이 결론이다. 예를 들어, '휴대폰'은 이미 카메라를 장착한 컴퓨터로 진화한 상황임에도 여전히 전화기만 대변한다.


적절한 어휘를 고르는 작업은 지난한 일이다. 많이 공부하고, 지속적으로 훈련하여 필력을 키워야 한다. 소설가 스티븐 킹은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연습과 노력이 있으면, 괜찮은 작가에서 좋은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응원했다. 그러나 좋은 작가가 아무리 노력해도 ‘위대한 작가’로 탈바꿈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스티븐 킹이 생각하는 위대한 작가는 아예 다른 종류의 인간이었다.

어쩐지 나는 좋은 작가조차 어려울 듯하다. 치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 쓰는 행위는 언제나 즐겁다. 하루하루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흐뭇하다. 나만 즐거울 수는 없는 노릇. 자칫 가벼이 여길 수 있는 토씨(조사)와 관련한 재미난 이야기 한 토막을 들려주면서 이쯤 해서 글을 접어야겠다.


선장과 기관사가 번갈아 항해일지를 쓰고 있었다. 상대방의 항해일지를 읽지 않는 것은 불문율이었다. 술을 달고 살았던 선장이 전날 기관사가 따지고 들었던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몰래 기관사의 항해일지를 들여다보았다. 전날 일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선장은 오늘'도' 술을 마셨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선장은 불쾌했다. 그래서 기관사에게 “너무 한 것 아니냐?”라며 화를 냈다. 기관사는 일체 술을 입에 대지 않았기 때문에 꿀릴 게 없다는 태도였다. 그러나 찜찜했던 지 그는 이튿날 선장이 쓴 항해일지를 훔쳐보았다. 선장이 쓴 일지를 본 기관사는 할 말을 잃었다.


“기관사가 오늘'은' 술을 안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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