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이 눈처럼 쌓인다. 즐겁다

by 노인영

10년 전 브라이언 그린의 저서 ≪우주의 구조≫를 읽기 시작했다. 책 두께도 상당했지만, 제목만으로도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린은 어려운 과학을 쉽게 설명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우주의 언어' 수학 도식은 후주로 넘겼다. 그러나 우주의 구조는 나의 작은 두뇌에 담긴엔 너무 크고, 컴컴했다. 중도에 책을 덮을 뻔했는데, 이때 영화 <리미트리스>가 힘을 북돋아 주었다.

영화 소재는 두뇌를 100퍼센트 사용할 수 있는 신약이다. 인류는 두뇌를 평균 10퍼센트, 아인슈타인도 15퍼센트 사용했다. 지나치면, 생존 에너지가 소모되어 생명이 위험하다. 그러니 신약은 영화적 상상력의 산물이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한 여인이 약을 먹은 이후 놀라운 변화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브라이언 그린이 쓴 ≪우주의 구조≫가 45분 만에 완전히 이해가 되더군.”


대사를 듣는 순간, 귀가 번쩍 열렸다. 어깨에 힘이 팍 들어갔다. 이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자부심이 빵빵해졌다. 그래서 이해가 충분치 않았음에도 어찌어찌 다 읽었다. (얼마 걸렸는지는 묻지 않았으면 좋겠다) 중간중간 “굳이 다 읽어야 할까?”라는 회의감에 휩싸였다. 그때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에 그리스 철학자 아낙시만드로스가 피타고라스에게 던진 질문을 떠올렸다. 요즘 세상에 대입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내용이었다.


“눈앞에 사람들이 죽어가고 노예제도의 야만성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별 세계의 비밀을 캔다는 일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대문 사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아르헨티나 부에노아이레스의 '엘 알테네오')



윌리엄 터너의 <눈보라-항구를 떠나는 증기선(1842)>

영국의 낭만주의 화가 터너가 예순일곱 살에 <눈보라-항구를 떠나는 증기선>을 그렸다. 바다에 엄청난 폭풍이 분다. 물살이 커다랗게 소용돌이치며 작은 배를 순식간에 집어삼키려 한다. 관람객은 습관처럼 눈보라 속에서 흐릿한 증기선을 찾게 된다.

하지만 그림에서 배는 비교 대상일 뿐이다. 자연의 '숭고미', 눈보라처럼 몰아치는 바다의 격랑에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가쁜 숨이 가라앉으면, 차라리 터너의 색채 변화를 살펴보는 것이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된다.

터너가 실제 경험한 바다의 모습이다. 아리엘 호가 영국 해리치를 떠난 밤, 그는 선원에게 부탁하여 돛대에 몸을 묶고 무려 4시간을 버텼다.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 물에 젖은 육신으로 전해오는 추위. 어쩌면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맞서며 터너는 눈앞에 펼쳐지는 바다의 용트림을 관찰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당시 화단은 세부 묘사 위주의 감각적인 풍경화가 대세였다. 그의 그림은 “비누 거품과 회반죽 덩어리”라는 혹평을 받았다. 어떤 이는 <눈보라>와 관련된 사건도, 4시간 관찰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터너의 말에 과장이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그의 작품성을 깎아내리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그나저나 터너의 인생에서 회화가 어떤 의미였기에 이런 수고를 감내했을까?

실생활에 당장 쓸모가 없다는 측면에서 예술이나 순수 학문 모두 처지가 같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이에 평생을 바친다. 헛수고? 본능? 혹은 미쳤기 때문일까? 유클리드에게 “기하학을 이해함으로써 얻는 것이 무엇이냐?”라고 묻는 제자가 있었다. 유클리드는 하인을 불러 이렇게 일렀다.


“이 사람에게 동전 하나를 갖다 주어라. 그는 배움으로부터 반드시 이득을 보아야 하는 사림이니까.”


생물학자로 유명한 링컨 브라워 박사에게도 한 대학원생이 “제왕나비가 무슨 쓸모가 있나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박사는 “자네는 무슨 쓸모가 있는데?”라고 거꾸로 물었다. 내 속이 다 시원해지는 대꾸였다.


왜 사람들은 모든 일에서 매번 유용성을 따질까? 왜 즉각적인 흥분과 열정을 간구할까? 지식이나 지혜는 궁극적으로 진리를 지향한다. 그 발견과 탐색이 간단치 않다. 하지만 과정 자체에 기쁨이 내재해 있다. 그래서 배우고, 지식을 쌓고, 그것을 교양이나 지혜로 확장해 나가다 보면, 적어도 삶이 지겨울 틈이 없다.

특히 육십 세 이후 지식과 지혜를 구하지 않으면, 삶이 허망해지기 쉽다. 다행히 내겐 “쌓아만 두어도 영혼이 교류”하는 책이 있다. 처음엔 다독으로 대체를 잡고, 요즘은 정독을 통해 깊이 판다. 물리학자가 아닌 내게 ≪우주의 구조≫가 현실적으로 쓸모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 어찌하랴? 주식 서적보다 더 재미있는데.


슈뢰딩거가 한 강연에서 청중에게 물었다. “돌멩이와 생명체 모두 의지가 없는 원자로 구성되었다. 그런데 어찌 생명체에게만 의식이 생겼는가?”라는 요지의 질문이었다. 이에 영감 받은 왓슨과 크릭이 그 대답을 ‘DNA 이중 나선구조’에서 찾았다. 나는 이 과정이 소설만큼이나 흥미진진했다.

가난한 네덜란드계 프랑스인 장 판 헤이어노르트(Jean van Heijenoort)의 놀랄만한 인생 항로를 지지한다. 사회주의자였던 그는 스무 살 때 우연히 망명 중인 트로츠키의 비서 겸 정치적 동지로 합류했다. 스탈린과 권력 싸움에서 진 트로츠키와 함께 비밀경찰들에 쫓기면서 해외에서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냈다. 참고로 그는 트로츠키를 보살핀 멕시코 화가 프리다 칼로와 한때 연인 관계였다.

하지만 1939년, 헤어어노르트가 갑자기 트로츠키를 떠나 수리논리학을 공부했다. 스탈린, 신, 총구 앞에서도 왜곡되지 않는 진실을 찾아 나선 것이었다. 뉴욕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브랜다이스 등 미국 여러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면서 기호논리학 발전사 연구에 크게 공헌했다.



또한 나는 스위스 철학자 카를 힐티(Carl Hilty)처럼 죽기를 소원한다. 일흔여섯 살 그는 어느 가을날 아침, 여느 때처럼 펜을 놓고 딸 에디트와 함께 주네브 호반의 작은 오솔길을 산책했다. 숙소로 돌아온 그는 딸에게 우유를 마시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딸이 우유를 데워 거실로 가져왔을 때는 힐티가 소파에서 단잠을 자듯 숨을 거둔 이후였다. “충고는 눈과 같이 조용히 내릴수록 좋다”라고 했던 힐티였다. 그의 죽음이 마치 눈처럼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책상 위에는 ≪평화론≫의 원고가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참! 당시 일흔여섯은 오늘날 백 살 정도에 해당한다.


만약 사고사를 당한다면, 미국의 고고학자 리처드 S. 맥니시(Richard Stockton MacNeish)의 죽음도 괜찮겠다. 그는 1940년대 멕시코 발굴 작업 시 구덩이에서 1,683일을 보내는 대기록을 세운 바 있었다. 2001년, 여든두 살의 그는 벨리즈의 마야 유적지 발굴 작업 중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그는 여전히 부츠를 신은 채였고, 전하는 말에 따르면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가는 내내 운전자에게 고고학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는 왜 죽어가면서 운전자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고고학 이야기에 열을 올렸을까?


앞의 두 사람 모두 누가 보든 안 보든 매일매일 지식 탐구에 성실했던 인물이었다. 성공이란 이런 것이다. 내가 태어나서 이전보다 조금 더 살 맛나는 세상으로 만드는 것! 거기에 지금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함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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