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의 ≪자전거 여행≫은 여수 향일암에서 봄 바다를 바라보면서 시작한다. 김훈은 그곳 산수유, 목련, 동백 그리고 매화를 이야기하면서 봄에 지는 모든 꽃이 새를 닮아 제 이름을 부르며 죽는 것 같다고 했다. 출구 없는 그리움 때문에 그리한다고. 그러면서 김훈은 7세기 신라의 젊은 여승 설요가 남긴 시 한 줄을 소개한다.
꽃 피어 봄 마음 이리 설레니
아, 이 젊음을 어찌할거나
춘녀사(春女思)하고, 추사비(秋士悲)라고 했던가? 봄이면 여인이 사랑에 어쩔 줄 모르고, 가을이면 사내가 공연히 비장해진다. 김훈도 스물한 살 설요의 마음을 ‘대책 없는 생의 충동’이라고 했다. 그녀는 꽃 피는 봄의 관능을 견딜 수 없어, 그렇게 시 한 줄을 써 놓고 산을 내려왔다. 속세를 떠난 그녀는 결국, 시 쓰는 사내의 첩이 되었고, 당나라를 떠돌다가 통천에서 객사했다고 전한다.
(대문 사진: 향일암을 오르던 길에 발견한 시계초)
화가의 봄노래도 꽃으로 시작한다. 산드로 보티첼리의 <봄(프리마베라, 1481~1482)>에 실린 식물 500여 종 중 모두 190종의 꽃이 등장한다. 제피로스가 따뜻한 서풍을 불자, 클로리스가 ‘봄의 여신’ 플로라로 변하면서 만들어 낸 꽃과 향이다. 티치아노도 <플로라(1515)>에게 흰 속옷을 입힌 후 손에 봄꽃을 들고 있게 했다.
봄은 꽃이고, 꽃은 사랑이다. 영국 라파엘 전파의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가 <할 수 있을 때 장미꽃 봉오리를 모으라>를 완성했다. 로버트 헤릭의 시 ‘처녀들이여, 시간을 소중히 하세요’에서 영감 받았다.
할 수 있을 때 장미꽃 봉오리를 모으라
시간은 계속 달아나고 있으니
그리고 오늘 미소 짓는 이 꽃이
내일은 지고 있으려니
이 연작의 대표 작품은 녹색 중세풍 드레스를 입은 처녀가 탐스러운 분홍 장미를 은 항아리에 담아서 들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시의 첫 행을 워터하우스가 고지식하게 이미지로 옮겨왔다. 분홍, 파란색 옷을 입은 처녀들이 숲에서 싱그러운 들장미를 열심히 따서 모은다. 그런데 가시를 두려워하지 않는 맨발이다. 청순했던 그 시절, 그녀들에겐 평생 머무르고 싶은 순간이리라.
시는 원래 “젊고 아름다울 때, 노력해서 빨리 시집가라”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조금 확대 해석하면, 좋은 시절을 즐기라는 권유로 받아들여도 무방하다. 쾌락을 의미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쾌락은 죄의식을 수반하거나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그런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고통의 부재이자, 곧 삶의 기쁨이다.
“인간에게서 쾌락의 달콤한 감정을 빼앗는다면, 어떻게 선(善)이나, 천국을 상상할 수 있겠느냐?”라고 일갈했던 에피쿠로스의 바로 그 쾌락이다.
그림에 담긴 뒷이야기가 재미있다. 이 그림은 거의 100년 동안 분실되었다가 캐나다 오래된 농가에서 발견되었다. 원주인이 농가를 팔고 가면서 “보기 좋으니, 그 자리에 놔둬 달라”라는 당부와 함께 넘겨받았다고 한다. 그들 모두 그림이 지닌 금전적 가치를 몰랐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농가를 산 사람은 거의 30년 지난 후 감정을 받으면서 ‘거의 의자에서 떨어질 뻔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2007년 4월, 소더비 경매에 앞선 감정에서는 175~250만 달러로 평가받았다. 이 이야기가 흐뭇한 것은 성실하게 살아온 농부에게 다가온 행운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봄의 들판에 핀 장미꽃 봉오리와 같다.
아아! 그러나 봄도, 꽃도 마냥 즐기고만 있기엔 세상이 그다지 녹록지 않다. 1694년 봄, 두 해 연속 흉년이 들었던 프랑스 전역의 곡식 창고가 텅 비었다. 부자들이 비축해 둔 식량에 지나치게 비싼 값을 매기자, 가난한 이들은 속수무책으로 떼죽음을 맞았다. 1692년과 1694년 사이 인구 15퍼센트에 해당하는 약 280만 명이 굶어 죽었다. 태양왕 루이 14세는 여전히 정부와 즐기고 있었는데···.
현종에게 양귀비는 며느리였다. 아들 부부를 갈라놓고 혼인했을 때 현종이 예순두 살, 제2부인 양귀비가 스물일곱 살이었다. 왕의 총애를 등에 업고 그녀의 사촌이자 재상인 양국충을 비롯한 일가의 횡포가 심해졌다. 그러자, 참다못한 안녹산이 사사명과 결탁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이때 반란군의 포로 생활을 했던 시인 두보가 시대의 아픔을 <춘망(春望, 봄날 멀리 바라보며)>에 담았다.
“나라는 망했어도 산하는 그대로요 / 성 안은 봄이 와 초목이 무성하네 / 시대를 슬퍼하여 꽃들도 눈물 뿌리고 / 한 맺힌 이별에 나는 새도 놀란다네 (···)”
세상은 무정하다. 봄이 왔어도, 마음에 부는 삭풍으로 인해 몸을 떠는 이가 존재한다. 그런데도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이라곤 “오지 않은 죽음을 걱정하며 오늘을 보내지 말라”는 당부밖에 없다. 어떤 고통이든 반드시 끝이 있다. 날카롭던 슬픔도 세월의 풍화로 인해 조금씩 뭉툭해진다. 망각이 위로가 되어 주지는 않지만, 삶을 지탱하게 하는 훌륭한 기제임은 분명하다.
괴테가 로마에서 한 무리의 눈먼 걸인들 옆을 걸어갈 때였다. 행인들은 그 걸인들 대부분을 외면했다. 그런데 유독 한 명이 행인들로부터 꾸준히 적선을 받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괴테가 다가가 보니, 그 걸인이 들고 있는 종이엔 이런 글이 적혀 있었다.
“봄이 왔습니다. 그리고 저는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