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은 어제와 살고 싶은 오늘 사이에서
투석을 마치고 오는 길, 늘 그렇듯 택시를 탔다.
몸은 여느 때처럼 약간 휘청거렸지만,
날씨만큼은 유난히 좋았다.
하늘이 너무 맑아서, 마치 푸른 호수가
머리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택시는 조용히 도로 위를 흘렀다.
그러다 기사 아저씨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혹시… 투석하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은 조심스럽게 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몇 년째 투석 중인데, 너무 힘들어한다고.
매일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고.
“근데… 그걸 어떻게 견디세요?”
그 말은 가벼운 호기심이 아니라,
누군가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얼굴에서
나온 질문이었다.
나는 잠시 멈칫했다.
그 말에 내 지난 시간이 스쳐보였다.
“처음엔 저도 죽고 싶었어요.”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게 낫겠다고까지 생각했어요"
투석을 처음 시작했을 때
투석환자의 평균 생존기간이 10년이라는 말을 들었다.
십 년이라니.
투석을 하기 전에도
늘 일찍 죽고 싶다고 생각했던 나인데
오히려 그 말을 듣는 순간,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마다
그 문장이 머릿속을 따라다녔다.
어느 날은 그 말 때문에 더 죽고 싶었고,
어느 날은 오히려 그 말 때문에
하루가 더 소중해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아주 천천히,
하루가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죽고 싶다는 마음을 지나고 나니까
오히려 ‘살아 있다는 사실’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숨 쉬는 공기,
햇빛이 닿는 창문,
물 한 모금 넘기는 순간.
이런 사소한 것들이
이상할 정도로 아깝고, 아쉽고, 귀하게 느껴졌다.
나는 그 이야기를 그대로 기사님께 말했다.
그러자 그분은 나를 한 번 쳐다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진짜… 대단하시네요.”
나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 대단한 사람 아니에요.
우리 모두가 결국 죽음을 향해 가고 있잖아요.
그 사실을 알고 나면
다들 하루가 소중해지지 않을까요?"
그 말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죽음이 있다는 사실은
나를 절망하게도 했지만,
동시에 단 하루도 허투루 쓰지 못하게 만들었다.
택시가 목적지에 도착해 문을 열었을 때,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그 순간 나는 아주 미세하게,
살아 있음을 느꼈다.
오늘이라는 시간이
내겐 여전히 조금 버겁지만,
그래도 살아내고 있다는 사실이
나를 또 다음 날로 데려간다.
그리고 아마…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