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화장을 하는 이유

나를 돌보는 법

by 시아

어릴 적에는 화장이라는 게

나와는 아무 상관 없는 세계였다.

우리 집은 늘 빠듯했고,

준비물 하나 챙겨가기 어려운 날도 많았다.

남들에겐 당연한 것들이 나에겐 사치였고,

옷이나 화장품은 그저 ‘있는 사람들의 세계’였다.


그래서 나는 오래도록

나를 꾸미는 법을 모르고 살았다.

생존만 하던 시절에는

‘나’라는 존재를 돌볼 여유가 없었다.


마흔이 넘어서야 비로소 숨을 돌릴 틈이 생겼다.

경제적으로도, 마음적으로도.

그리고 여유가 생기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게 이상하게도 ‘나’였다.


그동안 미뤄두고 잊어버린 채로 살아온

내 얼굴, 내 몸, 내 마음.

돌보고 싶다는 마음이 스며들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화장을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단순히 예뻐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정말 처음으로 나를 챙기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버티기만 했던 시간들을 뒤로 보내고 나니

거울 속에는 늘어난 주름과

피곤해 보이는 피부만 남아있었다.


예전 같으면 그냥 넘겼겠지만,

이제는 그 모습이 안쓰럽고 애틋하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버텨온 나에게

작은 위로라도 해주고 싶었다.


화장을 하는 동안

나는 내 얼굴을 가장 가까이 들여다보게 된다.

눈가의 얇은 선들, 입가의 흔적들

시간이 남기고 간 무게들.


이상하게도 그걸 보며

나를 미워하게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사랑하게 됐다.

“그래, 너도 참 고생했지.”

그렇게 토닥여주고싶은 마음이 든다.


요즘 내가 화장에 푹 빠진 이유가 이것이다.

나는 화장으로 '예뻐지는' 게 아니라,

화장으로 나를 ‘챙기고’ 있다.


나를 향한 작은 관심, 작은 애정, 작은 응원.

내 얼굴에 다독이며

“오늘도 괜찮아. 고생했어.”

하고 말해주는 일.


화장은 나에게 꾸밈이 아니라,

아주 늦게서야 배운 자기 돌봄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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