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페이지처럼 살아가기

남은 페이지가 바꿔놓은 것들

by 시아

언제부터였을까.

나는 나 스스로를 '생존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삶은 누구에게나

하루하루가 죽음과 싸워 이겨낸
기적 같은 순간들의 반복이지만,
나에게는 그 말이 조금 더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내게 삶이란 오래도록
죽지 못해 버티는 시간이었고,
고통과 절망이 이어진 긴 선이었다.


매일을 어거지로 살아냈고,
잠들기 전에는

다시 내일 눈을 떠야 한다는 사실에
문득 절망했다.


그러던 내가 큰 병을 얻고
투석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처음으로 알았다.


내가 가진 책의 페이지가
얼마 남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놀랍게도 그 생각이 들고 난 뒤부터
페이지 한 장 한 장이 아까워지기 시작했다.
더 살고 싶어졌다.


그 적은 페이지에
슬픔과 절망만 가득 채우기에는
남은 분량이 너무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나의 페이지를
가장 아름다운 색과 온도로 채우기 시작했다.


행복한 기억들,
사랑하는 사람들,
따뜻한 날씨,
포근한 눈,
달큰한 꽃향기와 물들어가는 단풍들.


이제 나에게 하루는

마치 마지막 페이지처럼
너무나 짧고, 너무나 소중한 것이 되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 남은 페이지가
정말 짧은지는 사실 나도 잘 모른다는 사실을.


그저 ‘남들보다 짧을 수 있다’는 생각 하나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어놓았을 뿐이다.


사람은 언젠가 모두 죽는다.
그것은 오늘일 수도,
내일일 수도,
아주 먼 훗날일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이

내가 가진 마지막 페이지인 것처럼 살아간다면


오늘 비춰오는 이 햇살이
얼마나 따스한지
분명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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