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의 기억

백혈병 그리고 월남전.

by Dr Sung

백혈병 환자 미선인 다섯 살이었습니다. 여자 아이고요. 건강한 동생 이름은 혜선이었습니다. 연년생이라 혜선인 네 살이었습니다.


대학에 갓 입학하고 나서 다들 서클을 뭘 들까 여기저기 들여다보는 시기에 앞 번호 여자 애가 호스피스란 서클에 들고 싶다고 같이 가자고 해서 멋모르고 따라갔었지요. 뭘 하는 데인지도 잘 몰랐습니다. 호스피스? 그거 호스티스 하고 비슷하게 들린다 하는 생각만 했을 뿐. 서클 소개를 수녀님이 해주셨습니다. 다른 서클들은 그냥 학생들이 테니스반, 야구반, 오케스트라반, 밴드부 등등을 꾸려하는데 여기는 수녀님이 맡아서 운영을 하는 거 같았습니다. 이름도 호스피스 봉사단이라는 좀 별난 이름이었고요. 두세 번 모임에 따라가서 다른 선배들의 사례발표를 듣고는 하다가, 미쳐 준비도 되기 전에 환자를 맡았습니다. 호스피스 봉사단이라고도 했지만 실제로 뭐 크게 어려운 일없이, 임종환자들을 찾아보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필요한 일을 도와주는 것이었습니다. 앞번호 여자아인 고전 음상 감상반으로 얼른 옮겨갔습니다. 혼자 남은 나는 같은 반의 다른 남학생 한 명과 짝을 지어 봉사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따로 뭐 특별한 교육은 받지 않았습니다.


첫 봉사 대상자는 70대 부부였습니다. 두 분이 다 환자였지요. 할머닌 의식불명이었습니다. 할아버지도 한쪽 팔과 다리가 불편하셨습니다. 원래 2인실은 남자는 남자끼리 여잔 여자끼리였지만, 부부라 특별히 두 분이 한 병실에 입원할 수 있도록 해준 듯했습니다. 거의 1년 전 건강하시던 할머니께서 어느 날 의식을 잃은 채로 발견되어 병원으로 입원 후 할아버지께서 간병을 하셨습니다. 따로 간병인을 안 쓰고 할아버지께선 환자로 한방에 입원하고선 본인이 직접 간병을 하셨습니다. 콧줄을 통해 주사기로 유동식을 공급해 주고, 대소변을 받아내고, 한두 시간마다 자세를 바꿔주고, 수건으로 얼굴과 온몸을 닦아내고 물을 받아와 머릴 감기고, 팔다리 운동을 시키고, 그리고 소리 내어 기도를 하고. 어느 날, 주무시고 계실 수도 있어 노크는 하지 않고 문을 살며시 열고 병실로 들어갔습니다. '오 하나님! 저희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이 불쌍한 영혼의 마지막 소원이니 제발 제발 한 번만 이 사람이 단 한 나절만이라도 의식이 돌아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어린양의 마지막 소원이자 부탁입니다. 그럴 수만 있다면 저의 생명을 거두어 주셔도 제겐 여한이 없습니다. 저에게 더 이상 버틸 힘이 남아있지 않음을 느낍니다. 마지막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그날 밤 신은 정말로 나타나신 듯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할머니는 거짓말처럼 의식을 되찾아 휠체어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침대 옆으로 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할아버지의 임종을 지켰고, 저녁이 되자 갑자기 쓰러져 한날에 돌아가셨습니다. 신은 짓궂은 어린아이처럼 인간사어 개입하여 장난을 치는 거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오냐 네가 하는 기도 그대로 들어는 주마. 하지만 네가 순서는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았으니 이래도 무방하겠지?'


왜 신이 이리 짓궂은 장난을 치는 건지 화가 나고 짙은 안갯속에 갇힌 것 같은 답답함에 시달릴 때, 미선이 혜선이를 만났습니다. 거의 6개월간 제발 제발 이번만은 짓궂은 장난을 거둬달라고 매일매일 기도를 하였습니다. 다섯 살 미선인 천사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왜 신은 이 아이의 생명을 거둬 가시려는 걸까요? 당시 살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골수 이식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미선이 몸속의 암세포로 변한 백혈구들을 죽이기 위해 피를 만드는 골수모두를 항암치료, 방사선치료를 해서 모두 없애버리고, 건강한 혜선이의 골수를 주입해 주는 수술이었습니다. 당시 거의 처음 도입된 치료라 성공 가능성은 희박했고 살아날 가능성보다는 회복을 못하고 가녀린 생명이 꺼져버릴 가능성이 훨씬 컸습니다. 골수 이식하는 날에도 새벽에 일어나 기도를 하였습니다. 신이시여. 정말 목숨을 거두길 원하신다면 저의 목숨을 대신 거두어 가시고 미선일 살려주십시오. 이 아이마저 죽는다면 전 도저히 세상을 살아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신이 버린 세상 전들 무슨 애착을 갖고 살아나갈 수가 있겠습니까? 너무나도 감사하게도 신은 미선일 데려가지 않으셨습니다. 골수 이식을 하고도 일 년이 지나 미선인 완치가 되었습니다.


미선이 혜선이를 마지막으로 만나고 얼마 뒤 신은 내가 태어나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데려가셨습니다. 내가 다섯 살 때 나를 안고서 이제 전쟁터에 나가면 못 돌아올지 모르니 엄마 모시고 잘 살아라 한 분, 김포공항에 내리다가 사고로 비행기에 불이 나자 자책감에 탈출을 포기하고 불타 죽은 친구의 비석 앞에서 소리 내어 엉엉 우시던 분, 10.26 다음날 앨범을 펴고 동료들과 함께 찍은 사진을 가슴에 안고 오열하던 그분을 데려갔습니다. 울음은 이제 나의 차례입니다. 신은 그래 이래도 네가 견딜래? 하면서 시험하는 듯했습니다. 어쭙잖은 기도를 했었냐? 하고 벌주는 듯했습니다. 네가 이래도 스스로 죽지 않고 살 수 있니? 시험하는 듯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은 기도 같은 것은 하지 않으렵니다. 이런 장난을 치는 신은 믿지 않으렵니다. 그리고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세상을 온몸, 온 힘을 다해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내가 엇나가기를 바라는 신에 대한 대답으로 더 이상 신을 믿지 않고 내가 정말 사랑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자 했습니다. 그게 죽지 않고 살아남은 힘이 되었습니다. 이제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의 나이가 된 지금 내 마음속 세상과 신에 대한 원망이 많이 무디어졌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한 구석 이나마 우리 가족들이 발디디고 살 수 있게 해 준 이 세상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다시 또 신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원래 신의 뜻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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