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특이한 버릇이 있다. 드라마의 마지막 화를 남겨두고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버릇은 언제부터, 또 어떤 드라마부터 시작됐는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건 애정이 가득한 드라마일수록 더 열정적으로 마지막 화를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애써 이유를 생각해 보자면 몇 번의 좌절감을 맛봐서인지도 모르겠다 모든 드라마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가 과거에 본 대부분의 드라마들이 마지막 화에 나로 하여금 좌절감을 맛보게 했다. 아니 저기서 왜 저렇게 끝나는 거야..! 와 같이 내적비명을 일으키는 결말을 보고 있자니 자체적으로 결말을 차단시켜 버리는 게 속 편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결말로 스스로 생각한다.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이 얘기를 꺼내자 진지하게 듣던 친구는 “너 연애 못하는 이유를 살짝 알 거 같은데?”라는 예상 밖의 답변을 내놓았다 친구의 얘기를 자세히 들어보니 일리가 있었다. 드라마 마지막 화를 보지 않으려는 이유가 애정했던 상대에 대한 실망감을 느끼기 무서워서라는 것이다. 단 한 번도 연애와 연관 지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동안 “나는 드라마를 재밌게 보다가도 마지막 화는 보기 싫더라, 드라마에 대한 감정이 팍 식어버려서 더 보고 싶지 않달까”라고 뭐라도 있는 듯이 말하고 다녔지만 실상은 그저 애정하는 드라마의 무너지는 마지막을 보고 싶지 않아서였다.
사랑을 하면 1화에는 상대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고 알아가고 싶어 진다. 5화까지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대략 짐작이 가고 나랑 잘 맞겠다는 확신이 생긴다. 그리고 10화까지는 상대방에게 잘 보이기 위해 먼저 관심을 표현하기도 하고, 갈등상황을 해결하며 사랑이 더 깊어진다. 15화까지는 사랑의 절정을 느끼며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간다. 그리고 마지막 화에서는 서로에게 실망과 배신감을 느끼며 결국 헤어진다. 한 번도 빠짐없이 흘러가던, 다른 의미로 드라마 같던 나의 연애 스토리에 스스로 질린 것이다.
친구의 조언대로 가장 애정하던 드라마의 마지막 화를 보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상상 이상으로 좋았다 그동안 무서워서 피했던 내가 무색할 만큼 완벽한 마지막 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