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너는 전생에 나라를 구했냐?”
엄청난 운을 가지고 있는 친구에게 우리가 항상 하던 말이었다. 그 친구는 정말 ‘될놈될’은 있다는 걸 확신하게 해주는 친구였다. 원하던 대학부터, 취업까지 그 친구의 실력과 성적에 비해 순탄하게 합격했다. 친구는 부러워하는 나를 비롯한 다른 친구들에게 “나도 합격할 줄 몰랐는데, 운이 좋았지 뭐”라는 대답으로 응수한다. 그러면 우리는 그 친구를 향해 “전생에 나라를 구했네 운이 뭐 저렇게 좋아 주식도 사는 것마다 오르고 부러워 죽겠다!” 얼마 후 그 친구는 직장 근처에 집을 구했다며 이사를 도와줄 수 있냐고 물어왔다. 나는 당연히 yes! 를 외치며 주말에 그 친구의 집으로 향했고 이삿짐을 옮기며 깨달았다.
내가 여태 술 마시며 놀 때, 주말에 여자 친구랑 여행을 다닐 때, 밤새워서 게임을 할 때, 그 친구는 자격증을 따고, 영어 학원을 다니고, 하루 종일 자소서를 썼다. 그 모든 흔적이 그 친구의 이삿짐에 남아 있었다. 아직 정리하지 못 한 수험서들, 열심히 메모해 놓은 기록들이 나에게 ‘너는 그동안 무엇을 했냐’고 물어보는 것 같이 느껴졌다. 그 친구는 그저 우리 앞에서 공부하기 싫어서 투덜대지 않았고, 이룬 성과를 자랑하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그 친구는 특출 난 재능이 없이 그저 운이 좋았던 친구가 아니었다. ‘노력하는 재능’을 타고난 친구였던 거다.
대학도 성적에 비해 높은 대학교를 갔지만 논술을 몇 달 동안 공부해서 합격했고, 취업도 토익이 몇 문제인지도 모르지만 오픽과 전문자격증을 취득해서 합격했다. 내가 말로만 수능 공부, 토익공부를 한다고 학원을 끊고 공부는 대충 할 때 그 친구는 자신의 길로 묵묵히 가고 있었던 거였다. “야! 뭔 생각을 그렇게 해” 나는 친구들의 부름에 정신을 차리고 이사를 마저 도왔다. 이사가 끝난 후 친구가 시켜준 자장면을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괜스레 미안해진 나는 급하게 친구들을 보내고 바로 앞 대형마트에 갔다. 친구가 좋아하는 위스키를 두 병 사서 다시 친구네 집으로 갔다. 집들이 선물을 못 줬다고 대충 얼버무리며 한 병은 지금 마시기로 한다. 무슨 일 있냐는 친구의 물음에 창피함을 이겨내고 그동안의 감정을 전부 털어낸다. 친구는 호탕하게 웃으며 “하하하 그래서 다시 술 사들고 온 거야?, 너도 참 너답다” 나는 친구의 예상치 못한 대답에 나답다는 말의 의미가 부정적으로 다가오려던 찰나에 친구가 말을 덧붙였다. “매번 솔직하잖아 너 이런 점이 항상 부러워” 친구는 지금도 나의 좋은 점만 말해준다. 이런 친구를 뒀다는 뿌듯함이 창피함을 넘어 고마워진다.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을 볼 때 그 사람의 좋은 점부터 보려 한다, 그리고 더 이상 결과를 부러워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