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종종 우리 집에 들르신다
당신께서 말동무가 필요하시거나
손주들 걱정에 반찬을 싸 가지고 오신다
어느 날 할머니가 오셨고
할머니의 모습은 평소와 같았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그날은 말동무가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나와 할머니는
평소처럼 대화를 이어가며
웃고 떠들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할머니의 목소리가 떨리고
할머니의 눈이 충혈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전부터 글공부를 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공부해도 느껴지는 벽 앞에서
할머니는 소녀처럼 힘들어하셨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
외롭게 혼자서 벽을 허물다가 지치신 것이다
그리고 그 맘을 꽁꽁 숨기고 계시다가
손자 얼굴을 보고는 터진 것이다
처음 보는 할머니의 모습에 나는 어떠한 말도,
어떠한 위로도 하지 못한 채 지켜보기만 했다
우리는 살면서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은 것들이 있고
할 수 있음에도 하지 못한 것들이 있고
할 수 없음에도 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인생은 그것들이 조화를 이루거나 택일을 하게 된다
아마도 할머니께서는 당신께서 택한 것에 대한
후회와 억울함이 여든이 넘어서 밀려온 것이다
내가 헤아리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영역의 범주이기에 나는 그저 할머니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