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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래 Mar 18. 2022

베토벤은 왜 얼굴을 찡그리고 있을까? (6)

그래서 베토벤의 음악은 뭐가 다르길래? - 교향곡 편

베토벤의 교향곡의 숫자는 생각보다 적다. 유명한 교향곡이 9개인 것이 아니라, 9개가 전부이다.


교향곡 1번 C장조 Op. 21

교향곡 2번 D장조 Op. 36

교향곡 3번 E플랫 장조 Op. 55 '영웅'

교향곡 4번 B플랫 장조, Op. 60

교향곡 5번 C단조 Op. 67 '운명'

교향곡 6번 F장조 Op. 68 '전원'

교향곡 7번 A장조 Op. 92

교향곡 8번 F장조 Op. 93

교향곡 9번 D단조 Op. 125 '합창'


*먼저 베토벤의 교향곡을 모두 모아놓은 재생목록을 공유한다. 세계적인 마에스트로 카라얀의 지휘와 명실상부한 베를린 오케스트라의 음원이다.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iN-7mukU_RF3azOPvaby2BbQ7Gqfvi61


아쉽게도 모든 교향곡에 붙이고 싶은 말들이 한가득이지만 우리는 베토벤이 남긴 첫번째 1번 교향곡과 3번 ‘영웅’, 5번 ‘운명’, 6번 ‘전원’, 9번 ‘합창’을 위주로 살펴볼 예정이다. 하지만 위의 9개가 모두 대작이기 때문에 모든 교향곡을 인생에서 꼭 한 번쯤은 꼭 들어주기를 간곡히 부탁한다.


[ Beethoven, Symphony No. 1 in C major, Op.21 ]


“3년 전 귀가 안 들리기 시작했어.”

https://youtu.be/sHHlFfbUibs

베토벤은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처음으로 자신의 청력 이상에 대한 얘기를 꺼낸다. 각종 편지와 기록을 통해 베토벤이 청력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시기는 1788년, 그의 나이 18세로 추정된다. 하지만 앞선 베토벤의 전기에 설명했듯이 베토벤은 포기하지 않았고, 30세가 되던 1800년에 인생 첫 교향곡을 선보인다.


베토벤의 음악인만큼 그 선율이 너무나 아름답고 훌륭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이 작품을 아름답다기보다는 ‘파격적’이라고 평가했다.


고전 시대의 교향곡은 작곡가 ‘하이든’에 의해서 그 형식이 정형화되었고, 보통 빠른 1악장과 느린 2악장, 춤곡인 미뉴에트 3악장, 그리고 마지막 4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하지만 베토벤은 악장의 빠르기부터 제멋대로 구성해놓았다. 느리지 않은 2악장과 굉장히 빠른 3악장은 청중들을 놀라게 했고, 오히려 4악장에서는 초반에 느린 선율을 배치해 말 그대로 청중들을 들었다 놓았다.


뿐만 아니라 교향곡의 첫 선율과 화음(도입부)은 교향곡의 으뜸화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소위 말하는 ‘국룰’이었는데, 베토벤은 자신의 첫 교향곡부터 이 형식을 깨버린다. 이전의 형식을 따른다면 베토벤 교향곡 1번은 C major이기 때문에 도입부는 C major로 이루어져야 하는데, 엉뚱한 F major의 딸림 7화음으로 시작된다. C major에 곡에서 F major의 위치는 곡의 중간이나 끝부분에서야 등장해야하는 화음이기 때문에 이러한 도입부는 시작부터 끝나는 듯한 엉뚱한 느낌을 주는, 베토벤의 유머러스한 성격을 엿볼 수 있다.


또한 베토벤은 교향곡에서 과거 현악기에 비해 부수적으로 사용되는 관악기들을 더욱 풍부하게 사용하여 음색을 두텁게 만들었고, 이에 대해서는 혹평도 간혹 있었으나 베토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당연히 1번 교향곡의 초연을 실제로 본 청중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당시 음악신문에 실린 평을 보면 베토벤의 교향곡 제1번에 대해 “대단한 예술, 새로운 작품, 아이디어의 충만함”이라는 명료한 평가로 그를 극찬한다.


*이 교향곡은 원래 베토벤의 후원자이자 고용인인 선제후 막시밀리안 프란츠에게 헌정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 악보가 출판되기 전에 그가 세상을 떠나자 곧바로 다른 후원자인 스비텐 남작에게 곡을 헌정한다고 말을 바꾼다. 역시 우리의 베토벤은 굉장히 경제적인 작곡가였다!


[ Beethoven, Symphony No. 3 in E flat major, Op. 55, ‘Eroica’ ]

https://youtu.be/XJnm5DDVI5o


1802년, <하일리겐슈타트 유서>를 통해 자신의 귓병과 그에 따른 괴로움을 고백함과 동시에 자신이 가진 예술가의 소명을 다할 것이라는 비장하고도 굳은 결의를 보여준다. 또한 당시의 베토벤은 기존의 봉건제에 반대하는 계몽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에 민주주의와 평등을 외치는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대가 자신이 독일을 향해 쳐들어올지라도 나폴레옹의 정신을 존경하였고, 그에게 헌정하기 위해 바로 이 교향곡 3번을 작곡하기 시작한다.


나폴레옹에게 헌정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3번 교향곡의 원제는 나폴레옹의 성인 ‘보나파르트’였다. 하지만 권력을 가지게 된 나폴레옹은 스스로 황제에 직위해 독재의 야망을 드러냈고, 베토벤은 곧장 ‘보나파르트’라고 적힌 표지를 찢어버리고 ‘Eroica’라는 새로운 제목을 붙인다.


그렇게 들리지 않는 음악가의 소명을 안은 베토벤은 자신의 결의와 열정을 보여주듯이 교향곡 3번에 더 거친 형식과 폭발적이고 원초적인, 야수와 같은 음향을 집어넣고 연주시간 또한 길~~ 게 작곡했다.


때문에 당시의 반응은 긍정적이지 못했지만, 많은 음악학자들은 이 교향곡 3번을 시작으로 ‘베토벤의 내면세계가 폭발했다’라는 표현을 자주 쓴다. '허허. 폭발이라니 거 허풍이 너무 심한 거 아니오.'라고 할 수 있지만 실제로 1악장의 서주 부분만 들어도 압도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 Beethoven, Symphony No. 5 in c minor, Op. 67 ]

https://youtu.be/6cbFlkRu54I


글과 제목을 세심히 본 독자분이라면 알아챘을 것이다. Op.67 다음에 제목이 없다!

3번 교향곡은 ‘Eroica’라고 붙여줬는데 왜 5번은 제목을 안 붙여놨을까?


베토벤 교향곡 5번을 ‘운명’이라고 부르는 곳은 우리나라와 일본뿐이다. 정확히는 우리나라에 서양문물과 서양음악이 일본을 통해 들어왔기 때문에 '운명'이라는 제목 역시 어떻게 보면 잔재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근거 없는 제목은 아니다. 베토벤의 제자가 교향곡 5번의 주제 선율 ‘빠빠빠 밤-은 대체 무엇인가요?'라고 질문하자 베토벤이 "운명은 이와 같이 문을 두들긴다"라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공공연하기 때문이다.


1804년, 5번을 작곡하기 시작한 베토벤은 계속 청력이 악화되고 있었고 나폴레옹이 빈을 점령한 시기였기 때문에 당시의 베토벤은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실제로 1악장을 들으면 “지금까지 이런 압도감은 없었다. 이것은 교향곡인가 번개인가”싶다. 교향곡 3번을 작곡할 시기를 폭발을 시작한 화산에 비유할 수 있다면, 교향곡 5번은 용암을 미친 듯이 내뿜는 화산에 비유하고 싶다. 하지만 곧장 2악장에서 잠시 평정심을 되찾고 결의를 다진 후에 3악장에서는 그에 따른 열정이, 4악장에서 고통을 딛고 해탈한 듯한 환희를 느낄 수 있다.


*3번과 달리 5번은 대중적으로도 큰 인기를 얻게 되었는데, ‘빠빠빠 빰-‘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계기는 영국의 국영 방송국인 BBC덕분이다. 세계 2차 세계 대전에서 BBC가 이 주제 선율을 뉴스 시그널로 사용하였고, 실제로 이 주제 선율을 모스 부호로 치면 ‘V’, 승리의 victory를 뜻했기 때문에 더욱 의미 있었다. 그런데 2차 세 대전 당시 독일(나치군)을 쓰러뜨리기 위한 승리의 부호로서 독일인의 음악을 쓴 것은 지금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 Beethoven, Symphony No. 6 in F Major, Op. 68, "Pastoral" ]

https://youtu.be/OqyRXm6rzZU


교향곡 5번과 6번은 같은 날, 심지어 6번이 먼저 초연되었다. 5번의 반응도 긍정적이었으나 6번의 초연 반응이 보다 긍정적이었다.


1악장 Allegro ma non troppo 전원에 도착했을 때의 유쾌한 기분

2악장 Andante molto mosso 시냇가에서

3악장 Allegro 농부들의 즐거운 모임

4악장 Allegro 폭풍

5악장 Allegretto 폭풍이 지나간 후의 평화


베토벤은 5번과 다르게 6번에는 직접 ‘전원’이라는 이름도 붙여주고 각 악장에도 이름을 붙여주었다. 실제로 베토벤은 교향곡 ‘전원’에 대해 이런 코멘트를 남겼다. “전원 교향곡은 회화적인 묘사가 아니다. 전원에서의 즐거움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환기시키는 여러 가지의 감정 표현이며, 그에 곁들여서 몇 가지의 기분을 그린 것이다.” 그만큼 애정이 있던 것인지 확실한 영감의 요소가 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너무 길었다. 곡의 길이가 너무 길다고 이미 교향곡 3번에서 혹평을 받았는데도 더 길었다. 기존의 4악장에서 한 악장을 더한 5악장 구성인 데다가, 장장 4시간의 곡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베토벤의 교향곡과는 다르게 너무나 평온하고 실제로 전원에 앉아있는 듯한 아름다운 음악을 듣다 보면 4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려서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다행히 현대인인 우리는 음악회에 갈 필요 없이 편하게 앉아서, 베토벤에게 ‘예술을 모르는 돼지’라고 창피당할 일도 없이 유튜브를 통해서, 심지어는 딴짓을 하며 들어도 된다. 휴, 얼마나 다행인지!


[ Beethoven, Symphony No. 9 in D Minor, Op. 125 "Choral" ]


드디어 마지막 대작이자 역작, 베토벤의 9번 교향곡 ‘합창’의 시간이다. 솔직히 이 역작에 무슨 말을 더해야 할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흠흠, 하지만 난 작가니까.


https://youtu.be/S2U2RN1G-EY


1악장의 점점 쌓여가는 화음은 그 어떤 큰소리보다 우리를 집중하게 만들며 이윽고 이어지는 웅장한 음향은 ‘아, 역시 베토벤이구나!’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베토벤은 지속적으로 PP(피아니시모, 아주 작게)에서 점점 화음과 악기를 쌓아서 ff(포르티시모, 아주 크게)까지 개연성 있는 밀당을 1악장 내내 지속한다. 이리 밀당을 잘하시니 청중은 쉴 틈 없이 그의 음악에 매료될 수밖에.


4악장 파트 a

https://youtu.be/3oksJw2nPrU

4악장 파트 b

https://youtu.be/Rsdh44nZuiU

4악장은 정말 말 그대로 환상적이다. 급박하게 진행되는 초반부에 집중하다 보면 이윽고 현악기 베이스 파트에서 조용히 시작되는 ‘환희의 송가’ 선율이 들린다. (파트 a 영상, 약 3분 00초) 새로운 선율과 또 다른 폭풍에 휘몰아치다 보면 ‘오즈의 마법사’에서 오즈의 세계로 갑자기 떨어진 도로시처럼 어리둥절해진다. 이때 호른이 조용하게 베이스로 등장하며(파트 b 영상, 약 6분 32초) 이윽고 합창이 더해지며 절정을 맞이한다.


베토벤 9번 합창 부분의 가사는 독일의 시인 ‘프리드리히 실러’의 시, ‘An die Freude(Ode to joy, 환희에 부쳐)’이다. 베토벤과 마찬가지로 봉건제와 군주제에 반대한 인물이었던 실러는 이 시를 '자유(Freiheit)'의 송가로 기획했는데, 당시에는 검열로 인해 이 시를 출판하기 위해서는 ‘자유’라는 단어를 ‘환희’라는 단어로 바꾼다.


학자들은 베토벤 9번 교향곡은 베토벤이 남긴 인류애적 작품이라고 한다. 실제로 베토벤은 자신의 소명은 예술이고, 예술의 소명은 계몽이라고 생각했다. 때문에 9번 교향곡은 이러한 베토벤의 소명을 모두 다한, 베토벤의 정신과 혼을 담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간추리려고 노력하고 또 노력했지만 베토벤의 교향곡에 대해 설명한 글을 쓴 것만으로도 너무나 큰 영광이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이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지길 바라면서 마지막으로 실러의 시 <환희의 송가>로 글을 끝맺을 예정이다.


실러의 환희의 송가 中 9번 교향곡에 쓰인 부분 발췌


Freude, schöner Götterfunken,

환희여, 아름다운 신들의 불꽃이여,

Tochter aus Elysium,

낙원의 딸이여,

Wir betreten feuertrunken,

우리 모두 정열에 취해

Himmlische, dein Heiligthum.

빛에 가득한 성소로 들어가자.

Deine Zauber binden wieder,

신성한 그대의 힘은

Was die Mode streng getheilt,

가혹한 현실이 갈라놓았던 자들을 다시 결합시키고

(Was der Mode Schwerd getheilt.)

(현실의 검이 갈라놓았던 것들을 다시 결합시키고)

Alle Menschen werden Brüder,

모든 인간은 형제가 되노라

(Bettler werden Fürstenbrüder.)

(거지도 귀족의 형제가 되노라)

Wo Dein sanfter Flügel weilt.

그대의 부드러운 날개가 머무르는 곳에.


Seid umschlungen, Millionen!

서로 껴안아라! 만인이여

Diesen Kuß der ganzen Welt!

전 세계의 입맞춤을 받으라!

Brüder, überm Sternenzelt

형제여, 별이 빛나는 하늘 저편에

Muß ein lieber Vater wohnen!

사랑하는 하느님께서 반드시 계실 것이다!

Wem der große Wurf gelungen,

위대한 하늘의 선물을 받은 자여,

Eines Freundes Freund zu sein,

진실된 우정을 얻은 자여,

Wer ein holdes Weib errungen,

여성의 따뜻한 사랑을 받은 자여,

Mische seinen Jubel ein!

다 함께 환희의 노래를 부르자!

Ja, wer auch nur eine Seele

그렇다, 비록 단 한 사람의 마음이라도

Sein nennt auf dem Erdenrund!

땅 위의 그를 믿는 사람은 모두 환희의 노래를 부르자!

Über Sternen muß er wohnen.

별이 빛나는 하늘 저편에 반드시 계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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