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이 속한 음악 사조인 ‘고전’은 이미 모차르트 5편에서 설명했기 때문에 생략하고, 이번에는 음악 사조 중 ‘낭만’이 열리기 직전의 상황에 대해서 먼저 얘기해볼까 한다.
베토벤의 생애를 설명하며 계속 언급하였듯이 베토벤은 계급과 신분에 대해 굉장히 반항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고, 이는 베토벤이 괴팍해서가 아니라 당시의 계몽주의 영향이었다.
*계몽주의의 대표주자이자 계몽주의 작가 ‘프랑수아마리 아루에’ (François-Marie Arouet) 필명 ‘볼테르’ (Voltaire, 1694 ~ 1778). 장 자크 루소와 함께 대표적인 계몽 사상가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의 말들은 현대에도 자주 인용되는데, 그중에서 ‘나는 당신에게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난 당신이 주장할 권리를 위해 싸우겠다.’는 말이 유명하다. (하지만 이 말이 실제로 볼테르가 했던 말인지는 사실 확실치 않다고 한다.)
예술사조는 문학-미술-음악의 순서로 나타나는데, 이런 순서를 띄는 가장 큰 이유는 작품이 완성되고 출판되거나 초연되기까지의 시간차 때문이다. (생각보다 그리 거창한 이유는 아니지?) 때문에 음악 사조는 고전이지만 이미 문학계에서는 계몽주의적 성격을 띠는 작품들이 등장했고, 영국의 산업혁명과 부르주아의 등장은 기존의 계급 사회, 즉 ‘봉건제’를 몰락시키고 자본주의를 내세웠다.
당시의 예술가들은 너 나할 거 없이 이러한 사회변화를 이끌어가야 한다는 예술가의 소명을 안고 있었고, 그리 멀리 가지 않아도 우리는 이전에 모차르트 역시 이러한 봉건제에 반대하는 비밀 결사대인 ‘프리메이슨’에 가입한 계몽주의자였다는 것을 기억해낼 수 있다.
특히나 베토벤은 이러한 사상을 가감 없이 작품에 담아냈는데, 말기 작품에서는 고전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양식인 ‘소나타 형식’(작품의 형식이자, 작곡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양식이다. 추후 길게 설명할 예정이니 조금만 참기!)을 과감히 버리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연주를 하던 와중에도 귀족들이 속닥거리거나 떠들면 “나는 이런 돼지들 앞에서는 연주할 수 없소!”라며 연주를 관두었다고 한다.
모차르트 역시 계몽주의적 사상을 가진 인물이었다마는, 이러한 객기와 패기는 베토벤에 비할 수 없다. 모차르트는 자신의 신분이 ‘하인’이라는 개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고, 그저 ‘더 좋은 봉급을 받는 하인’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면 베토벤은 항상 귀족들과 같은 자리에서 식사하고 대접받길 바랐다. 다행히 그의 실력 덕분에 베토벤이 무시당하는 일은 없었다고 한다.
이제 본격적으로 베토벤의 음악에 대해 논해보자.
쉬운 이해를 위해서 같은 사조인 모차르트를 두고 잠시 비교할 예정이다. 하지만 이 둘의 음악을 비교하는 것은 누구의 음악이 더 위대하고 대단한지 결과를 내놓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점을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고 싶다. 두 예술가 모두 ‘신의 영역’에 위치한 작곡가이기 때문에 내가 감히 이 둘을 비교하고 있다는 것에 죄책감이 느껴질 정도니까.
모차르트의 음악을 통통 튀고 재치 있고 센스 있는 유머러스한 이야기에 비유한다면 베토벤은 이와 반대로 리얼리즘에 충실하면서도 인간적이고 열정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세대에서 피아노 학원 좀 다녔다 치면 한 번쯤은 쳐본 ‘엘리제를 위하여’이다. 초등학교 때 이 음악에 멋모르고 '니나니나 니 고릴라다~’라는 말도 안 되는 가사를 붙여서 노래하던 게 엊그제 같다. 하하. 당연히 베토벤의 음악인 줄도 모르고(또 내가 음악을 전공하게 될 줄도 모르고) 노래를 불렀지만, 그만큼 어린아이들의 입에도 착착 붙는 멜로디였다는 뜻이겠지?
어쨌던, 베토벤의 음악은 모차르트처럼 촘촘하고 빈틈없는 음악은 아니지만 비어있는 부분 안에서도 서사가 이루어진다. 그 빈틈에서 우리는 더 인간적이면서도 열정적인 음악을 느낄 수 있다.
베토벤의 열정적인 음악을 논할 때 이 음악은 빼놓을 수 없지. 부드러우면서 몰아치는 폭풍우 같은 피아노 솔로는 들을 때마다 소름이 돋는다.
[ Beethoven, Piano Concerto No. 5 in E flat major, ‘황제’, 2악장 ]
마에스트로 정명훈/피아니스트 조성진
부드러움과 강함이 번갈아가며 나타나면서도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뿜어져 나오는 이 음악은 정말 ‘황제’가 갖춰야 할 면모를 직접 보여주는 듯하다. 이 시기의 베토벤은 귀가 들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큰 규모의 작품들을 남겼다. 들리지 않은 귀로 대체 어떻게 이런 음악을 만들 수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 명곡을 초연한 피아니스트는 바로 베토벤의 제자이자 피아노 학원의 바이엘 다음 관문, ‘체르니’이다.
[ Beethoven, Piano Sonata No. 23 in f minor, ‘열정’ ]
피아니스트 임동혁
이 곡은 제목마저 ‘열정’이다. 흔히 베토벤의 ‘3대 소나타’라고 불리는 작품 중 하나이다. 단조에서는 점차 끓어오르는 내면의 열정을 밖으로 분출하면서 적절한 순간에 짧게 등장하는 장조 선율에서는 해탈을 한 듯한, 평온하면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그의 내면을 보는 듯하다.
[ Beethoven, Piano Sonata No. 14 in c# minor, ‘월광’ ]
피아니스트 임동혁
‘3대 맛집’도 아니고 ‘3대 소나타’를 줄줄이 소개하자니 베토벤의 작품 세계를 좁히는 것 같아 슬프지만, 실제로 이 3개의 소나타는 어느 누가 들어도 멋진 음악이다. 특히나 이 ‘월광’의 1악장은 정말 어두운 밤 아래에서 달빛 하나만 의존하여 나의 고통과 괴로움, 그리고 인생의 아픔에 대해 공감받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리고 2악장에서는 다시 이러한 기분을 환기시키고 잠시나마 인생에 있던 즐거운 순간, 소확행의 순간을 기억해낸다. 이를 바탕으로 3악장에서는 괴롭더라도 이 고통을 이겨낼 것이라는 굳은 결의와 넘치는 열정이 느껴진다.
[ Beethoven, Piano Sonata No. 8 in c minor, ‘비창’, 2악장 ]
피아니스트 조성진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베토벤 중기에 작곡된 피아노 소나타들의 2악장들은 현대적이라고 생각된다. 그중에서도 ‘비창’의 2악장은 굉장히 로맨틱하고도 간결한 선율로 이루어져 있어서 마치 노년의 부부가 초반의 열정과 인생을 함께 넘어서, 화려하진 않지만 진정으로 서로를 위하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는 듯한 감동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