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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래 Jan 22. 2022

모차르트는 태교에 정.말.적합할까?(2)

아버지로부터 독립하고 싶었던 청년 모차르트

아버지 레오폴트를 따라 하루 종일 마차를 타고 하프시코드 의자에 앉아있던 어린 모차르트는 자신의 엉덩이를 위해서라도 아버지로부터의 독립이 절실했을 것이다. 유럽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천재성은 이미 증명이 된 바, 16세의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 대주교 콜로레도 궁'의 세 번째 악사장이 된다. 이렇게 모차르트는 돈을 벌게 되어서 아버지로부터 독립하여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라면 참 좋았을 텐데.


당시 잘츠부르크 대주교는 군주와 다를 바 없었다. 다른 나라처럼 군주나 군주의 역할을 행하는 종교인들은 자신에게 속한 오케스트라를 두었다. 그리고 모차르트의 첫 고용주인 콜로레도의 풀네임은 Hieronymus Joseph Franz de Paula Graf Colloredo von Wallsee und Melz이다. 보면 볼수록 혼자 알기 아까운 길이의 이름이다.


앞서 1편에 언급하였듯이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는 이미 잘츠부르크 대주교의 오케스트라에서 부악장을 맡고 있었다. 모차르트의 입장에서는 또다시 아버지의 밑에서 음악을 해야 했으니 독립에 실패한 것이며, 대주교의 입장에서는 아무리 천재라고 하더라도 결국 자신의 '하인'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기 바랐다. 하지만 모차르트 부자는 눈만 돌리면 다른 궁정으로 연주회를 하러 다니기 바빴, 하인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지 않는 모차르트는 점점 대주교의 눈밖에 나기 시작한다. 물론 이렇게 한 나라의 세금으로 고용한 작곡가가 밖으로만 돌아다니니 대주교의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모차르트의 행실을 참고 또 참던 대주교는 모차르트가 다른 궁정이나 귀족들의 집에서 연주하는 것을 금지하기에 이른다. 이는 단순히 모차르트의 외부 연주를 막는 것이 아니라 모차르트의 돈줄을 끊어버리겠다는 말이었다. 이미 대주교에게 속하여 아버지로부터 독립은 실패해, 월급은 쥐꼬리에다 대주교를 위한 음악들(교회 음악)만 작곡해야 하는 것에 진절머리가 나던 모차르트는 용감하게도 대주교에게 면담을 청하여 자신이 대주교의 처사불만을 표한다.


물론 우리의 대주교 역시 이에 지지 않고 모차르트를 말 그대로 발로 '뻥' 차서 내쫓았다. (아마 예상컨대 모차르트는 '뻥' 차일 때 웃고 있었을 것이다.) 대주교는 그 꼴을 보고도 화가 풀리지 않았는지 모차르트 집안은 모두 보기 싫다며 레오폴트의 부악장 자리까지 해임시킨다. 다행히 레오폴트는 빨리 손을 써서 자신은 잘츠부르크를 떠나지 않겠다고 대주교에게 약속하여 다시 자리를 되찾을 수 있었고, 그렇게 레오폴트만 대주교 밑에 남게 된다. 평화롭지는 않았으나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룬 모차르트는 자신이 원래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오페라와 기악 음악들을 본격적으로 작곡하고 지휘하기 시작했다.


모차르트가 대주교에게 발로 차이기 전에 어머니와 파리에 간 적이 있었다. 파리에 가는 길에 들린 만하임에서는 소프라노 가수 '알로이지아 베버'를 만나 깊은 사랑에 빠졌다. 모차르트는 오로지 그녀를 위해서 곡을 만들고, 로이지아는 그의 곡을 노래했다. 모차르트는 그녀에게 청혼할 정도로 그녀를 사랑했다. 하지만 일정상 파리로 곧 떠나야 했고, 아버지 레오폴트는 알로이지아의 가문, 베버가(家)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반대한다.

*알로이지아 베버, 모차르트를 처음 만났을 때 모차르트는 21세, 알로이지아는 17세였다. 사진이 아니라 미화된 초상화임을 감안해도 그녀의 외모는 많은 남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이후 파리에 도착하자 이상하게도 파리 시민들은 그의 음악에 냉담했으며, 어머니마저 파리에서 운명을 달리하자 모차르트는 파리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자신의 연인을 만나기 위해 다시 만하임에 들린다. 하지만 불행은 한꺼번에 온다고 하던가, 믿었던 알로이지아마저 다른 남자와 결혼해있었다.


알로이지아의 이야기를 이렇게 뒤로 뺀 데에는 이유가 있다. 모차르트가 결국 알로이지아의 동생 ‘콘스탄체 베버’와 결혼하게 되기 때문. 약간 막장 드라마의 느낌이 있으나, 당시에는 언니와 동생에게 시간을 두고 청혼하는 것이 그리 막장은 아니었다.(아 근데 나 이거 '나는 solo'에서 본  같은데) 상대가 승낙만 한다면 서로 처음 본지 하루 만에 약혼이 이뤄지기도 했다.


단순히 알로이지아가 아니라 '베버' 집안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레오폴트는 진작에 격렬히 반대하였으며, 이번에는 모차르트의 누이마저 합세하여 거세게 반대한다. 하지만 모차르트는 '그녀는 외모가 아름답지는 않지만 마음씨가 좋다'라며 끝없이 아버지를 설득한다. 그리고 실제로 모차르트는 알로이지아를 포함한 자신의 과거 연인들에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콘스탄체에게 푹 빠진다.


가끔은 그 정도가 심하여 모차르트는 콘스탄체가 파티에서 남자와 말만 섞어도 콘스탄체에게 화를 냈다. 콘스탄체 역시 모차르트가 화 낼 걸 알면서도 다른 남자와 일부러 말을 섞기도 하였을 것이다.(별꼴이야...) 그렇게 26세의 모차르트는 콘스탄체와 결혼한다.

*콘스탄체 베버, 당대에는 '통통함'이 여성으로서의 매력이었는데 이렇게 날렵한 턱을 자랑하는 콘스탄체가 확실히 당대의 미인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도 언뜻 보면 언니인 알로이지아와 닮은 부분이 있긴 하다.


우리는 여기서 의문을 가져야 한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은 의심할 바가 없으나, 이는 음악에 한정되어 있는 천재성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유럽 전역을 데리고 다니며 연주를 시켰기 때문에 기본적인 교육 과정조차 밟지 못하였고, 경제적인 개념은 그냥 없다고 봐도 무방하였다. 그런데 이런 모차르트에게 ‘마음씨가 좋다’라며 칭찬을 들은 콘스탄체 역시 얼마나 어리숙하순수한 사람이었을까? 그리고 순수한 이 커플은 무사히 행복하게 잘 살았을까?


다행히도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를 떠나 빈에서 아주 크게 성공한다. 일단 징슈필(독일어로 이루어진 민속적인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탈출>이 매우 크게 성공한다. 이 오페라는 빈뿐만 아니라 다른 도시에서도 계속 상영될 정도로 인기였다. 이후의 연주회에서도 열렬한 반응을 얻었다. 귀족들도 모차르트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줄을 서야 했으며, 출판업자들 역시 그의 곡을 받기 위해서 줄을 두 배로 서야 했다.


그러면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도 했겠다, 프리랜서로서 엄청난 성공도 했겠다. 이제 행복할 일만 남지 않았을까?


답은 전혀 아니올시다. 콘스탄체와 모차르트는 도를 넘어설 정도로 에 무지한 커플이었고, 노는 것과 화려한 것들을 좋아했다. 모차르트 부부는 매일매일 친구들을 초대하거나 화려한 파티를 열었는데 모차르트가 번 돈으로는 이를 감당하기 어려워 친구들에게 돈을 더 빌려야만 했고 그 돈을 갚기 위해서 더 일해야 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갇혀버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콘스탄체는 그리 건강한 여인이 아니었다. 일단 지병이 있었기 때문에 항상 병원을 다녀야 했고, 8년 동안 6명의 자녀를 임신하였으나 살아남은 것은 2명이었다.(당시 유럽의 영아 사망률은 약 20%였다) 그래도 그들은 서로를 사랑했다. 더 이상 집안 난로에 넣을 땔깜이 없는 겨울에는 추위를 잊기 위해 밤새 서로의 손을 잡고 춤을 췄을 정도로.

*영화 <AMADEUS> 속 한 장면. 모차르트와 콘스탄체.


그렇다면 모차르트의 친구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여러 학자들이 모차르트가 비밀 단체 '프리메이슨'에 소속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많은 증거들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프리메이슨이라는 단체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귀족과 중간계급의 사람들이 모여 모든 이들의 자유와 평등을 목적으로 삼은 단체이다.(그리고 현재까지도 그 맥이 끊기지 않고 있다고 한다!) 당대의 국가들은 군주제였기 때문에 이 단체에 속해있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차르트는 이 단체에 강렬한 소속감을 느꼈고, 빈에 찾아온 아버지를 프리메이슨에 가입시키기까지 한다.


모차르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음악 작품에도 이런 프리메이슨의 정신을 담아내는데...


(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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