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어가는 시간으로 내가 정한 주제는 ‘템포’이다. 갑자기 음악 용어가 나왔다고 당황하지 말자. 템포는 우리말로 ‘박자(혹은 속도)’일 뿐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자신이 음악에는 전혀 문외한이고 심지어는 음악이라는 것을 처음 접한다고 해도 음악에서 연주의 ‘템포’는 당신이 당당히 의견을 낼 수 있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이 ‘템포’가 음악에서 왜 중요할까?
직접 듣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같은 작품을 연주한 3명의 피아니스트 영상을 들고 왔다. 세 명의 연주자 모두 세계에 이름을 날리는, 자랑스러운(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우리나라 대표 피아니스트들이다. 때문에 속도의 차이가 실력의 차이이거나 셋 중에 정답이 숨겨져 있지 않다.
앞의 30초만 들어도 이 연주자들이 각자 다른 속도로 연주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이 세 연주의 속도 차이는 그리 미세하지도 않다. 비전공자들도 무리 없이 알아낼 수 있다. 그리고 혹시나 빠르기를 알아채지 못했다고 해도 상관없다. 그저 연주가 조금씩 다르다고 느끼기만 해도 된다.
그렇다면 왜 같은 악보를 두고 연주자들은 속도를 다르게 연주하는 것일까?
일단, 작품 자체의 ‘빠르기말(Tempo signature)’은 기존의 악보에 작곡가들이나 출판사가 미리 표기해놓는다. 위 세 영상 속 연주된 ‘드비시(Debussy)-Clair de lune’의 악보 첫 부분이다. (악보도 3 버전을 들고 왔다)
세 악보 모두 가장 첫 줄에 ‘Andante très expressif’라고 표기해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이 중에서 'Andante'가연주 속도를 나타내는 '빠르기말'이다.
*빠르기나 음악적 표현을 나타내는 용어들은 대부분 이탈리아어에서 비롯되었다. 때문에 이탈리아어를 그대로 직역하면 빠르기에 대한 느낌을 알 수 있다. 직역하면 각 단어들은 아래의 뜻을 갖고 있다.
사실상 이 표현들은 굉장히 모호하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Moderato를 정의할 때 '걷는 속도'라고했다는데 누군가는 걸음이 굉장히 빠를 수도 있고누군가는 걸음이 굉장히 느릴 수도 있지 않은가. (마치 상사가 천천히 해도 괜찮다고 말했지만 언제 완성되냐고 계속 되묻는 것처럼 말이다)
미리 결론부터 말하자면, 개개인의 걷는 속도가 다른 것처럼 연주자 역시 자신이 해석하는 곡의 속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때문에 같은 작품이라고 해도 여러 연주자의 것을 듣고 비교하여 자신이 더 마음에 와닿는 템포로 연주하는 연주자를 찾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음악은 이미 완성된 작품뿐만 아니라 작품을 연주할 연주자도 중요한 것이다. (연주자의 중요성은 또 다음에!)
실질적으로 연주자는 표현을 하면서 어느 부분에서는 과하게 느리게 치기도 하고 과하게 빠르게 치기도 한다. 연주자는 자신이 해석한 곡의 느낌을 충분히 살리기 위해서 빠르기말의 구간 내에서 자유롭게 움직인다. 실제로 모든 연주자가 템포를 칼같이 지켜서 연주하는 것은 드문 일이고, 만약 템포를 칼같이 지키는 연주가 훌륭한 연주라면 가장 훌륭한 연주자는 메트로놈일 것이다.
메트로놈은 또 뭐냐고?
하하. 내가 빠르기에 대한 설명을 베토벤 이전에 넣은 이유가 이것이다. 메트로놈은 1815년 ‘맬챌(J.Maelzel)’이 만든 기계로, 1분 동안의 박자 수(BPM, Beats per minute)를 소리로 나타내 준다. 그리고 맬챌은 베토벤의 친구이며, 베토벤은 이 기계를 극찬했다고 한다. 또한 베토벤의 제자 체르니 역시 (맞습니다. 피아노 학원의 그 체르니!) 메트로놈을 애용했다고 한다.
메트로놈의 표기법은 ‘음표=숫자’인데, 예를 들어 ‘♩=60’은 ‘4분 음표(1박자)가 1분당 60번’으로 이해하면 된다. 앞서 말했듯이 단위는 1분이기 때문에 빠르기가 60이면 속도는 시계 초침의 움직임과 같은 속도가 된다. 반대로 30이면 초침이 2번 움직일 동안 한 박자, 120면 초침이 한번 움직일 동안 두 박자가 지난다. 맨 앞의 음표가 4분 음표인지 16분 음표인지에 따라서도 달라지지만 이는 단순히 표기법이기 때문에 앞으로 할 이야기에 있어서 꼭 이해해야 할 부분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빠르기를 표현하는 단위가 심박수와 같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자, 그러면 이제 쟁쟁한 음악이론가들 사이에서도 결론이 정해지지 않은 난제를 여기에 던질 예정이다. 모든 예술과 인생이 그러하듯이, 정답은 없다.
이전까지 다룬 모차르트를 기준으로, 그가 살았던 시대를 생각해보자. 대략 1780년으로 잡아보면 프랑스는 루이 16세가 집권할 때였고, 우리나라는 정조 4년이었다. (클래식 얘기를 해야 하니 아쉽지만 우리나라 이야기는 잠깐 뒤로하고)당시 18세기 후반의 유럽 얘기를 해보자면 일단 내륙에서 가장 빠른 이동수단은 말이나 마차였고, 국가 간 이동 수단은 배가 전부였다. 편지를 쓰면 유실은 다반사에, 얼굴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3박 4일 동안 화가 앞에 같은 자세로 서있어야 했으며, 사람들은 해에 맞춰 움직였고 전구가 아니라 초를 켜던 시대였다.
반면 현재의 2022년은 어떠한가. 국가 내 이동은 최고 시속 300KM의 KTX를, 국가 간 이동은 평균 시속 600KM의 비행기를 이용한다. 기업들은 앞다투어 새벽 배송을 통해 집 앞에 전날 쇼핑한 물건을 갖다 놓는다. 해보다는 형광등 빛이 더 익숙하며, 해가 제공하는 것은 시간 개념이 아니라 비타민 D가 된 지 오래다. (이마저도 현대인은 제대로 못 받는 것 같지만)
뿐만 아니다. 스트레스와 영상, 음악, 음식 등등 자극적인 것들 천지이다. 이러한 요소들로 인해 현대인의 평균 심박수 역시 과거와 비교하였을 때 더 높은 수치를 보인다고 한다.모차르트의 시대와 비교하면 현대의 속도감은 휘몰아치는 태풍과 같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빨라진 시대에 우리가 모차르트의 음악을 제대로 즐기려면, 과거 18세기의 속도감에 똑같이 맞춰야 할까?
이렇게 생각해보자. 과거 조선시대에는 몇 시 몇 분의 개념이 아니라 2시간 단위인 ‘시진’과 이것을 8개로 나눈 ‘1각’이 존재했다. 때문에 가장 작은 시간 단위는 15분이었다. 조선 시대에 가장 글을 빨리 쓰는 사람이 10분 안에 1권을 썼다고 가정해보자. 당시에는 ‘각’보다 작은 개념이 없기 때문에 ‘1각 안에 한 권을 쓰는 사람’이라는 표현이 전부일 것이다. 하지만 현대에서 그를 표현하려면 ‘10분 안에 한 권을 쓰는 사람’이 정확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조선시대에 사용했던 ‘1각 안에’라는 표현이 틀린 것인가? 그것은 아니다. 그리고 만약 이 표현이 전통적으로 현재까지 사용되었다면, ‘1각’이라는 단어는 현대의 일상에 유효하진 않지만 의미적으로는 유효해진다.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18세기에 연주되던 속도를 그대로 재현해내는 것과 현대인의 속도감에 맞춰서 조금 더 빠르게 연주하는 것, 이 둘 중에서 현대인이 클래식을 더 의미 있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렇게 난제를 던지고 난 후에 참 얄밉다는 걸 알지만, 나는 여기에 나의 의견이나 설명을 조금도 더하지 않을 생각이다. (후후)
지금까지는 이미 존재한 역사적 사실과 작품으로 음악을 얘기했다면, 이번에는 각자가 클래식 음악에 대해 직접 생각해보고 자신만의 의견을 가져보았으면 좋겠다. 아무리 내가 클래식에 대해 재미있게 설명하여 작곡가에 흥미가 생겼다고 해도, 클래식은 작곡가와 작품이 전부가 아니다. 나는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클래식에 대한 정보를 얻고, 궁극적으로 자신의 취향에 꼭 맞는 음악과 그에 대한 의견을 가졌으면 한다.
혹시나 답이 ‘모르겠다’여도 상관없다. 당신이 자신만의 답을 내릴 때까지 나는 음악에 대해 계속 글을 쓸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