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은 둘째 날에만 호핑투어를 예약하고 나머지는 무계획이었다.
휴양지로 왔으니 관광보다는 휴양만 하고 싶었다.
조식 먹고 쉬고 쉬다가 수영하고 수영하다 점심 먹고 점심 먹은 후 낮잠 자고 낮잠에서 깨면 저녁 먹고 저녁 먹은 다음에 수영했다.
여행 내내 일 생각을 1도 안 했다.
남편은 직장 생활을 하며 5년 동안 시험공부를 했다.
시험 합격 후 작년 1월에 퇴사하자마자 바로 사무실을 오픈했다.
그는 절실하게 쉬고 싶어 했다 - 여행을 가고 싶어 했다.
그렇게 원하고 원하던 여행을 왔지만 보라카이에 온 지 3일 정도 지나자 "5박 6일 너무 길다, 지겹다" 김빠지는 말을 했다.
집순이인 나와 달리 밖에서 에너지를 얻는 외향형인 그는 답답했나 보다.
여행을 와서 이렇게 무계획으로 쉬기만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막상 여행 마지막 날이 되니 나보다 그가 더 아쉬워했다.
남편 "아쉽다..."
나 "우리 일출 못 봐서 또 와야 해. 다음에 또 와요."
남편 "좋아요!"
우리는 칼리보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약속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찾고, 겨울옷으로 갈아입었다.
장기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타고 파주로 향했다.
남편 "자기야 다음 해외여행은 어디로 가고 싶어요?"
나 "사이판?"
남편 "일 열심히 해서 돈 모아야겠다. 내년에 4박 5일로 가요."
나 "실은 자기가 보라카이에서 지겹다고 해서 속상했어요."
남편 "너무 오래 쉬니까 불안해서 그랬어요. 공사 현장이 잘 돌아가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한 집안의 가장인 그가 불안해하는 동안 나만 너무 편하게 쉰 것 같아 미안했다.
파주에 도착해서 양평 해장국을 먹으며 미안한 마음과 추위에 언 몸을 녹였다.
집에 오자마자 캐리어 가방 속 짐을 모두 꺼내 정리했다.
나는 밀린 빨래를 하고, 그는 소파에 누워 TV를 보다가 코를 골며 잠들었다.
망고보다 더 달콤했던 5박 6일간의 휴가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