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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쾌한씨 Dec 27. 2023

망고보다 달콤했던 휴가가 끝났다

이번 여행은 둘째 날에만 호핑투어를 예약하고 나머지는 무계획이었다.

휴양지로 왔으니 관광보다는 휴양만 하고 싶었다.

조식 먹고 쉬고 쉬다가 수영하고 수영하다 점심 먹고 점심 먹은 후 낮잠 자고 낮잠에서 깨면 저녁 먹고 저녁 먹은 다음에 수영했다.

여행 내내 일 생각을 1도 안 했다.


남편은 직장 생활을 하며 5년 동안 시험공부를 했다.

시험 합격 후 작년 1월에 퇴사하자마자 바로 사무실을 오픈했다.

그는 절실하게 쉬고 싶어 했다 - 여행을 가고 싶어 했다.

그렇게 원하고 원하던 여행을 왔지만 보라카이에 온 지 3일 정도 지나자 "5박 6일 너무 길다, 지겹다" 김빠지는 말을 했다.

집순이인 나와 달리 밖에서 에너지를 얻는 외향형인 그는 답답했나 보다.

여행을 와서 이렇게 무계획으로 쉬기만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막상 여행 마지막 날이 되니 나보다 그가 더 아쉬워했다.


남편    "아쉽다..."

나    "우리 일출 못 봐서 또 와야 해. 다음에 또 와요."

남편    "좋아요!"


우리는 칼리보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약속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찾고, 겨울옷으로 갈아입었다.

장기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타고 파주로 향했다.


남편    "자기야 다음 해외여행은 어디로 가고 싶어요?"

나    "사이판?"

남편    "일 열심히 해서 돈 모아야겠다. 내년에 4박 5일로 가요."

나    "실은 자기가 보라카이에서 지겹다고 해서 속상했어요."

남편    "너무 오래 쉬니까 불안해서 그랬어요. 공사 현장이 잘 돌아가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한 집안의 가장인 그가 불안해하는 동안 나만 너무 편하게 쉰 것 같아 미안했다.


파주에 도착해서 양평 해장국을 먹으며 미안한 마음과 추위에 언 몸을 녹였다.

집에 오자마자 캐리어 가방 속 짐을 모두 꺼내 정리했다.

나는 밀린 빨래를 하고, 그는 소파에 누워 TV를 보다가 코를 골며 잠들었다.


망고보다 더 달콤했던 5박 6일간의 휴가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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