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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쾌한씨 Dec 26. 2023

여행을 왔지만 우울하다

이 감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 같다고 해야 할까.


오늘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일출을 보러 졸린 눈을 비비며 비치로 걸어 나갔다.

내일 출국하기 전에 사진으로만 봤던 그림 같은 일출을 보고 싶었는데 흐린 날씨 탓에 오늘은 실패다.

내일은 볼 수 있으려나.

한국에서 가져온 컵라면을 먹으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본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특별함으로 가득한 여행을 기대했다.

막상 여행을 오니 예전만큼 잘 즐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선 살이 쪄서 예쁜 옷을 - 하늘하늘 원피스를 챙겨 왔지만 입지 못하고 있다.

츄리닝이나 편한 스타일의 옷만 입다 보니 원피스는 어색하고 쑥스럽다.

캐리어 가방에 고이 모셔두고 있다.

남편이 여자 김종국이라고 부를 정도로 평소에 블랙 옷을 선호한다.

챙겨 온 옷들이 상의부터 양말 심지어 신발까지 죄다 나의 마음처럼 블랙이다.

다음에는 보는 사람들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밝은 옷과 화려한 액세서리를 많이 챙겨 와야겠다.




여행 첫날 화이트 비치에서 남편과 사진을 찍었다.

찍은 사진을 보자마자 지우고 싶었다.

그림 같은 배경에 그림과 어울리지 않는 낯선 아저씨와 아줌마가 손을 잡고 서 있다.

풋풋했던 우리의 모습은 어디로 갔을까.

더 이상 사진을 찍고 싶지 않아 삼각대를 한 번도 펼치지 않았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더 많이 남았는데 벌써부터 이러면 아~ 어쩌란 말이냐♬


사진은 안 찍으면 그만이지만 더 슬픈 현실은 몸과 마음이 따로 논다는 것이다.

어제 해변 산책 1시간, 수영을 1시간 정도 하니 체력이 떨어진 남편은 썬 베드에서 코를 골며 낮잠을 잤다.

노는 것도 체력이 필요하다.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많이 돌아다녀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새삼 와닿았다.

아무것도 안 하고 쉴 수도 있겠지만 여행을 왔으니 본전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뭐라도 하나를 더 보고, 경험하고, 먹고 싶어 마음만 분주하다.


오늘이 지나고 일상생활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마음이 착잡하다.

지난주에 시험을 본 중2 아이들의 시험 결과를 마주할 생각에 여행 내내 마음 한쪽 구석이 답답하다.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다가오니 걱정이 앞서 잠을 설쳤다.

한 달 동안 시험 대비를 하며 시험 끝나자마자 떠날 생각에 버텼지만 한국으로 돌아가면 무엇으로 버텨야 하나 막막하다.




40대가 되었으니 주름진 얼굴과 희끗희끗 보이는 새치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아직은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 같다.

40대가 되어 10년 전의 모습을 그리워하고 있듯이 50대에는 40대, 현재의 모습을 그리워하겠지.


글을 쓰고 있는 지금, 현지 시각으로 아침 8시 반이다.

나에게는 아직 하루가 남아있다.

50대에 그리워할 현재를 자신감 있게 즐겁게 알차게 보낼 수 있도록 마음을 다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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