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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미

지나가는 생각들

by Rumi


지금도 존재하는 용어이나 "정부미 (정부양곡비축미)"라는 쌀을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만 해도 쌀가게에서 볼 수 있었지요. 당시에는 요즘처럼 가격대별로 형성된 쌀들과는 달리 크게 "일반미"와 "정부미"라는 두 종류의 쌀이 있었습니다. 일반미는 아마도 수확한 지 1년을 넘기지 않거나 수확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쌀이었고, 정부미는 2년+ 이상 정부가 여러 지역에서 정부양곡보관창고에 보관하던 쌀들로, 일반미에 비해 정부미의 가격은 매우 낮았지요.


식량이 안보로 여겨지던 시절 (아이러니하게도 다시 식량이 안보라는 개념이 요즘에 다시 등장하고 있지만), 국가가 힘든 시기에 태어난 정부미는 인식도 그랬지만 실제로 ‘질 나쁜 쌀’이었습니다. 떡을 해 먹어도 맛이 덜어지고, 푸석푸석해서 잡곡을 넣어도 맞이 없는, 그런 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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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열 살도 되지 않던 시절에는 집에서 일반미를 먹어 본 기억이 없습니다. 어린 나이에 처음에는 일반미 또는 정부미를 구별할 수도 없었지만, 어머니와 같이 시장에 가면 얼마 안 되는 돈을 가지고 무엇을 살지 걱정하시며 시장판을 여러 번 돌고 도는 어머니를 따라다니며 알게 된 슬픈 현실이었지요. 그나마 이 정부미도 많이 사지 못해서 되 단위로 '비닐봉다리'에 담아 어머니와 같이 집으로 걸어오던 길도 자주 생각이 나곤 합니다.


일반미를 먹을 수 있던 때가 일년에 몇 번 있긴 했습니다. 명절에 친할아버지네 가면 먹을 수 있었지요. 우리 집 사정을 알고 있던 큰엄마가 몰래 큰 검은색 비닐봉지에 쌀을 넣어 어머니에게 주던 모습도 기억이 납니다. 세뱃돈도 생활비로 써야 했던, 그런 시절을 살았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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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값이 높은 쌀을 먹지 않습니다. 가격 자체가 비합리적이라는 생각과, 20kg에 8만 원이 넘는 쌀과 5만 원대의 쌀 맛이 거의 차이가 나지 않고 오히려 5만 원대 쌀이 더 맛있다는 판단에 그렇지요.


쌀을 살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빈부격차가 예전보다 더하면 더할 지금, 극도로 가난한 사람들이 숫자로나 비율로나 상당할 텐데, 가난한 이들은 어떻게 쌀을 구입할까?"라는 생각이지요. 일반 마켓이 아닌, 최저급 쌀을 파는 그런 곳들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표면적으로도 사회에서 보기가 어려운 빈곤층의 삶은 얼마나 힘들지 마음이 쓰라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쌀을 살 때마다 '인민들을 굶겨가며 자기의 배만 불렸다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 트리오'와 나도 사실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지나친 생각이겠지만, 요즘의 Milennials, 즉, The Me Me Me Generation과 저도 종이 한 장 차이란 생각이 떠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구호단체를 믿고 후원하기에도 사기꾼들이 많은 세상이라 이 쪽으로도 쉽게 기부하기가 어려운 분들도 있긴 하더군요. 누구를 돕는 행위도 사방으로 막힌 듯한 세상입니다.




"There will always be poor people in the land. Therefore I command you to be openhanded toward your fellow Israelites who are poor and needy in your land (Deuteronomy 15:11)."


"땅에는 항상 가난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며 내가 너희에게 명하니, 너희 땅에 있는 가난하고 궁핍한 동족 이스라엘 형제자매들에게 너그럽게 베풀어라"



만약, 만약, 하나님이 실제하고, 이 세상 결국에는 선악에 대한 판단이 있다면, 과연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변론을 할 수 있을까요?



- September 02,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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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826161824_dkortuar.jpg 사진: 영등포 광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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