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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지나가는 생각들

by Rumi


2005년작 Broken Flowers라는 영화가 요즘 자주 떠오릅니다. 경제적으로 성공했고 이름도 어느 정도 세상에 알려진 Don이라는 주인공의 이야기로, 이 남자는 비혼입니다. 어느 날 이 사람은 분홍색의 편지를 우편으로 받게 되지요. 20여 년 전의 옛날을 추억하는 내용의 편지였지만 동시에 19살이 된 자신의 아들을 키우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지난 연인들 중 누가 이 편지를 보냈을지 매우 궁금해진 Don은 과거의 연인들, 5명을 찾아 길을 떠나고, 이들을 만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지요. 특히 분홍색과의 관련성을 두고 어떤 힌트를 찾으려는 계획과 함께.


흥미로운 사실은, Don이 만나게 되는 과거의 연인들 모두 그에 대해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그로 인해 과거를 다시 현재로 불러내고 싶지 않아 한다는 점입니다. 어느 정도의 예의는 보이지만 뚜렷한 거리를 두거나 심지어는 그에 대해 매우 폭력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하지요.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도 있습니다. 결국 Don은 그 분홍색 편지를 보낸 사람을 찾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지요. 그에게 남은 것은 broken flower들, 그러니까 아마도 과거 자신의 미숙함으로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진 과거의 추억들과, 자신만큼이나 피폐해진 여인들의 모습들 뿐이었습니다.


이 영화가 자주 생각 속에 떠오르는 이유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Don과 같이 관계에 대해 미숙했고, 또한 경솔했으며, 이성보다는 감정 (감성이 아닌)으로 제 과거의 그 사람들을 대했기에, 저 또한 broken flower들을 들고 있는, 후회 한 다발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이라는 점. 인내보다는 질투가, 배려보다는 욕심으로 점철된 관계들이었습니다. 이 여인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도 꽤 깊습니다. 하지만 Don이 경험한 냉랭한 모습들을 그가 했듯이 담담하게 받아들이지는 못 할 듯합니다. 아직도 그 사람들을 생각하자면 인내보다는 질투가, 배려보다는 욕심이 떠오르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과거의 추억들 중 두 사람과의 추억만은 아직 시들지는 않은 듯합니다. 어쩌면 다시 만나게 된다면 생기가 돌기도 할 듯하지요. 그중 한 명의 경우는 제가 잘한 결과라기보다는 그 사람의 인내와 사랑이 저의 그것들보다 컸기에 지금까지도 호감 어린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 듯합니다. 또 한 명은 아름다운 관계의 절정에서 우리들의 이유가 아닌 다른 이유로 인해 서로로부터 떨어져 나간 사이로, 아마도 다시 그 사람을 찾을 수 있다면 안도의 미소로 서로를 안아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요? 과거의 그 사람이 되었건, 또는 새로운 만남이 되건 간에, 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요? 젊은 시절의 열정은 기대할 수도 없고, 이를 추구하기엔 정신적 그리고 육체적으로 무리겠지만, 사회적 그리고 도덕적인 테두리 안에서 재회 또는 새로운 만남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선택불가한 일이기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것 또한 축복일지도 모르나, 반면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간절함만 있고 이를 해결할 방법이 없는 상황만을 두고 본다면 그다지 즐겁지는 않습니다.


가을이라 그런지요, 또는 추워진 날씨 때문에 이런지요? 누군가와 다시 시작할 수 있을지 자문해 보지만 결국은 아마도, 그리고 또다시 별다른 결실 없이 끝날 가을이 될 듯합니다.



- October 2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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