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말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민수씨를 처음 찾아가 쓸쓸히 돌아온 그날부터 이 노트를 적기 시작했습니다. 짧은 기간동안의 느낌들이 왜 이토록 저를 사로잡는지.. 그리움이라고 생각하고 보아 주십시오."
1987년 겨울에 MBC 베스트셀러극장 "144화 - 대설부"의 한 대사입니다.
오랜 세월을 통해 찾고 있던 드라마 (단편영화) 를 지난 2016년에 구매했습니다. 1987년 겨울에 MBC 베스트셀러극장을 통해 방영되었던 "144화 - 대설부 (원작 한수산 소설가)." 37,400 원입니다. 영화도 이제는 거의 DL 을 받아보는 제가 이런 지출을 하다니. 하지만 이 단편 드라마는 어느 site 애서도 구할 수 없는 자료였습니다. 해바라기의 fan 이라 그들의 모든 LP 는 다 가지고 있었기에, 이 영상을 확보함에 따라 저는 나름대로 가수 해바라기와 관련된 독보적인 collector 가 되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 단편영화를 처음 접했을 때가 1988년 1월이었습니다. 미국에서는 1980년대엔 한국방송프로그램들을 비디오가게에서만 rent 할 수 있었던 때라, 부모님이 주말에 보시기 위해 제게 여러 비디오를 빌려오라고 시키셨지요. 그 때 빌려온 비디오들 중 하나가 이 프로그램. 저 혼자 미리 이 프로그램을 오후 늦게 VCR 에 넣어서 틀어놓고 집안 일을 하던 중, 귀에 익은 노래가 흘러나오더군요; 해바라기 (이주호/유익종) 의 "오랜 침묵은 깨어지고" 였습니다.
이 노래가 나오던 장면은 한 남자 (배우 길용우) 가 한 여자 (죽은 형의 애인) 와의 애틋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채 도피하다시피 온 시골의 한 역, 어느 날 그를 찾아온 지인을 통해 전달된 그녀의 편지에는 그녀의 마음 또한 그와 같았음을 고백하는 글이 적혀 있지요.
그 후 그는 기차역으로 어느 약속한 날에 그녀를 만나러 가지만 그녀는 오지 않고, 그는 쓸쓸히 플랫폼을 떠나는데... 뒤에서 다가오는 한 사람 ---- 그리고 이어지는 카메라의 long take 와 해바라기의 노래 - 영화를 볼 때 제가 제일 좋아하는 부분인 마지막 end credit, 거기에 제가 참 좋아하는 소품/요소들... 시골, 겨울, 기차역, 남자, 여자, 그리고 노래, 이 모든 것들이 완벽하게 어우러진 장면입니다.
단편영화의 이야기 자체는 전체를 보면 지금의 기준으로는 정말 우스울 수 있지만, 이 장면은 그리고 이 장면과 너무나 잘 어울리고 너무 멋진 가사의 이 노래를 아주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