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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Sep 28. 2021

"구화식품"

지나가는 생각들

1980년대 뉴욕시 Queens의 Flushing 에는 구화 식품이라는 식품점이 있었습니다.


Manhattan에서는 지하철로 1시간 20분 정도 멀리 떨어진 Queens의 맨 동쪽 끝자리 변두리였던 Flushing 은 당시 한국인, 중국인, 그리고 유럽계 이민자들이 꽤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토박이 백인들도 아직 주류였지만 이민자들이 점차 자리를 넓혀가던 그 당시였지요. 이민자 전철이라고 아직까지 알려진 7 Train의 종점이 이곳에 있었고, 출구에서 도보로 10분 내에 도착할 수 있었던 가장 가까운 한인 식료품점이 이곳이었습니다. 주변 아파트 단지 (한국 같은 아파트가 아닙니다만)에서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던, 대부분의 뉴욕 한인 이민자들이 첫 미국 생활에서 싫건 좋건 가장 처음 접하게 되는 한국 가게이기도 했지요.



처음 이 가게에 들어갔던 때가 80년대 중반이었는데, 서글픈 기억이 아직도 있습니다. 매우 허름하기도 하고 되는대로 생긴 가게 같았던 당시 구화 식품의 겉모습 때문인지, 들어가고 나오는 사람들까지 왠지 불쌍하고 거칠게 보였고, 저 또한 부모님을 따라 거기 들어간다는 게 마음에 내키지 않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나마 들어간 이유는 당시가 제 가족에게는 이민 초창기였기에 아직도 미국 상품이 익숙치 않았던 때라, 이 가게에서는 한국상품을 많이 볼 수 있고 살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하고 들어갔던 가게... 거기에 미국 식료품점에 갈 때마다 들던 끝도 없는 긴장감도 없겠지 하는 안도감과 함께. 하지만 들어가 보니 기대했던 한국상품이나 물건들이 많지 않았고 반면 중국 또는 일본 상품이 주로 많았습니다. 점원도 한국사람들이었고 말도 한국어였지만 이미 오랜 이민생활을 한 사람들이라는 게 바로 느껴졌고, 그에 따라 이유 없는 이질감과 소외감(?) 이 들었습니다. 문을 지나 이 칸 저 칸에 들어서자 간간히 찾을 수 있었던 한국산 공산품들 - 대야, 바가지, 그리고 심지어는 석유통에서 석유를 뽑아내는 빨간색 손잡이 자루와 반투명 호스가 두 개 달린 손펌프까지 - 이런 것들이 꽤 반갑긴 했지만, 곧 서글픈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 이 상품들도 멀리 한국을 떠나 여기까지 오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에 왠지 저나 그 상품들이나 불쌍하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이민자들이 워낙 삶이 바쁜지라, 이런 식료품점에서는 여러 음식들을 만들어 놓고 팔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김치도 만들어 팔곤 했지요. 하지만 배추가 다르고 양념이 한국산이 아니라 김치 맛도 참 이질적이었지요. 다른 반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도 이민 첫 해엔 가족 모두가 바빴기에 어머니가 김치를 만들 수 있는 시간이 없어서 이곳 구화 식품에서 싫으나 좋으나 김치 및 여러 밑반찬들을 참 많이 사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정착이 된 후 자연스레 집에 차가 한 대 생기고 (당연히 미국차), 그에 따라 여느 교포들이 그랬듯이 Flushing에서는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다소 고급스러운 여러 한인 식료품점에도 가게 되었습니다. 이 때는 마치 신분상승이나 한 듯한 기분이 들었지요. 그 후 생활환경과 수준이 점점 더 넓고 높아짐에 따라 주말 샤핑도 동네에서가 아닌, Manhattan을 지나 Hudson 강을 건너 New Jersey에 있는 "야오한"이란 상호의 대형 일본 식료품점까지도 가게 되었지요. 그때 기분은 참 묘했습니다. 또 다른 차원의 세계였다고 할까요?



이민 햇수가 늘어남에 따라 Flushing에서 Bayside로, 그리고 New Jersey로 이사를 가면서 (일종의 신분상승 같은?) 자연스럽게 그리고 일부러라도 가지 않게 된 구화 식품점은 지난 2006년인가 주인이 바뀌고 외부 전경도 많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간판도 영어로 바뀌었지요. 이 동네, 그리고 이 가게 - 뉴욕에 가더라도 찾아가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마음 깊은 구석엔 참 고마운 가게로 남아있습니다.


외지에 나가면 음식이 너무 다릅니다. 당시 한국에서 먹던 맛을 찾고 다녔던 우리 가족은 지금은 한국에서 미국음식을 찾지 못해 아직까지도 아쉬워합니다. 해외에서 먹는 제대로 된 한국음식이 얼마나 귀한지, 그리고 그 반대로 한국에서 제대로 된 미국 음식도 얼마나 반가운지요. 그리고 오늘 80년대 뉴욕의 구화 식품점이 왜 떠오르는지 - 한국 또는 미국에서는 살기가 그리 재미가 없어 최근에 둘러 본 몽골리아, 대만, 일본, 싱가포르, 페루, 러시아 - 깊이 고려하고 있는 나라가 몇 있지만, 한국과 미국, 결국 이렇게 일직선을 이루는 삶은 피할 수 없나 봅니다.


생각나는 대로 수정 없이 적어보았습니다. 앞뒤가 맞을지 모르겠군요.


September 2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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