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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비좁아서 이럴까요?

지나가는 생각

by Rumi

1980년대 후반이었습니다. 십 대 시절이었고 맨해튼 midtown 중심가에 있던 큰아버지의 가게에 방학 때마다 part-time을 하러 가던 기억이 있습니다. 렉싱턴 애비뉴 선상에 위치한 Bloomingdale's 백화점 바로 옆에 있던 가게로, 일반 펜부터 시작해서 $10,000 이 넘어가는 fountain pen까지 팔던 boutique 샵으로, 학생들부터 시작해서 평범한 사람들과 Upper East Side 에 사는 돈이 매우 많은 사람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방문하던 곳이었지요.


이 가게 오른쪽에는 보석상이 있었습니다. 30대 후반의 유대인계 미국인 형제가 운영을 하던 가게였지요. 큰아버지의 가게와 지하실을 공유하는 구조로 되어있어서 그들과 자주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이 두 형제들 중 나이가 어린 사람과 자주 이야기를 했었지요. 당시 제가 십 대 후반이라 삼십 대 초반인 그와 공유할 수 있는 주제가 많지는 않았었기에 주로 New York Knicks 게임 이야기, 뉴욕시 교통 이야기, Donald Trump와 그의 아내 이야기 정도가 이야기의 주제였습니다. 1990년대 후반 제가 20대 후반이 되어 큰아버지를 찾아갈 때마다 이 사람과 이야기 또한 나누었는데, 우리들의 이야깃거리는 여전히 뉴욕 닉스 프로농구팀, 뉴욕 양키스, 뉴욕시 교통문제, 그리고 여전히 Donald Trump 이야기 - 아, Ivana 가 아닌 그의 재혼녀인 Marla 이야기 - 언제나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재작년이었던 2019년, 큰아버지의 가게가 없어진 지 오래되었지만 그 보석상에 작년에 가서 인사를 했었지요. 여전히 주제는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큰아버지의 가게 왼쪽에는 sandwich 가게가 있었습니다. 테이블도 많아서 점심에도 바쁘고 다양한 사람들이 오는, 한 가족이 운영하는 가게입니다. 제게 있어서는 sandwich를 어떻게 주문하는지 배울 수 있었던 곳이었지요. 80년대 후반 이 가게는 40대의 부부가 카운터 쪽에서 일을 했고, 이 부부의 딸들이 빵을 만들었었지요. 꽤 아름다운 외모의 백인 여성들이라 제가 마냥 동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녀들이었습니다. 이들과의 대화는 주로 Seinfeld라는 당시 꽤 유명했던 sitcom이었고, 부부는 제게 주로 학교생활과 사회생활에 대해 질문을 많이 했었던 기억이 납니다. 공부가 중요하지 않고 세상의 중심인 뉴욕에서 다양한 것을 경험하라는 아저씨의 충고도 매일같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올여름까지도 자주 갔던 이곳, 이제 카운터는 딸들이 교대로 보고 있었고 그녀들의 부모는 작은 사무실에서 간단한 사무만 보시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제는 70대가 된 노부부는 저와 간단한 인사만 나누지만 그래도 가끔 카운터 쪽으로 나와있을 때면 이제는 제게 학교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해주시지 않고, 세상을 경험하라는 이야기도 이제는 조금 바뀌어서 "이 세상, 별거 아니다. 그냥 좋은 마음으로 사는 게 제일 좋다"라는 말씀을 하시지요. 두 딸들도 예전의 미모가 아직은 남아있지만, 그녀들도 50대가 한참 지난 나이라 전같지는 않습니다. Seinfeld 이야기 또한 이젠 하지 않지만 나이가 드는 상황에서 경험하는 일들이 그나마 짧은 이야기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또는 대학교 시절 오랜 친구들을 만나도 우리들의 이야기는 주로 스포츠, 자동차, 그리고 각자의 건강상태나 취미에 대해 이야기를 합니다. 20대 시절에는 스포츠와 여자 이야기, 그리고 30대 시절에는 여기에 직장에서 겪는 어처구니없는 이야기가 더해졌지요. 40대에 들어서는 애들 이야기가 추가되었습니다. 물론 저는 아이들 이야기가 나오면 듣고만 있는 입장입니다. 물론 정치, 자산관리 또는 stock market 이야기도 하지만 가벼운 정도고 이런 주제로 열띤 논쟁을 한 기억은 없습니다. 구체적인 수치가 나오거나 (누가 얼마를 벌었다느니, 어떤 집을 샀다느니, 등) 각자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자랑은 하지 않지요. 모임에 참석한 친구들 중 누가 무슨 차를 탄다거나 소식이 뜸한 친구가 어떻게 산다거나 또는 어디로 이사를 갔다거나 하는 주제는 그저 최소한 겉으로는 안 합니다. 일부러 피하는 것이 아닌, 그런 이야기는 원래부터 하지 않는 문화지요. 주말이나 소규모로 특별하게 만나는 경우라도 fancy 한 곳을 간 적이 없고 공원, 패밀리 식당, 야구장과 같은 일반적인 장소에 주로 갑니다. 참고로 제 직장 친구들은 주로 Wall Street 출신들이고, 제 학교 친구들도 이곳 한국에 비교하자면 top 10% 에 들어가는 배경을 사는 친구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아마도 호사스러운 생활 (사실 이들이 돈이 많아도 호사스러운 생활을 한 적이 없는 듯합니다만)에 대해 접하면서 제가 조금이라도 시기하거나 질투를 느끼거나 또는 속이 뒤틀어지는 경험은 한 적은 없었지요. '일반적인' 삶을 사는 친구들도 많은데, 이들과 만날 때와 저들과 (상대적으로 부유한) 만날 때의 차이가 없습니다. 각자의 다양한 삶의 방식에서의 이야기들을 정도껏 하는 정도입니다.


그렇다고 미국인들이 정치나 돈 stock market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고, 그 반대로 매우 강합니다. 특히 정치의 경우에는 매우 직접적인 정치참여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지역에서 열리는 정치적인 모임이나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꽤 많고, 정치인들도 부지런하게 그들의 존재감과 성과를 (선거철 때만이 아니라 거의 매주, 아니면 늦어도 한 달 내엔) 홍보하고 알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타운 내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나타나는 사람들 중 시위원은 물론이고 county 단위의 정치인들이 꼭 있는 것도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한 달이 채 안 되는 한국 체류기간 - 다양한 식당과 커피샾, 다양한 사람, 그리고 다양한 TV 프로그램과 광고들을 통해 2021년 말 한국의 사회상을 접하고 있습니다. 땅이 좁아서 그런가요? 요즘 한국 내 주된 이야기는 아래와 같이 '간단히' 정리가 되더군요:


- 오징어 게임

- 50억 퇴직금으로 시작하는 정치 이야기

- Crypto Currencies, 주식 & 부동산

- 성공

- 애들 교육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이른 오전에 가는 콩나물국밥집에 가도 옆 테이블들에서 하는 대화의 주제가 위 5개에서 벗어나지 않더군요. 외모로 판단함은 아니지만 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듯 한 대화중에서도 기본적으로 나오는 돈의 단위가 억대입니다. 5억, 10억, 이 정도를 투자하면 좋다느니, 또는 어느 학교에 어느 프로그램에 또는 어느 사교육이 좋다는 이야기 - 이에 따르는 비용 이야기 (노골적인 자랑도 섞은) 들이 따릅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할 수 없이 큰 음악이 쩌렁쩌렁 울리는 커피샾에서 듣고 있으면 한국만큼 잘 사는 나라는 없더군요. 20대부터 시작해서 60대까지 모두 이 이야기로 통일되는 일관성을 보이는 것도 참 희한합니다. 이런 곳에서 나오면 거리에는 수많은 버스들이 지나가고, 그 버스들에는 멋진 연예인 (주로 여자들) 들이 꼭 끼어 뭔가를 광고하는 이미지가 붙어 있습니다. 길에서 보는 최고급 차량들의 비율도 뉴욕의 4배는 되는 듯 합니다. 야구선수들 모자와 유니폼에는 덕지덕지 광고문구들과 로고가 붙어있는 것도 참 이질적으로 느껴지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자살률은 세계 1위이고, 평등지수도 최하위입니다. 언어를 가르치는 강사들의 말을 주관적으로 듣자면 차별 또한 심각한 수준이기도 하지요. 정치의 수준도 뻔합니다. WEF에서 매년 발표하는 부패지수를 포함한 통계에서도 한국은 중하위입니다. 일본에 비해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들의 수가 3배가 넘는다고 하던데 교육에 대한 열정이 어떤 구체적인 outcome으로 아직까지는 나오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필터 없이, 맞춤법 검사없이 써내렸습니다.


-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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