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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May 27. 2022

온전한 어둠 속 평안

지나가는 생각들


온전한 어둠 속에 홀로 앉아 있자면 매우 평안합니다. 새벽 2시 또는 3시가 이를 경험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이겠지요.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 최고조의 적막한 상태도 이 시간대에 경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밤의 적막 속에서도 작은 소리들은 여전히 들립니다. 벽에 걸려있는 시계의 초바늘이 정확한 패턴으로 째깍거리며 움직이는 소리, 어디에선가 멀리 지나가는 자동차에서 나는 중저음의 엔진음, 창 밖 나뭇잎이 서로 부딪히며 나는 작은 부스럭거리는 소리, 그리고 옆 방에서 이미 깊은 잠에 빠진 식구들의 높고 낮게 들리는 고른 숨소리도 이 시간에는 매우 크게 들립니다. 상당히 거리가 있지만 화물기차들이 아주 간간이 지나가는 기찻길이 위치한 방향에서 들리는 기차의 나지막한 휘슬소리도 이 적막함 속에 존재하는 작지만 큰 소리들이기도 하지요.


이런 소리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온전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일이란 마치 치유를 받는 듯합니다. 이런 작은 소리들이 이 온전한 어둠을 누리는 데 있어 간간히 방해적인 요소들이 되기도 하지만, 이런 소리들을 들을 수 있는 시간대는 이때뿐이라 오히려 특권이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어느 새벽에는 라바 램프를 켜 놓고 이를 응시하며 몇십 분이고 앉아 있기도 합니다. 램프의 하단 속에 위치한 백열전구에서 생성된 열로 인해 고체로 있던 노란색 라바가 야광빛을 띤 듯한 액체가 되어 투명한 병 상단부로 올라가고, 병의 상단부로 올라가는 사이에 금세 식어버린 라바는 그 무게로 인해 다시 아래로 내려가고, 그리고  아랫부분에서 백열전구로 인해 다시 데워진 라바는 다시 위로 올라가는 반복적인 움직임을 그 온전한 적막함 속에서 바라보는 일도 평안함을 느끼게 하기도 합니다.



모두가 잠든 작은 마을의 전경을 바라보는 것 또한 이 온전한 어둠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이기도 합니다. 운 좋게 저 멀리 떠 있는 초승달과 별을 볼 수 있는 맑은 새벽하늘이라면 더 이상 좋을 수도 없겠지요. 우울한 날에는 가수 이문세의 "내 오랜 그녀"를 매우 적은 볼륨으로 설정해 놓고 듣고 있자면 왠지 마음속이 촉촉해지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러다 보면 그 우울함도 어느새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v6I7vrQoJ0


화살같이 빠르게 지나는 이 세상, 숨 돌릴 틈이 없는 하루 속에서 나만의 온전한 평안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은 이 새벽시간인 듯합니다. 검은색 벨벳 가운처럼 부드럽고 포근하며 심지어는 안전하게 느껴지는 이 새벽의 적막함 속에 깊이 파고든 상태로 여러 생각과 질문들이 많은 갈래로 머릿속에서 흩어져 나오지만, 이렇게 마구 쏱아낸 의식의 갈래들은 저 어두운 하늘 속 어딘가로 날아가 버리고 맙니다. 여전히 해답이 없는 인생살이지만, 그래도 이 새벽이 선사하는 차갑고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또 내일을 살아갈 준비를 해 봅니다.


- From the scribbles taken down in the early morning of May 26th, 2022, Tenafly, N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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