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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May 25. 2022

장례식

지나가는 생각들


장례식 친척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사이가 틀어져서 또는 바빠서, 아니면 필요하지 않은 까닭에 쉬운 전화 한 통 문자 하나 보내지 않고 지내던 친척들이, 사촌 내 관계 안에서 누군가가 세상을 떠나면 거리가 멀다 하고 순식간에 장례식장에 모여서 떠난 사람에 대한 예를 다하고 그 사람을 추억함과 동시에 남은 가족과 친척들 사이에 그 어떤 불협화음도 다툼도 시기도 없었던 듯 이런저런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하는 가족관계 또는 친척관계를 말합니다. 그리고 장례식이 끝나면 여느 때와 다름없이 수개월 또는 수년간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는, 그런 관계 말이지요.   


제가 그런 관계 속에 있습니다. 불행하게도 아버지 쪽 및 어머니 쪽 친척들과 모두 그런 관계인데, 그들 또한 서로 간에 같은 입장이지요. 그래도 이런 모임에나마 친척들이 모이고자 하는 이유는, 서로가 그간 어떻게 지내왔는지 궁금해서는 아닙니다. 떠난 사람에 대한 슬픔과 그리움 때문에 모인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모두가 장례식장에서나 만날 수 있게 나름대로 '노력' 하는 이유는 그간 멀리 거리를 두고 살던 가족 및 친척들을 만남으로 내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으며,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합니다.   


이들을 만나는 일을 통해 알게 되는 것들이 몇 있지요. 삶이라는 게, 그리고 나라는 존재가 내 일생의 범위보다 더 넓으며, 내가 살고 있는 동네, 내가 일하는 직장, 그리고 내가 속한 다른 관계보다 이 혈연의 관계가 세상이 내게 등을 돌릴지라도 이들만은 그래도 최소한 손을 내밀어 잡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의망을 확인할 수 있어서가 아닐까 합니다. 한 사람이 떠남으로 해서 그 사람이 남긴 한 타래의 실이, 혈연이라는 실이 이렇게라도 이 망할 세상을 사는 우리들에게 마지막 보루가 되어 주니 참 다행이지요. 언제까지일지는 모르나 가족 간 또는 친척간의 장례식에서만은 예전의 나쁜 기억들은 제쳐놓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채워지는 시간이 되길 영원해 봅니다.


이런 말이 있지요: "지혜로운 사람의 마음은 초상집에 가 있고 어리석은 사람의 마음은 잔칫집에 가 있다." 한 사람의 죽음이 우리를 조금 더 현명하게 해 주길 바라며, 초상집에 가는 발걸음이 체면치레가 아니길 바라봅니다.


-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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