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기 싫은 세상, 가을을 기다리며

지나가는 생각들

by Rumi


세상을 살고 싶지는 않은 지 꽤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삶을 끊고 싶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도 없고 하기도 싫지요. 지금의 세상을 살고 싶지 않은 이유는 멈춤 장치 하나 작동하지 않고 추락해가는 이 속세의 상황 속에 내가 선택할 여지 하나 없이 속해 있다는 사실에 있겠습니다. 인간들 가운데서 아무리 찾아보아도 바라 볼 사람 하나를 발견하기 쉽지 않고, 예전 그 사람들도 이제는 변해버린 지 오래입니다. 그나마 세상에 할 수 없이 속한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달리 - 출근과 퇴근이 정해져 있는 직장에 다니지 않고 있고, 결혼도 하지 않았으며, 사회적 또는 종교적 그룹에 속해있지 않고, 거기에 더해 한 장소에만 속해 있지 않는 삶이라 - 제 자신에 대해 판단해 보아도 외모를 제외하고는 지난 20년 전에 비해 그다지 변한 것이 없기에 이만큼 버텨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그런가요? 자연이 겨울의 혹독함을 이기듯 다시 살아나며 20대였던 제게 옅으나마 뚜렷한 기쁨과 희망을 주던 봄이라는 계절, 그리고 30대였던 제게 무엇이든지 해 낼 수 있을 듯한 느낌을 선사하던 여름보다는, 이 모든 것이 차차 식어가고 사그라져 들기 시작하는 계절, 세상이 왠지 차분해지는 계절인 가을이 언제나 기다려집니다. 그리고 이에 따르는 계절, 가을이 주는 쇠퇴에 이어 모든 것이 죽어있는 듯한 겨울은 더 기다려집니다. 그것이 도시의 가을이 되었건 간에, 아니면 제가 매우 열정적으로 그리워하는 New York Upstate의 가을이건 간에, 앞으로의 3개월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가오는 여름의 열기가 이번 가을을 더 진한 기억으로 남기길 바라며, 이번 겨울은 혹독하리만큼 매섭게 춥길 바랍니다.





-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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