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구절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만, 소설가 이문열 님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라는 소설 중 주인공인 형빈이 미국의 Santa Monica 해변에서 외로움을 달래던 중, 우연하게 윤주를 10년 만에 만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정당화될 수 없는 이 두 사람의 관계지만 이 둘이 재회를 한 후 "서로의 상처를 핥아주며" 위안을 삼았다는 표현이, 십 대 중반의 나이에 이 소설을 읽은 지 30년이 훌쩍 넘어가는 지금이지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삶을 살다 보면 다양한 순간들과 접하게 됩니다. 하는 일이 금융과 교육이라는, 그리고 법과 관련된 일까지 하다 보니 참 다양한 경우를 접하게 됩니다. 금융일은 고객의 돈을 관리하는 것이 주된 일이고, 교육업은 기업고객에 교육프로그램과 강의진을 파견하는 일, 그리고 법과 관련된 일의 경우 국외 지적재산권과 관련된 일인데, 이들 중 하나도 '유혹'과 멀리 떨어진 일은 없더군요.
업무의 영역에서 볼 때 유혹의 매력은 꽤 강합니다. 자산관리업이라는 일 자체가 엄격한 관리 속에서 이루어지기에 횡령이나 사기 같은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private banking의 경우 고객의 자산운영을 하다 보면 중개인의 입장에서 더 많은 '수수료'를 얻기 위해 합법적이지만 딱히 필요가 없는 거래를 하는 방식으로 사기 아닌 사기를 칠 수 있는 기회는 언제나 도사리고 있지요. 교육업의 경우 고객사의 이유로 인해 진행되지 않은 수업에 대한 시간단가 청구 등 또는 교재 개발비용 등에서 아주 쉽게 추가 10%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습니다. 지적재산권 관련 업무도 retainer 청구 시 그럴듯한 비용청구를 통해 괜찮은 부가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회는 매일같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고객사 담당자의 추가 수익을 위해 (또는 업무관계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선지불 후 청구의 방식으로 그 담당자의 용돈을 벌어줄 수 있기도 하지요.
사적인 영역, 즉, 업무의 테두리 바깥에도 이런 기회가 존재합니다. 다만 이런 기회들이 금전적이 아닌 감성적인 또는 육체적인 성격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지요. 간간히 만나게 되는 사람들 - 특히 거의 15년 이상 알고 지내는 사람들 - 로부터의 관계 속에서 있을 수 있는, 오랜 세월을 통해 알고 지낸 사이에서만 가질 수 있는 서로 간의 익숙함과 타인에게서 느끼는 거부감이 없는 편한 사이라는 틈새를 타고 들어오는, 누구에게는 참 달콤할 수 있는 손길입니다.
공교롭게도 제겐 그 상대가 여성인 경우가 꽤 많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도 그리고 미국에서도 이런 경우가 잦았는데, 20여 년 전, 업무 또는 개인적으로 알게 된 20대의 젊고 아름다운 친구들이 지금은 40대 중반 또는 30대 후반의 - 그래도 아직까지도 멋지고 아름다운 - 기혼여성이 된 지금, 그 예전의 순수하고 생각이 복잡하지 않았던 그녀들, 아직까지는 그래도 그 시절의 그 사람들이려니 생각하며 점심 또는 커피를 몇 번 같이 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주 적은 수였지만 (20명 중 1명의 경우의 수) 그녀들이 저를 만난다는 일이 이런 만남이 우정과 친분보다는 다른 목적도 있었다는 것을 경험한 때가 있었지요.
물론 이런 접근이 실제로 어떤 행위로 진행된 적은 없었고, 이에 대해서는 꽤나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특정한 여인과 마주하며 점심 또는 커피를 하던 과정에서 간접적이지만 꽤 명확한 '제안'을 받게 되면 처음에는 충격적이지만 속으로는 여러 생각이 들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인간으로서 당연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거의 바로 그리고 단호하게 거절을 하긴 했어도 생각만은 달라서 머릿속에서는 상상의 가지를 여러 갈래로 쳐 나가는 제 자신을 제 내면의 눈을 통해 보게 되던 경우가 많았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일방적인 '달콤한 유혹'을 거부한 후 제 의지가 되었건 그 사람의 결정이었건 간에 다시는 만나거나 연락을 하는 관계로 되어 버렸지만, 이런 일방적으로 황당했던 경우가 아닌, 제가 먼저 접근을 한 경우도 있었지요. 30대의 일이었고, 연애라는 테두리 안에서 제가 주도한 '접근'시도의 몇 안 되던 상대들도 미혼이었지만, 그리고 physical contact를 이성 간에는 절대로 하지 않아야 한다는 개인적인 믿음을 고수하기 위해 그 사람의 손을 잡고 싶어도 하지 않았고 그 검고 고운 머리카락의 향기는 어떨지? 하는 생각을 품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지요. 대부분의 경우 이 선을 방어해 내긴 했지만 두세 번 정도는 그녀의 어깨를 톡톡 두들기던 기억, 그리고 거리를 걸으며 이런저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며 살짝 그녀의 등 또는 손등에 아쭈 짧고 약하게나마 contact을 하기도 했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out of line'의 행동을 한 후 그날 밤만은 부담이 갈 정도의 죄책감을 가졌던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런 contact 뒤에 있던 제 마음속 생각을 제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런저런 유혹이 있습니다. 그게 돈이건 이성이건, 또는 내 분수보다 넘는 어떤 것을 가질 수 있는 욕심이건 간에 엄연히 존재합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며, 남의 눈을 철저히 피해 비밀리에 행할 수도 있는 일들입니다. 이런 제안에 슬쩍 넘어간 적도 적지 않습니다 - 이성 간에서는 없지만 금전적으로는 있음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이런 행위 이후 따르는 죄책감 또는 자괴감이 주는 파괴력은 상당합니다.
"The truth will set you free" 란 구절이 있습니다. 진리가 너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 라는 해석이 가능한데, 이는 Latin 어로 Vēritās līberābit vōs (biblical), Greek 어로는 ἡ ἀλήθεια ἐλευθερώσει ὑμᾶς 라고 하는데 성경의 John 8:32 에 예수께서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이지요.
죄책감과 자괴감이 들던 적지 않던 밤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이를 이겨내고 유혹을 뿌리친 후 마음이 들떴던 밤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이때 들던 구절이 "The truth will set you free" 란 구절이었지요. 믿고 있는 어떤 신념 (물론 이 신념이 제대로 된 것이어야 하지만)을 지켜내어 죄책감과 자괴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그 순간이 주는 짜릿함은 오히려 떳떳하지 않은 방법으로 돈을 많이 벌어 "그래도 괜찮아. 다 그러는데 뭐"라는 잘못된 만족감이나 "한 번의 일탈이었을 뿐, 그리고 제안한 건 그 여자인데 뭐" 라며 황홀함을 느끼는 그것보다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희열을 진리를 지킴을 통해 느껴보았으며 그렇게 매 번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유혹이 날이 갈수록 그 형태와 방법이 다양해지고 쉽게 보이기에, 앞으로의 battle 은 쉽지 않겠지요. 그렇기에 매일 밤, 물론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의 윤주와 형빈이 서로의 상처를 핥아주며 위안하는 그런 괴이한 것이 아닌, 저 혼자 매일 밤 하루를 다시 상기하며 "The truth will set you free" 란 구절을 생각하면서 일부 뚫렸던 벽을 다시 보수하고 100% 온전하지만은 않았던 하루를 싸매고 치료한 후 다음 날을 준비하는 과정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