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생각들
"Off the grid"라는 표현은 어느 정해진 틀 바깥으로 나간다는 의미입니다. 요즘에는 탈도시 (giving up life living in a city)또는 탈사회를 의미하는 용어로 더 잘 쓰이지요. 하지만 이 표현은 다른 경우에도 사용해도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 자신이 정해놓은 틀에서 빠져나온다는 의미로도 통할 수 있지요.
20여 년 전, 제 친구이자 변호사, 그리고 교포 2세인 태임이가 이런 말을 해 주었습니다: "You like women, don't you? I mean, not the way that most guys do, but you adore women. Tell me I am right on this (너, 여자 좋아하지? 내 말은 대부분의 남자들이 여자를 좋아한다는 그런 게 아니라 넌 여자를 여성으로 동경하잖아. 내 말이 맞지?)"
틀리지 않습니다. 이 말을 해 준 사람이 여자였으니, 저를 십수 년간 보아 온 한 여자의 관찰과 예측이 틀릴 확률은 거의 없겠지요. My adoration toward female 은 아마도 욕망을 누르며 애써 여자를 부인하는 수도원의 사제들보다도 더 'geniune'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온 지 오래지만 이제는 확신까지 설 정도니까요. 이렇게 적어놓으니 마치 자화자찬을 하는 듯하거나 자기부정을 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정말이지 "Who am I kidding?"이지요.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은 거의 없고, 저도 그에 속하지만, 그래도 이 영역에 있어서는 저는 제 자신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다행이지요. 그렇다고 그 한 여성을 찾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 삶에서의 지금 이 시점은 어찌 보면 pivoting point입니다. 세상에 속해, 즉, on the grid에 속한 이상 매우 중요한 타이밍이지요. 만약 100세까지 살게 된다면 이제 마음속에 차마 비우지 못했던 여러 컵들에 담긴 것들을 대략 반 정도는 비워야 할 시기이기도 합니다. 물론 모든 컵들을 일률적으로 반 정도까지 비워야 하는 것은 아니라, 어떤 컵들은 채워 둔 상태로 그냥 두고 또 다른 어느 컵은 반 이상 비워야 합니다. 아예 전체를 비워야 할 컵들도 있더군요.
이 컵들 중 하나가 이 Adoration toward Women입니다. 반 정도는 비워야 할 시기가 왔습니다. 누군가를 만나 그 예전처럼 보드랍고 간지러운 감정을 나눈다거나 조심스럽게 사랑의 메시지를 문자 또는 이메일을 통해 보내는 일, 또는 순간의 눈빛과 손길에 마음속 깊은 어딘가가 떨리는 그런 상대로의 여성을 '기대'하는 일로부터의 자발적인 은퇴, 즉 누군가를 off-the-grid from the search 가 됩니다. '수색을 영구적으로 중단'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후회나 미련은 없지요. 어느 여성과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지는 않았지만 참 소중한 추억을 저와 나눈 여성들은 제 삶에 소수지만 존재했었습니다. 이런 추억으로 인해 이들 중 한 명과 결혼이라는 것을 하지 않았음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이들이 제게 준 impact는 새로웠으며 놀라운 것이었고, 충격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지요. 앞으로도 그 추억으로 인해 감사하며 살아가겠지요. 십 대 후반이었던 1990년, 다니던 high school 전체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그 애가 어느 날 수업 후 제 등 너머로 제 한국이름을 부르며 미소를 띠며 저를 바라보던 그 순간 - 제 한국이름은 그때 단 두 명만 알고 있던 때라 그 당시의 충격이란 지금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정도입니다. 16살이었던 저보다 9살이나 더 된 사람이었지만 제게 첫 kiss를 해주었던 Holly Stoller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여성, 국민학교 6학년 때 짝이었으며 첫사랑(?)이었던 그 애가 거의 20년이 지난 2001년 어느 봄날에 한국에서 보내준 그 편지로 시작된 이후 6개월간의 꿈같았던 이야기들, 거의 5년간 이렇다 할 어떤 특별할 순간도 없었으나 마치 연인들처럼 자주 만나고 시간을 함께 했던 어느 재벌가문의 딸과 함께 한 New York의 추억, 그리고 42살이었던 몇 년 전 알게 된 공중파 방송사 소속이었던 26세 기상캐스터와의 소박한 이야기들을 돌아보자면 지금도 어제와 같은 이야기들로 다가옵니다.
지금도 제 자신에게도 궁금한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 사람들과의 어떤 '특별한' physical 한 관계는 없었다는 점입니다. 속된 말로 야구에 빗대서 관계의 진행을 first base 니 second base 니 하는 경우가 있는데, 손만 잡거나 안아주는 정도는 아마도 1루 진출도 안 한 경우가 되겠지요? 또 하나는 제가 먼저 추구한 관계가 아닌, 전혀 무방비상태였던 제게 다가온 것이라는 점이지요. 그렇기에 이들과의 기억이 충격으로도 기억되는 듯합니다.
이들 중 한 명과 결혼을 했다면 지금 저는 어떻게 살고 있을지요? 추억만큼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며 살고 있을 가능성은 0에 가깝겠지요. 이렇기에 아마도 결혼이라는 institution 은 저를 비껴갔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태임이의 말대로 제 adoration toward female 은 이제 남은 반 컵만큼의 분량만 있습니다. 이 남은 반이 이제 버려야 할 반만큼 같지는 않겠지요. 이제 애틋한 감정은 뒤로 하고 살아갈 예정입니다. 그래서 제 추억들이 훼손되지 않고 고스란히 마음속에 아름답게 남아있을 수 있게 말이지요.
어떤 방식으로라도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에, 50이 되어가는 한 남자가 자신을 위로하는 글을 남겨봅니다. 나중에 지우지나 않길 바라는 마음도 있음이 마지막 click 을 매우 어렵게 하는군요.
- January 11,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