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칠곡 할매시인이라고 알려진 박금분 할머니라는 분이 세상을 뒤로 하셨습니다. 90세를 앞둔 나이에 한글을 배우고 시를 쓰셨고, 그리고 영화에도 모습을 보인 분이었습니다. 그 분의 작품들 중 이런 구절도 있다는군요:
“이제 아무 것도 없다.
먹고 싶은 것도 없다.
하고 싶은 것도 없다.
갈 때 대가
곱게 잘 가는 게 꿈이다.”
(박금분 할머니 시 ‘가는 꿈’)
세상을 떠나신 올해 연세가 94세였지요.
이 곳 Brunch 글들을 읽다보면 '작가'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작가님" 으로 시작하는 댓글은 일반이지요. 이런 호칭을 받는 분들도 그들의 답글을 읽으면 꽤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표현이 부담스럽습니다. 이 단어가 주는 느낌은 '마음 속 생각들과 느낌들을 아주 적절한 언어로 풀어내는 보기 드문 재능을 가진 사람', 즉, unwritten thoughts and feelings 를 written expression 으로 풀어내어 (즉, 무형의 것을 유형의 것으로 변화시킨 후), 읽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그 written expression 을 unwritten thoughts and feelings 로 전달하는 (즉, 유형의 것을 무형의 것으로 다시 변화시키는) 기가 막힌 능력을 가진 사람인데, 사실 이런 '작가'는 많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책이 하도 흔하고 읽을거리가 넘치고 넘치는 지금, 이 유형의 것들을 써내는 사람들을 모조리 작가라는 호칭으로 부르는데, 글쎄요... "사랑"이라는 단어가 가장 overused 되어 사용되는 단어라는 것과, 그렇기에 듣는 사람으로 인해 예전과 비교하면 그다지 큰 반향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단어가 되었다는 사실을 비추어보면, "작가"라는 표현도 "사랑"이라는 단어만큼이나 최소한 이 곳 브런치에서는 남용되는 듯 합니다. 여기에 글을 쓰는 우리, 과연 모두 작가의 자격이 있을까요? 아니면 일기장 대신 이 곳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마음 속 풀리지 않은 무언가를 쏱아내는 recycling bin 같은 장소가 아닐까요?
미국의 경우 배우들의 경력을 보면 writer 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는 경우를 간간히 봅니다. 그런데 과연 영화배우가 "작가"로도 불려질 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ghost writer 를 통해 책 한 권 써 냈다고, 또는 이 곳 Brunch 에 글을 올린다고 해서 작가라는 타이틀로 과연 불릴 수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 물론 저 자신도 포함이지요.
이렇게 보면 박금례 할머니는 작가가 맞습니다. 무형의 것을 유형의 것으로 변화시킨 후, 그 유형의 것을 무형의 것으로 다시 변화시켜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전달하는 데 성공하신 분이니까요. 기가 막힌 능력을 가진 사람이셨습니다. 매우 짧은 글로도 많은 말을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전하는 능력을 가졌던, 작가가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