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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초리

지나가는 생각들

by Rumi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다니던 1990년대 초반에는 거의 모든 주말마다 부모님을 따라 백화점과 동네가게를 돌아다닌 기억이 있습니다. New York City에 살던 때였고, 살던 동네에서 100 miles 가량 떨어져 있는 Long Island의 Manhasset이라는 township에 있는 mall에 가는 일은 그래도 소요시간이 적은 길이었고, 오히려 살던 곳에서 남쪽으로 30-40 miles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는 Brooklyn에 위치한 어느 mall에 가고 오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아무래도 Brooklyn 은 뉴욕시의 일부라, 유동인구와 차들이 많은 이유였겠지요. 특히 Brooklyn 은 개발이 더딘 지역이라 도로망도 아주 열악했었습니다.


부모님을 따라다니는 일을 좋아서 하는 십 대 후반의 남자아이는 없습니다. 단연코 없다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두 분을 매 주말마다 따라나선 이유는 행여 간혹 경험하게 되는 무례한 백화점 직원이나 주차관리인 등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일단 부모님의 영어가 수월했다면 신경을 그다지 쓸 일이 아니었지만, 행여 영어를 온전히 하셨더라도 제가 따라나섰음이 확실함은,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겪는 곤란함은 언어문제뿐만이 아닌 범죄 등에 대해 노출이 쉽게 된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소하게는 길을 걷다가 고의로 팔을 치고 가는 사람들도 있었고, 이를 시작으로 시비를 거는 마음이 악한 사람들이 일부 있었기 때문이지요. 지금은 그 정도가 1990년대에 비하면 매우 심합니다. 지금과 비교하기가 어려울 정도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쉽지 않은 이민자들의 삶, 아시안 이민자들의 삶입니다.


주말마다 이렇게 부모님의 'bodyguard'로 다니면서 경험을 통해 알게 된 흥미롭고, 조금은 슬프기도 하며 또한 예측이 가능했던 요소들이 있습니다. Long Island 깊숙이 들어갈수록, 즉, 뉴욕시에서 동쪽으로 가면 더 갈수록 이런 "마찰"을 거의 경험하지 않습니다. 반면 서쪽으로 올수록, 즉, 뉴욕시 경계 또는 그 안에 있는 샤핑지역에 갈수록 이 불쾌한 경험을 몇 배는 더 하게 되지요. 저는 경험상 이런 차이의 이유를 해당 지역 백인의 분포도에 있다고 판단했으며, 지금도 동일합니다. 조금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백인들이 대다수 거주하는 Long Island의 Manhasset이라는 지역 내 있는 상점들은 직원들도 대부분 백인들이고, 뉴욕시 Brooklyn 내에 위치한 샤핑몰이나 중대형매장의 경우 직원들의 구성은 압도적인 수의 차이로 흑인 또는 히스패닉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반면 뉴욕시 Queens의 Flushing이라는 동네에 있는 대부분의 가게들이 아시안계 직원들을 고용하고 있다는 것과 같은 현상이지요.


Manhasset으로 샤핑을 가서는 불쾌함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손님이 영어가 서툴러도 이해하려고 하며 참고 응대하려는 모습들이 눈에 보이지요. 직원들의 경우 중년에서 노년의 사람들로, 여러 면으로 최소한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아시안계 미국인이 샤핑을 하는 것을 도와주는 일이 행여 다소 '싫더라도' 내색하지 않고 일을 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아무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백인들의 우월함이 (당시에는 지금처럼 동양계 이민자 또는 여행객들이 많지 않았습니다) 있었을지 모르나 내색을 하지 않았겠지요. 지적인 면이 정적인 면보다 더 큰 작용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Brooklyn에서는 이와는 반대의 현상을 경험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직원들이고, 30대-40대 기혼여성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이들의 경우 손님이 영어를 잘 하건 아니 건간에 아시안계라면 무시하는 태도를 처음부터 끝까지 보이지요. 대분이 그랬고, non-whites vs. whites 비율에 있어서는 9:1, Manhasset의 반대정도의 경우였습니다. 도움을 요청해도 돌아보지도 않고, 계산을 할 때도 상품을 던지다시피 하며 거칠게 다루는 등, 제가 영어를 '제대로' 해도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이런 행위들이 심하게 불쾌할 경우 제가 목소리를 다소 높이고 매니저를 찾게 되는데, 그 경우에는 그 직원의 태도가 바로 변하더군요. 잘못함을 인정함이 아닌, 2-job 이상을 뛰면서 근근이 먹고사는 직장에서 경고 또는 조치를 받기는 싫은 이유였겠습니다. 그때 느꼈던 그들의 눈초리는 기억에 남습니다. 이유 있는 hatred 가 아닌, 이유 없는 미움의 눈빛이었고, 자신의 삶에 불만이 쌓이다 못해 눈빛, 몸짓, 손짓과 목소리로 표출되는 것을 막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었지요.




미국의 경우 2001년에 있었던 911 테러사건을 중심으로 하며 그 전의 사회와 그 후의 사회로 나누는 경향이 존재했습니다.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관점들이 당시 사건 이후로 상당히 많이 바뀌게 되었다는 논리지요. 이에 대해 저도 인정하는 요소도 있으나, 흥미로운 점은 911과 전혀 관계없는 사회현상도 911과 연관시키는 괴상하고 억지스러운 모습들 또한 보이기 시작했지요. 쉽게 말하면 그저 '툭' 하면 911로 인해 사회가 이렇게 되었다, 교육시스템이 저렇게 되었다, 종교도 영향을 그로 인해 받았다며 '모든 것은 911에 돌리는' 현상이 꽤 오래 지속되었었지요. 2008년 금융위기까지는 그랬고, 그 이후에는 2008년 금융위기가 새로운 질타의 대상이 되었었습니다. SNL 등 하류 comedy program 등에서도 이 주제를 웃음소재로 사용하기도 했었지요.


이와 비슷하게 한국에서는 작년부터인가 Covid-19 전/후의 사회적 변화에 대해 이야기를 하더군요. 미국의 경우 2001년 911 사태를 재료로 하여 이후 발생한 미국 내 발생한 많은 사회현상들을 억지로 엮었듯, 한국 및 여타 다른 나라에서도 2019년에 시작된 팬데믹을 재료로 하여 여러 사회현상들을 설명하기 위해 이를 일부러 그리고 억지로 엮으려는 모습을 자주 듣고 보게 됩니다. 미국의 경우도 2008년 이후 새로운 장난감이 생긴 듯 Covid-19을 이렇게 저렇게 하여 어떤 논리 또는 현상을 만들려는 듯하지요. 언제부터인지 희생양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사회가 되어버린 듯합니다.




2023년 한국. 백인도 찾을 수 없고 흑인도 없는, 히스패닉도 없는 단일민족의 사회입니다. 중국인들도 많고 조선족 사람들도 상당히 많다고 하지만, 그들이 말을 하지 않고 있으면 이제는 구별이 어렵지요. 미국에서 경험하는 그런 류의 차별이나 불쾌함은 없어야 함이 맞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아니지요. Covid-19을 이유로 사람과 사람 간의 대면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이 팬데믹 이후의 한국사회가 척박해졌다고도 하고, 흉악한 범죄 등도 이를 이유로 또는 궁극적인 원인으로 보는 뉴스도 듣습니다. 틀리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 지금을 사는 사람들의 경우 이런 팬데믹을 경험하지 못했기에 전후비교를 하게 되는 것도 당연하고, 최근 보고 경험하게 되는 이상한 사회현상들이 상당 부분 이 질병의 발발과 그 이후의 사태로 인한 것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눈초리, 1990년대 미국에서 흑인들과 히스패닉 사람들의 눈을 통해 느꼈던 그 선하지 못한 눈초리들을, 단일민족의 국가인 한국에서 같은 동족으로부터 느끼고 있다면 이 또한 Covid-19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어디를 가던 선한 눈빛을 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무관심

경멸

분노

귀찮음

우월

오만의 눈초리들


이 불쾌한 glance를 사실은 covid-19 이전부터 느껴오고 있었고, 이 팬데믹이 그 정도를 더하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주관적인 생각으로는 Covid-19 이 그 시작점은 아니었음은 확실합니다.


"911 때문에 그래, " "금융위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어, " 또는 "Covid-19 때문에 그런 거야"라고 말하며 쉽게 그 근원을 찾아서 어설프게 해석하려는 시도는 매우 위험해 보입니다. 만약 Covid-19 이 발병하기 전 우리가 가지고 있던 - 그나마 괜찮았던 - 인성과 지성의 수준이 앞으로 곧 그리고 빨리 원상복귀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 지성과 인성의 용수철과 고무줄이 탄성을 받아 돌아오지 않는다면, 아마도 이 질병의 발발 이전에 우리가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 우리들의 인성과 지성은 허구였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사회적인 후퇴가 Covid-19 때문이었다면, 지금부터 우리 사회가 회복되고 있다는 큰 증거를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을 듯합니다. 그저 동네 편의점에서 점원과 방문객 사이에서 말이 없어도 충분한 인간적인 눈인사를 다시 보고 싶군요. 시선을 다른 곳에 돌리지 않고, smart phone에 고개를 축 늘어뜨린 모습이 아닌, 서로의 눈을 보며 사람을 느끼는 눈맞춤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March 0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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