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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7명 중 한 사람

지나가는 생각들

by Rumi


New York City, Chicago, 그리고 Washington DC의 많은 지하철 역들 중 꽤 많은 곳에서 음악가들, 마술사들, 그리고 미술가들의 퍼포먼스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모두 아마추어들이지만 그들의 예술적인 수준은 대부분 상당하지요. 그렇기에 그들의 공연은 그 바쁜 출퇴근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도 합니다. 그들이 왜 그런 곳에서 많은 시간을 들여가며 자신의 소중한 재능을 대부분의 무심한 행인들에게 들려주거나 보여주고 있는지는 이들을 보는 사람들 각각의 판단에 따라 다르겠지요. 푼돈이나마 돈을 벌겠다고 나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고, 좀처럼 기회를 잡을 수 없는 경쟁사회에서 극도로 대중적인 공공장소에서 자신을 노출시켜 혹시 어느 레코드사 중역이나 프로듀서의 눈에 들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또는 그저 busking 이 좋은 순수한 예술가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겠습니다. 어떤 경우이건 이 거리의 예술가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요소가 있다면 '절실함'일 듯합니다.


이들에게는 예술에 대한 '순수함'이 있다고 조심스럽게 말해봅니다. 어떤 구체적인 욕심이라고 하기엔 그들로부터 읽히는 절실함을 보면 욕심은 그들에게 사치일 듯하지요. 다만 그들이 가진 음악이나 미술에 대한 애착이 너무나도 강하고, 이를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이 더 잘 읽힙니다. 그들의 순수함이 있는 반면 동시에 그들을 보면 측은합니다. 부족함에서 나온 간절함이 배어있기 때문이지요. 그렇기에 이들을 서서 바라보는 행인들의 눈길을 읽어보면 sympathy 가 읽히지 않는 경우는 없더군요. 그들을 바라보며 웃고 있어도 느껴지는 동정심입니다. 그렇다고 지하철역이나 길거리에서 공연이나 무엇인가를 하는 모든 이들이 '안타까운' 또는 '애처로운' 눈길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길거리에서 결코 우연하지 않은 거리캐스팅을 통해 유명하게 된 연예인들이나 가수들의 이야기는 여기 속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예술성과 순수함"의 부재라고 해도 될지요?




2007년 1월 12일 오전 7시 51분, 미국의 수도인 Washington DC에 위치한 L’Enfant Plaza 역에 야구모자를 쓴 한 청년이 바이올린 케이스를 들고 천천히 들어왔습니다. 오전 출근시간이었고 바쁜 전철역이었지요. 역의 정문 옆에 서서 이 청년은 그의 오래된 바이올린을 꺼내서 연주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43분 동안 이 바이올린 연주자는 Bach 두 곡, Massenet 한 곡, 그리고 Schubert와 Ponce 각각 한 곡씩을 연주했답니다.



실력은 대단함을 넘어 황홀의 경지였다는군요. 마치 어느 유명한 연주자의 live play를 듣고 보는 듯했답니다. 하지만 이 Lincoln Center 수준의 연주를 바로 눈앞에 두고도 95% 이상의 행인들은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답니다. 이 43분의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 1,097명이 무심히 그의 앞을 지나갔답니다. 고작 27명이 그에게 돈을 건네주었으며, 7명만이 그의 앞에 서서 꽤 긴 시간 동안 그의 연주를 들었답니다. 이렇게 해서 이 청년이 43분 동안 번 돈은 $52.17이었고, 그중 $20까지 지폐 한 장은 그를 아는 사람이 준 돈이었다는군요.



이 청년의 이름은 Joshua Bell, 그는 생 마르탱 아카데미의 음악 감독이자 세계적인 스타 솔리스트이며 아동시절엔 천재라고 불렸답니다. 그의 악기는 1713년 산 스트라디바리우스이며, 3.5백만달러짜리라는군요. 그의 멋진 헤어스타일은 그 자체로 클래식 음악의 아이콘으로 여겨지고 있답니다. 간단히 말하면 Joshua Bell은 세계 최고의 거장 중 한 명이자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한 명입니다.


그런 이 사람을 알아본 사람이

1,100여 명 중 단 한 명이었답니다.


그리고 이 세계 No. 1 바이올린 연주자가 43분 동안 번 돈은 고작 $32.17. 이 중 20달러는 그를 알아본 사람이 준 것이라 이 실험에서는 무효화되었다는군요. 네, 실험이었답니다. Classical 음악의 대중 인지도, 그리고 사람들의 감성과 동정심 (즉, humanity) 이 얼마나 메말라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진행된 조용한 이벤트였다는군요. 미디어들을 미리 부른 것도 아니고, 여느 아마추어 음악가들과 같은 환경에서 진행된 진실한 실험이었답니다. 어느 아시아인 가수가 로마에서 버스킹을 하는 식의, 각본이 쓰인듯한 것이 아닌 것이었지요.


워싱턴 포스트만이 이 실험을 나중에 보도를 했답니다. 하지만 이 신문사는 실험에 앞서 미국의 저명한 지휘자 레너드 슬랫킨에게 이 실험에 대한 어떤 예측을 하는지 물었고, 그는 이렇게 답했다는군요:


"1,000명 중 35~40명 정도는 그의 연주를 제대로 알아볼 것 같습니다. 그중 아마도 75~100명은 발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일 것 같구요." 슬랫킨은 Joshua Bell 이 지하철 음악 공연으로 150달러 정도를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답니다.


이 참담한 결과 (Joshua Bell 에게가 아닌, 당시를 살던 일반 미국인들에게는)를 두고 이렇게 해석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너무 바쁘고, 너무 정신없고, 너무 호기심이 없거나 심지어 클래식 음악이 제공하는 최고의 음악에 관심이 없는 세상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이다."


95% 가 넘는 사람들의 무반응...

왜일지 아무도 모르겠지요.


아마도, 어쩌면 아마도 이 결과는 있는 대로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그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니까요. 하나하나 다 신경을 쓰고, 시선을 주고, 마음을 주며 살기엔 너무나 위험한 외나무다리를 걷는 것과 같은 세상이니까요.


하지만 기억해야만 하는 것 하나는, 그 소중한 40여분 동안 그 누구가 되었든 간에 (그 사람이 Joshua Bell이었건, 미래의 Joshua Bell이었건, 또는 그만큼 음악을 사랑하는 아마추어 음악가였건간에) 거리의 연주자들은 매일같이 행인들을 위해 멋진 음악을 들려주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우리를 위해 감성적인, 부드러운, 세상을 초월한 환경을 잠시나마 만들어주고 있는 천사와 같은 사람들이라는 것만은 잊지 않고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Joshua Bell 이 15여 년 전 했던 이 실험... 이 실험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누군가가 알아보건 못알아보건 간에 느낄 수 있는 음악의 힘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느 날 New York City, Chicago 또는 Washington DC의 어느 전철역에 들어설 때 저 멀리서 들리는 Bach의 솔로 바이올린 곡이 행여나 Joshua Bell 또는 Nicola Benedetti 가 연주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만 해도 그 순간만은 세상이란 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 듯합니다. 이런 기분 좋은 상상을 많이 하는 사람들그렇지 않은 1,097명 - 27명 = 1,070명의 사람들과의 인간적인 품격의 차이는 아마도 순수한 버스킹연주자의 순수한 예술적 열정과, 붐비는 길 어딘가를 헤매며 길거리캐스팅이나 요행을 바라는 미래의 저급한 연예인이나 유투브와 같은 매체를 통해 요행을 기대하는 류들, 반나체 또는 꽃소년으로 치장하고 흔들어댈줄만 아는 자칭 가수들과의 차이정도와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


https://youtu.be/hnOPu0_YWhw


보이는 것이 진실되지 않을 확률이 높아진 세상입니다. 브랜드에 품질이 가려지고, 잘못된 뉴스에 매일같이 기만을 당하며, 번지르르한 외모와 명함에 쉽게 상대를 판단하는 것이 습관이 된 지금, 나의 sense 가 1,097명 가운데 그 한 사람으로 남아있길 바랍니다.



- May 1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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