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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도 먹는다고 거기 느낌일까?

지나가는 생각들

by Rumi


1960년대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는 한국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이나 한국식품을 살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답니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는 교포들이 운영하는 식당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먹고 싶은 음식이나 사고 싶은 한국 물품들을 어렵지 않게 살 수 있었지요. 한국것들이 귀했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방영하는 TV프로그램들의 경우 한국에서 방영을 한 후 1주 또는 2주가 지난 후에야 볼 수 있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real time으로 볼 수 있고, 한국식품이나 음식 또는 물품을 구할 수 있는 곳도 아주 많아졌고 그 종류도 예전과는 비할 수 없이 많습니다.



김치의 경우 지금은 한국의 풀무원, 종가김치 등 여러 브랜드들이 미국에 들어와 있지요. 하지만 90년대 후반 그리고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위와 같은 '이름 없는 김치'들을 사 먹어야 했습니다. 뉴욕의 경우 구화식품이나 한양마트라는 곳에서 만든 김치를 큰 유리병에 담아 팔곤 했지요. 어떤 재료로, 어떤 환경에서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를 음식이었지만 김치를 먹고 싶은 뉴욕 또는 뉴저지에 사는 한국 사람들은 다른 선택이 없었습니다. 물론 주변 사람들의 경우 김치를 간혹 만들어 먹기도 했지만 고춧가루가 다르고, 새우젓이 다르고, 물이 다르고 무도 다르니 이것들을 혼합한 결과물도 김치같이 않은 김치였지요. 일상이 바쁘기에 김치를 해 먹는 사람도 극소수였습니다.


이렇게 사 먹던 김치, 그리고 한국에서 파는 라면을 사서 먹을 때면 '서글픔'이란 느낌이 자주 들곤 했습니다. 이국적인 맛을 가진 조금은 이상한 김치였기에도 그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리고 라면의 경우 유통기한이 거의 몇 주도 남지 않은 것들이었기에 또한 그 이유가 있었겠지만, 이런 서글픈 느낌은 아마도 '여기서도 김치를 먹고 있지만 서울은 아니잖아'라는 생각에서 나왔던 듯합니다. 한국에서 생산된 재료로 만든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김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맛있었고 좋았습니다. 하지만 음식문화라는 것이 결국 아무리 그 맛이 원산지의 맛을 그대로 가져왔더라도 그것을 먹는 곳이 한국이 아니면, 그러니까 원산지에서 먹는 김치가 아니라면 온전한 음식문화라고 볼 수 없었지요. 라면도 그랬고, 한국노래도 그랬고, 과자도 그랬습니다. 그저 코끝을 잠깐 스쳐가는 향기처럼 진짜일 수 없는 경험일 뿐이었지요. 이방인들의 서글픔이 이런 것이겠다는 생각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유럽이나 남미 등을 여행하면서 즐기는 음식도 결국은 서글픈 순간일 뿐이지요. 이방인들이 많은 돈을 들여 그 먼 곳까지 가서 경험하는 문화의 여정, 특히 음식류를 즐기며 올리는 사진들을 보면 서글픈 생각만 드는 이유가, 결국 그곳을 떠나면 다시 그 맛을 느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지요. 아무리 그때 그 맛처럼 다시 그 음식을 본국에서 맛볼 수 있더라도 (요즘 시대엔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람들이 대다수지만) 음식문화는 그 음식이 원산지인 장소에서 그곳 사람들과 함께, 그리고 손님이나 여행객과 같은 이방인이 아닌 그곳의 일부로 즐겨야만 그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한국에서도 많은 미국음식 전문점들이 생겼습니다. 맛이 뉴욕의 그것과 거의 같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한 번도 가지 않은 이유는 그 서글픔 때문입니다. 입 속으로 들어가는 맛이 아무리 그곳의 그것과 같다 하더라도 이렇게 경험하는 음식문화는 반쪽짜리도 안 되는 것이기에 돈이 아까울 뿐이겠지요. 그리고 나머지 반쪽은 서글픔, 구질 맞음 또는 심지어 처절함까지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 80년대와 90년대에 뉴욕에서 한국 음식을 먹던 때 들던 느낌과 비슷할 듯합니다.


인천에서 아까 왕뚜껑 하나를 먹었습니다. 역시 라면은 한국에서 먹어야 제 맛이군요.


- August 2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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