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그러니까 8살 때, 1800년대 후반에 출판된 H. G. Wells. 의 우주전쟁 (The War of the Worlds)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세 발 달린 우주괴물들이 나오고, 주인공은 이곳저곳으로 피신하며 이들로부터 도망을 다니며 어느 순간에는 거의 죽을뻔한 위기에 봉착하기도 하지요. 이후 빨강머리 앤 (Anne of Green Gables), 하이디 (Heidi) 등을 계속해서 읽었습니다. 할아버지의 집 다락에 마련된 하이디의 지푸라기 침대와 그곳에서 바깥을 바라볼 수 있는 작은 창문에 대해 읽은 기억이 남아 있습니다. Anne의 짝사랑인 남자친구인 Gilbert와 이 여자아이가 걸어 다니던 길을 묘사한 글귀들도 어렴풋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이런 책들은 그림이 그다지 많지 수록되지 않았었기에 당시 책을 읽을 때는 꽤 중요했었지요. 이렇게 간간히 볼 수 있던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읽은 내용을 시각적으로 보며 부족하지만 어느 정도는 비교할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렇게 읽은 책들의 내용은 제 상상 속에서 나름대로의 외모와 체형, 목소리와 성격 등을 가지고 아직까지도 살아있고, 이 캐릭터들이 사는 공간 또한 제 나름대로의 상상 속에서 이미 오래전에 만들어져 아직까지도 변하지 않고 살아 있습니다. 주어진 정보라고는 글과 그림들 뿐이었기에 나머지는 상상으로 채울 수밖에 없었지요.
1980년이었나요? 일본 animation 이 한국에 들어오기 시작했지요. 은하철도 999 가 아마도 당시 어린이들의 기억 속에 가장 뚜렷하게 남아있지 않을까 합니다. 지금에 비교하면 386 컴퓨터에 설치된 그림판에서나 만들만한 조잡한 작품이었지만, 그래도 많은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엔 충분했습니다. 고작 10살 정도밖에 안 된 시기였지만 이 만화 시리즈를 통해 바라본 메텔 (Maetel)이란 캐릭터의 존재는 국민학생 어린 소년이 성 (sexuality)이 무엇일까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하기엔 충분했습니다. 막연한 궁금증이었지요. 이유는 몰랐지만 메텔이라는 여자의 실루엣은 왠지 본능적인 관심을 끌어오기엔 충분했었습니다.
물론 데츠로의 총 (gun) 도 흥미를 끌긴 했지요. 끝없이 우주공간을 달리는 기차와 그 동력구조도 매우 궁금했지만, 메텔은 이와는 별개의 관심사였습니다. 또래 여자아이들에게는 찾아볼 수 없었던 그런 느낌이었지만, 만화라 그랬는지 이런 궁금증을 구체적으로 시각화하거나 또렷한 어떤 실체와 연결하지는 않았었지요. 당시 애들이 순진했었고, 거기에 더해 시각매체 또는 대중매체가 이런 상상의 캐릭터가 더 구체적인 형태를 띠게 '도와주지는' 못했습니다. 그저 추상적인 아름다움 - 그런 여성상이었지요. 메텔의 대사가 이를 대변하기도 합니다:
"난 청춘의 어스름한 그림자
젊은이들의 눈에만 보이는
세월의 흐름 속을 여행하는 여자야"
책 속의 캐릭터들이 스크린에 또는 TV 화면에 움직이는 quasi-인간으로 등장하기 시작했지만, 그래도 그 기술력 등에 있어서는 아직 아이들의 머릿속은 상상으로 채워졌지요. 나름대로의 이야기와 모습으로 이런 인물들을 마음속에서 생각 속에서 그려내던 시절이었습니다.
어느 선을 넘지 않는 정도가 존재했습니다.
지금은 어떤 환경일까요? 위에 언급한 정도라는 선이 경쟁사회라는 명목하에 무참히 깨져있는 상태입니다. 결국 돈에 대한 자발적 탐욕이 불러온 결과이겠지요.
1990년대 이후 그리고 2010년 이후 급격히 발전한 지금은 이런 상상이 차지할 공간은 성인들은 물론이거니와 대부분의 어린이들의 머리 또는 마음속에 없습니다. 이미 '친절하게도' HD 기술과 대중 연예 산업에서 이 상상력을 대신할 캐릭터를 만들어주었기 때문이지요.
영화를 통해
우주전쟁의 주인공은
지금은
Tom Cruise라는 배우로
기억 속에 새겨졌고
드라마나 HD애니메이션을 통해
빨강머리 앤과 하이디도
지금은
그 배역을 연기한
여배우의 이미지로 각인되었고
메텔과 같은 추상적인 여인상은
지금은
가요프로그램에 등장하는
반나체의 10대 여자애들의 몸을 통해
아직 틀이 잡히지 않은 청소년들의
성적인 관심과 궁금함을
건강하지 않은 이미지로
강제로 끌어내어진지 오래입니다.
한국의 경우를 보면 너무나도 가파르게 증가하는 성범죄, 여성혐오, 비뚤어진 성적평등의 잣대, 강력범죄, 노년층의 분노, 청년층의 좌절과 이성 실종, 중장년 측의 비리, 불륜 등의 시작은 결국 문화의 저급화에 근거합니다. 사회 프로그램도, 전문가의 상담도, 약물치료도, 그리고 심지어는 엄격한 법의 적용도 이제는 늦은 지금입니다.
80년대부터 지금까지 미국이라는 사회가 조금씩 계단식으로 타락하고 몰락하는 것을 경험한 제가 보는 지금의 한국은 문화적, 사회적, 종교적, 그리고 정치적으로 미국스러움이 사라지기 시작한 60년대 후반의 상황과 비슷해 보입니다. 여기 더해 지금 2023년의 미국의 나쁜 요소들만 모아 섞어놓은 듯 하지요. 미국은 법의 적용이 강하기에 그나마 버텨왔는데, 한국은 그마저도 약하기에 제 우려는 좀처럼 삭아들지 않는군요. 왜 미국과 비교하는지에 대답은 한국이 거의 모든 경우의 경우 미국이라는 reference 를 사용해 왔고, 절대적인 영향력 아래 있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유럽이나 중국 등의 지역으로 reference 를 삼으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40대 그리고 30대 성인남자들, 그리고 심지어는 50대 성인남자들도 위와 같은 이미지를 보면 왜곡된 무언가를 마음속에 품을 것임은 당연한데, 10대와 20대 애들은 어떨까요?
이상의 날개를 펼 수 있는 환경, 건전한 상상 속에서 개성 있고 건강한 인성이 만들어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는 것은 정말이지 어렵겠지요. 그저 이를 지적하고 인식하는 부질없는 일들만 반복해야 할까요? 오히려 시간을 거꾸로 돌려 교육과 종교체제부터 원래대로 돌려 다시 시작하는 것이 어떨까요? 불가능하지만 상상은 해 봅니다.
젊은이들이나 청소년들만이 아닌, 30대와 40대들에게도 이런 환경이 중요합니다. 이들의 자녀들이 바로 청소년들이고 20대들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