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umi Nov 21. 2023

'줏대'없던 한 남자

지나가는 생각들


최근 구독을 시작한 어느 분의 글을 읽고 난 후, 제가 38살 때, 그러니까 12년 전에 있었던 일이 떠오르더군요. 제가 구독하는 분의 글과는 어떻게 보면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아마도 '적지 않은 수의' 한국 남성의 심리를 이 한 사람을 통해 (그리고 평소 접해온 한국 남성문화와 이를 접목해서 볼 때) 들여다볼 수 있었던 계기라 기억하고 있으며,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당시 제 이메일 박스에 들어온 그의 이메일과 제 답장까지도 보관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이런 경우가 세 번 있었지요.


이 두 번의 경우 중 하나를 '원작'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등장인물은 이렇습니다. 배경은 2011년 서울 어느 대기업체고요.


(1) KD라는 이니셜의 키 185cm에 멋진 체구와 외모를 가진 37세 남자 (2) YM라는 이니셜의 31세의 귀엽고 날씬한 여인, 그리고 (3) S라는 이니셜의 38세의 저


입니다. 이렇게 3명이 등장하고, 아래 글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S전자 법무팀 변호사 한 명도 등장했긴 했습니다. 당시 저는 한국 내에서 인지도가 높은 F&B 계통의 회사 본사에 영어과정을 제공하며 선생님들을 파견하고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관리자라 해당 회사의 교육팀과 인사팀 사람들 몇 명과 매일같이 연락을 했지요. 제 direct contact 이 YM였고, KD는 인사팀이었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사람이었지요.




DAY 1 오전


어느 날 오전, 이런 이메일이 들어왔습니다.


YM 전남자친구로 충고할게

<KD@naver.com>

Mon, Oct 24, 2011, 2:45 AM

to me, YM@hanmail.net   

Translate message

Turn off for: Korean


예의는 안 갖추고 간단하게 얘기할게. 전 남자친구이고 같은 회사 다니고 있다 약 3개월 전에 헤어지고 혼자 힘들어하다 교통사고 나서 1개월 입원했다 퇴원했지.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에 YM가 내 옆에 잠깐 있어주겠다고 했지 정말 고마웠지 근데 이제는 옆에 못 있어 주겠다네 본인이 너무 힘들어서 떠나야겠다고 널 핑계되더군.

나이가 상당히 있는 것 같은데 나잇값 좀 하고 다녀라 그리고 공과 사는 구분하면서 살고 나한테 이런 얘기 듣는다고 화내지 마라. 어디 가서 그런 더러운 방식으로 여자 꼬시지 말고 그 나이 먹도록 아직 노총각으로 사는 것도 다른 의도가 있는 것 같으니깐 이런 메일 받아서 억울하면 연락해라





DAY 1 오후


예전 이문열 소설가의 책들 중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에 "개싸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원하지 않게 제가 이 개싸움에 끼게 된 것이었지요. 제 답장은 이랬습니다:


KD 씨


누구인지도 모르지만 이메일을 받고 여러 방면으로 확인할 사항을 확인하고 그 후 확보한 내용을 가지고 문서화 등의 작업을 하였습니다 물론 법률적 자문도 오전에 마쳤습니다 따라서 당신과 같이 무례하게 글을 쓰지는 않겠습니다.


단, 보낸 이메일의 사실적 근거와 해명 요구합니다. 잘 사리 있게 판단하고 답변을 쓰기 바랍니다. 당신의 답변 이후 내 권리와 지위 그리고 사과 그리고 그에 따른 정신적 그리고 물리적인 사항에 대한 소송을 진행할 것이며 이는 당신과 당신이 소속되어 있는 회사 그리고 주변인물 특히 YM 씨를 포함합니다. 특히 회사의 경우 내가 교육으로 관련되어 있고 이에 따른 fee를 받는 관계이기에 중요한 사항임을 인지하기 바랍니다


이는 비뚤어진 것을 바로잡고자 함이며 문제를 발생한 개체에게 그에 따른 책임을 지게 하고자 하는 일환임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동시에 YM에게도 아래와 같은 이메일을 보냈지요:


Good morning:


흐린 아침이네요. 주말은 잘 지내셨나요? 아래 편지 보셨으리라 믿습니다. 물론 기분은 좋지 않은 내용이지요. 설명 부탁드립니다. 제가 이 사람에게 연락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 YM 씨로부터 설명을 들은 후에 이 사람이 고객사의 직원으로 제게 한 언행에 대해 어떠한 정도의 공적인 조치를 어떤 방식으로 취할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후 S전자에서 일하는 변호사 지인을 통해 KD에게 전화 한 통을 넣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늦은 오후였지요.





DAY 1 저녁


KD로부터 아래와 같은 이메일이 들어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우선 S님의 오늘 하루를 불쾌하게 보내시게 하여 사과드립니다. 저는 S님의 영어교육과정 담당인 YM의 남자친구였던 KD입니다. 어제 새벽에 제가 보낸 무례한 메일에 상당히 놀라시고 불쾌하셨을 거라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의 일련의 행동이 아무런 관계도 없는 S님에게 불편과 상처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찾아뵙고 사과를 드리는 게 마땅하나 우선 메일로써 대신코져 합니다. 물론 S님이 추후 시간을 주신다면 찾아뵙고 사과드리겠습니다.

금일 점심에는 무례하게 먼저 전화를 드렸지만 바쁘신 와중에도 전화받고 답변까지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도 이메일을 쓰면서 S님께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난점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YM와 저는 약 1년 6개월 정도를 만나고 헤어졌습니다. 서로의 성격차이로 결국 헤어지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YM를 보러 집 앞으로 갔지만 결국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는 새벽에 졸음운전으로 큰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그래서 한 달 이상을 병원에 입원하며 2번의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완쾌되어 복직한 뒤 힘들어하는 저에게 YM가 곁에 있어준다고 하더군요. 너무 개인적인 얘기지만 S님이 겪으신 일이 저희와 본의 아니게 관계가 있게 된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그래도 YM는 힘들어하는 저에게 많은 도움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저의 건강과 정신이 좋아졌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이제부터입니다. 하루는 메일을 정리하던 중 YM가 저에게 보내준 메일에 본인 아이디와 패스워드가 적혀있는 걸 보고 저의 호기심을 절제하지 못하고 YM의 메일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을 넘은 저의 잘못입니다. 그렇게 S님과 YM가 영어메일을 주고받게 된 것을 알게 되었고 제가 혼자 끝없는 상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개인메일을 확인한 것은 잘못되었고 그 점에 대해서도 사과드립니다.


제가 이제껏 살아오면서 정말 좋아했던 사람이 바로 YM입니다. 하지만 저의 그런 불안이 YM를 힘들게 했고 결국 떠나려고 하더군요. 힘들어하는 저를 위해 1개월만 옆에 있어준다는 말을 처음에는 믿지 못했고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계속 옆에 있어줬으면 좋겠다는 저의 욕심이 모두를 힘들게 한 것 같습니다. S님도 누군가를 좋아해 보셨겠죠? 전 아직도 사랑을 잘 모르겠습니다. YM가 이번주 일요일에 도저히 저를 더 이상 만나줄수 없다더군요. 그리고 저의 마음을 완전히 돌리고자 자꾸 제가 불안해서 질문한 S님을 사귈거라고 하던군요. 여기서 제가 오해를 했고 오늘 새벽에 S님이 받으신 무례한 메일을 적게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또한, S님이 저와는 다르게 소명할 기회를 주신거에 감사드립니다. 이번 사건으로 삶에서 배워나가야 하는점이 많다는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조금더 절제하며 감정을 다스릴수 있는 그런점을 S님을 통해서 배울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사건의 진행사항을 정리하며 개인적인 위주로 적게된점 사과드립니다.


S님이 저희 본사와 계열사그룹에서 영어교육을 시행하고 있는걸로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의 일련의 과오로 불쾌감과 본인이 교육인으로써 느끼는 열정과 책임감에 상처를 드린점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오해에서 비롯하였지만 자신의 감정을 절제못하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모든것이 저의 잘못입니다. 저를 용서하지 못한다고 해도 할말이 없습니다. 부디 너그러운 마음과 인생의 선배로써 저에게 좋은 가르침을 주셨다고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끝까지 저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KD배상




DAY 2 오전


다음 날 YM로부터 이메일이 왔더군요.


Dear S


오늘 힘들고도 긴 하루를 보냈습니다. 무슨 말을 어떻게 써야 할지 정리가 어렵습니다. 오늘 저로 인해 발생한 일 때문에 많이 힘드셨으리라 생각이 들어요.


오늘 새로운 이메일계정을 만들면서 모든 일이 이메일계정 생성처럼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S께서 어떠한 조치를 취하다라도 설사 나에게 파장을 불러일으키더라도 감수할게요. 다음에 S에게 여유가 생긴다면 이야기와 커피와 사과 등등 할 수 있는 저에게 시간을 내어주기를 부탁드립니다.


좋은 꿈 꾸세요




차후 KD는 제가 교육관리차 그 회사를 방문한 다다음날 회의실로 찾아와서 무릎까지 꿇고 사과를 하더군요. 저는 용서도, 화도 내지 않고 나가달라고 했고, 차후 여러 차례 이 사람의 '진심 어린(???) 접근'을 거부했습니다. 결국 몇 차례의 사과편지 후 그만두더군요.


진실이 아니었던 사과.


법으로 해결하겠다는 제가 변호사를 통해 전화까지 넣으니 정신을 차렸을까요? 밥 벌어먹기가 어려워질 것이 뻔해 비굴해진 것이겠지요.


이런 경우에도 이 남자는 자신이 뱉은 말에 책임을 지지 못하더군요. 겨우 12시간이 지나 태도가 180도 바뀐 경우니,


남성적인 고집도

자존심도, 그리고

속된 말이지만 유흥업소 종업원보다도

'지조'조차 없는

소위 줏대도 없는

불쌍한 사람이었습니다.


여자로 인해 술에 취해 교통사고를 낸 남자에게 그 뭘 더 기대할 수 있을까요?


YM라는 여자도 수십 차례에 걸친 사과이메일과 문자가 이어졌습니다. 이를 무시하고 저는 이 사람에게 방법이 어떻게 되었건 간에 담당자를 바꾸지 않으면 법적으로 진행하겠다고 하니, 다른 사람으로 2주 만에 교체가 되더군요. 어떤 이유를 상사에게 댔는지는 모르나, 마음 편하게 이후 3년간 과정제공은 했긴 했습니다.




과정담당자이다 보니 해당 부서의 임원들과 가까워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후 이 사람들과 관계가 깊어지게 되어 사적인 이야기까지 하게 되는 것이 순서라면 순서인데, 이들 중 반 정도는 위 KD와 같은 부류더군요. KD 같은 류라 함은, 이성관계 또는 결혼상태가 깨끗하기 어려운 이들을 말합니다.


물론 나머지 반에 속하는 성실하며 자신의 도덕적 종교적 사회적 가닥은 절대 타협하지 않는 남자들이 존재하, 이 분들을 지금까지도 존경하고 알고 지내지만, 나머지 반에 속하는 사람들은 이미 자녀들과 아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에게 지옥이 있다면) 지옥에 떨어질 것임이 분명하더군요. 그리고 그 지옥에서는 필라테스라는 악마에게 생식기를 파 먹히게 되겠지요 (참조: Pilates is the demon that eats your genitals).


KD 도 5년 후 결혼을 하고, 아이 셋을 두었습니다. 지금은 이 회사의 임원이 되어있지요. YM 도 같은 회사에 아직도 다니며 사내 동료와 결혼 또한 했습니다.


벌써 10년이 넘어가는, 2010년 초반의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KD라는 사람의 이메일을 읽다 보면 한국남자들 (일부가 되었건 상당수가 되었든 간에) 여자에 대한 sexual perception 과 사랑에 대한 개념이 너무나 뒤틀어져 있다는 것을 파악하게 되지요.


성적인 집착

성적인 중독


자신은 사랑이라고 하지만 sexually twisted 된 사고방식이 이 사람을 그렇게 만든 것이었겠지요.


이런 경험 - 제가 모르는 채 말려들어간 경우 - 가 30대 때 두 번이나 되고, 40대에 들어서는 업무차 오래 알고 지낸 기혼여성 두 명으로부터 불쾌한 접근을 받은 기억도 겹치더군요. 뉴욕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라 더 씁쓸합니다.


그렇기에 룸살롱이나 단란주점 가는 남자들, 그리고 옷차림과 사사스러운 행동이 점잖치 않은 여자들은 아예 선입견을 강하게 가지게 됩니다. TV 에서도 이런 류들을 보면 채널을 돌려버리지요. 결국 외모와 눈빛, 행동을 조금만 관찰하면 보이는 부분이 이쪽 부분이기도 하더군요.


물론 대다수가 아니길 바라지만, 지금 2023년... 20대와 30대들은 어떤 개념으로 이성을 바라보는지 매우 궁금합니다. 그리고 40대, 50대들은 또 어디서 어떤 변태적인 짓을 꿈꾸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뉴스를 통해 접하는 이야기들을 보면 2011년 제게 있었던 일은 그저 순정소설에 가까울 듯하군요.



- November 21, 2023




작가의 이전글 정치는 아무나 해도 되나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