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이었던 1990년대 후반, New Jersey Turnpike 에 있던 rest area 내 식당에서 우연히 대화를 나누게 된 사람이 한 명 있었습니다. 체격도 크고 머리도 상당히 큰 40대 중반의 백인남자로, Kenworth W900 이란 큰 trailer truck 에 Walmart 컨테이너를 달고 New England 지역으로 가던 길에 이 휴게소에 잠시 늦은 저녁을 먹기 위해 들른 사람이었지요.
당시 시장은 엉망이었습니다. 여름에서 가을로 접어들며 거의 15% 이상 하락했으니까요. 마음을 가라앉히기에는 뉴욕의 화려함과 소음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이와 반대로 너무도 조용한 집에서도 평안함을 찾기는 어려울 듯 했습니다.
퇴근 후 George Washington Bridge 를 건너가기 위해 맨해튼 북쪽을 향하여 차를 몰았고, 답답한 마음에 창문을 열고 달려도 왠지 조금씩 숨이 막히는 느낌이 들었지요. 그래서 하지만 특정한 이유는 없이 다시 남쪽으로 차를 돌린 후 Lincoln Tunnel 로 들어갔고, 이렇게 해서 집과는 거의 40분이상 떨어진 New Jersey 의 Hoboken 까지 내려갔었지요. 이렇게 다니다가 뭐라도 먹기 위해 들어갔던 diner 에서 이 truck 운전사를 만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상황이 저와 그 사람을 가깝게 만들어주었는지는 모르나, 이십대 후반의 밋밋한 아시안계 남자와 Arkansas 에서나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남부 백인 남자는 30분 이상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당시만해도 드물게나마 찾을 수 있는 '영어하는 아시안'과 대화를 하게 되어 흥미가 있었을 수도 있고, 저는 여타 백인들에 비해 순수하게 보이고 웃음기를 잃지 않는 이 사람의 얼굴이 마음에 들었을 수도 있었겠지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가 타고 다니는 트럭이 궁금해졌고, 그는 저를 자신의 트럭 이곳저곳을 보여주며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한 번 운전해 보고 싶다고 했지만 아마도 그건 무리였던 듯, 가는 길이 북쪽인데 Fort Lee 까지는 태워다 줄 수 있다고 동승 제안을 하던 그 사람 - 제 차가 거기 있었지만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로 생각되어 흔쾌히 받아들였고, 그 사람과의 짧은 여정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16-wheeler 에 타 본 적이 없으니, 당시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결국 잘 한 것이었지요.
달리는 트럭 안은 상대적으로 조용했습니다. 엔진소리가 크긴 했지만 기어가 변속되어 갈수록 놀라울 정도로 승차감도 부드러워지더군요. 캐빈이 마치 예전 마차에 올려놓은 시트처럼 길의 크고작은 굴곡을 모두 흡수하며 아주 안락한 승차감을 주었습니다. 대화가 조금 잦아들자 Dan (Daniel) 이라는 이름의 이 사람은 라디오를 켰습니다. 다이얼은 92.7 FM - 저도 익숙한 Family Radio Station 이었고, 마침 "Nightwatch" 라는 프로그램이 진행중이었습니다.
"You know, Sam. I ain't got much money, and all I have is a modest wife and an ordinary kid. I don't know anyone powerful, like lawyers or someone who can help me when I am in trouble, but I got this truck to keep me goin', and I thank God for that.
So here I am, driving a 16 wheeler, and whenever I come to listen to this program, I see myself as a night watcher, moving stuff from A to B, through the night, praying for those who are asleep, and for those who struggle through the night. There's nothing I can do much for other people, although I want to, but I can be a night watcher for them, saying prayers for them to keep them going."
저와 같은 종교적배경을 가진 사람이었더군요.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당시 저는 faith 라고는 없었습니다. 당시엔 꽤나 강한 믿음을 가졌다고 믿었고 의심조차 하지 않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속 빙 강정보다도 못한 저였으니까요. 하지만 Dan 은 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제는 제가 그와 비슷한 나이가 되어버렸습니다. 한국에서나 여기서나 가끔 자정이 넘은 시간에 고속도로를 달리곤 합니다. 그리고 그와 20여분간 같이 했던 길을 생각해 봅니다. 그는 지금도 night watch 를 하고 있을지 궁금해지고, 아니면 지금은 70세가 훨씬 넘은 나이에 미국 남부 어딘가에서 남은 여생을 편하게 지내고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해가 갈수록 어둠이 깊어지는 이 세상,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가로등 하나 없는 국도를 가기엔 조그마한 불빛도 감사한 지금의 세태입니다. 저를 보호해 줄 집채만한 16 wheeler 도 없고, 집이나 차 문 밖을 나서면 마치 이리떼와 같은 분위기의 세상만 피부로 느낄 정도로 몸과 마음을 엄습해 옵니다.
그 사람처럼 저도 나름대로 night watcher 를 자칭합니다. 내가 비추어주는 작은 불빛으로 이 밤길을 가는 사람들의 night watcher 가 되길 희망해 봅니다. 어젠 누군가에게 "한국에는 월세도 할부로 대신 내 주는 업자들이 있다며?"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몰랐던 일이고, 듣고 보니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세상이 힘들어지는구나."
Night watch 라는 단어의 영어적 의미는 이렇습니다. 1. a watch or guard kept during the night. 2. a person or the persons keeping such a watch - 아무도 돌보아주지 않는 세상은 원래 그랬다지만 해가 갈수록 악해지고 위험해지는 세태가 전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피부로 느끼게 됩니다. 누군가가 자살을 해도 그 사람의 주변에는 가족조차 함께 하지 못해서 이를 막지 못하는 지금의 현상을 "악의 창궐"이란 표현 외엔 달리 할 말이 없더군요.
저는 또는 prepper 입니다. 네, 혹시나를 위해 생필품 그리고 그 이상을 준비해두는 사람들 중 하나지요. 언젠가는 끝날 세상이라고 보고 있고, 머지 않은 날이라고 또한 생각하나, 그때까지만이라도 night watch 를 서고 싶습니다. 낮이나 밤이나 똑같은 어두운 길을 가는 우리 모두, 어떻개 헤서라도 밝은 길로 이끌고 싶은 마음입니다.
내년에는 happy new year 라고 인사할 수 있을지 모르겠숩니다. 이런 지가 벌써 3년이 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