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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Jan 11. 2024

Door to Door (2002)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



1960년대 중반 Portland, Oregon의 뼈를 깎는듯한 추운 겨울, Bill Porter는 Watkins사에서 만든 소형 가전제품과 세탁비누 같은 생활용품의 품질과 내구성을 선전하며 방문 판매를 하고 있었습니다. 태평양 북서부 지역에서 겨울이 추운 것은 흔한 일이지만, 뇌성마비의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5일 동안 햇볕과 비, 눈을 맞으며 8~10마일을 걸었던 Bill의 삶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CranJrMWlo


Door to Door (2002)는 Bill Porter라는 실존인물의 삶을 그려낸 영화입니다. 소아마비로 평생을 편하지 않은 삶을 살았던 분이었지요. 이 영화는 이 장애인이 정상인도 해내지 못하는 기적적인 일을 해냈다거나 또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너무나도 불행하게 태어난 한 사람이 어머니의 사랑을 수십 년간 받아오며 살아온 이야기, 그리고 그렇게 받은 사랑을 그나마 간신히 찾은 방문판매업을 통해 만난 사람들에게 알게 모르게 다시 나누어주는 이야기를 - 실제 이야기를 - 담담하게 그려내었지요.


실존인물인 Bill Porter는 1932년 뇌성마비의 원인과 지속적인 영향에 대해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에 태어났습니다. 그는 공립 고등학교를 다녔으며 40년 이상 왓킨스에서 근무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20/20'을 비롯한 여러 텔레비전 뉴스 프로그램과 'People' 잡지 등의 인쇄 매체에 소개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미국에서 1940년대부터 1980년대를 지나는 시간 동안 장애인에 대한 태도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대부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타임캡슐 같은 영화입니다.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던 이 사람의 이야기, 그러니까 Bill Porter의 이야기는 30년 후 오리건주 최대 신문사인 오리건니언의 한 기자에게 알려졌고, 약 4년 후 TNT에서 Bill의 이야기를 채택하여 그의 삶을 소재로 한 텔레비전 영화 "Door to Door"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2013년에 세상을 뜨셨으니, 자신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를 보셨으니 이 영화를 보는 사람의 마음이 그나마 위로가 되지요.


https://www.nytimes.com/2013/12/10/us/bill-porter-an-exceptional-salesman-who-inspired-a-film-dies-at-81.html


영화가 시작되면서부터 관객들이 준비도 할 시간도 없이 Bill (William H. Macy)의 신체적 어려움은 상당히 바로, 직접적으로, 그리고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몸의 오른쪽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언어 장애가 있는 Bill 은 사랑하는 어머니 Irene (Helen Mirren)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영화는 곧 청년기로 넘어가는데, Bill에게는 부모님도 이루지 못할 거라고 확신하는 꿈, 즉 세일즈맨이 되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설득력 있고 말이 빠른 사람들이 선호하는 이 직업은 적어도 처음에는 그에게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아 보이지요. 하지만 그는 자신만의 커리어를 원한다는 사실과 이미 넉넉지 않은 형편인 어머니가 자신을 영원히 돌봐줄 수 없다는 사실에 동기를 부여받게 되고, Watson이라는 방문영업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의 어느 지점의 문을 두들깁니다. 물론 거절당하지요. 다른 때 같았으면 의기소침하여 뒷걸음칠 상황이었지만 그는 그의 독특한 동기에 힘을 얻어 Watson의 영업사원이 됩니다. 사실 쉽게 그 자리를 얻은 것이 아닌, 가장 수익성이 낮은 경로를 택하고 수수료만 받겠다고 제안한 후에야 채용 관리자가 이를 수락한 것이었지요.



하지만 아마도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직업인 영업, Bill 은 영업사원을 반기지 않고 빌의 상태를 불편해하는 사람들로 가득 찬 시장에서 험난한 출발을 하게 됩니다. 무조건 문을 열어주지 않는 사람, 동정심에 돈만 주려고 하는 사람, 예의도 없이 담배를 뿜어대며 문에서 그를 들이지 않는 사람 등, 그다지 드러나게는 아니지만 거부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너에게 마음을 열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 뿐이야."


Bill의 어머니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빌이 끈기를 가질 수 있도록 격려해 주었습니다. 그의 도시락에는 어머니가 샌드위치 양쪽에 딸기잼으로 써 준 인내 (Patience)와 끈기 (Persistence)라는 단어가 Bill에게 행복과 용기를 주었지요.



그의 영업 능력과 헌신이 연마되면서 닫혀 있던 문이 열리기 시작하고, 몇몇 고객을 친구로 만들 수 있게 됩니다. Bill의 상사들도 어려운 영업 영역에서 빌의 업무 성과를 눈여겨보고 새로운 직업을 성공적인 커리어로 성장시키기 위한 그의 노력을 지원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불행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다가옵니다. Bill에게는 다만 이것이 더 큰 고통과 아픔이었겠지요. 평생을 아들을 위해 헌신한 Bill의 어머니 Irene 은 치매에 걸리고, 어머니를 모시려고 무던한 노력을 했지만 결국은 요양기관에 모실 수밖에 없었고, 쓸쓸히 하지만 아들의 사랑 속에서 그의 약하고 약했던, 하지만 또한 강하고 강했던 그의 어머니는 세상을 뜨게 됩니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중년의 Bill, 집안일조차 혼자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선물이었을까요? Bill이 집안일을 돕기 위해 고용한 당시에는 대학졸업반이었던 Shelly라는 여성을 알게 되어 평생의 친구이자 동료가 되게 되고, 이 두 사람의 우정이 성장하는 과정을 영화의 중반부터 보게 되는데,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Bill을 진심으로 돌보아 줄 사람이 생기게 되어 참 안심이 되더군요.




정직하고 속임수 없는 Bill의 영업 능력과 헌신이 연마되면서 닫혀 있던 문이 열리기 시작하고, 몇몇 고객을 친구로 만들 수 있게 됩니다. 빌의 상사들도 어려운 영업 영역에서 빌의 업무 성과를 눈여겨보고 새로운 직업을 성공적인 커리어로 성장시키기 위한 그의 노력을 지원하기 시작합니다.



Bill 이 담당한 동네의 사람들도 그들 통해 알게 모르게 많은 변화를 경험합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움만 하던 두 집이 결국은 화해하게 되고, 홀로 살아가는 미망인을 위로하며 그녀의 마지막 길을 알게 모르게 따스하게 해 주었으며, 당시에는 드물었던 동성애자 두 명에 대해서도 그저 다른 사람들에게 했듯이 평범하게 대해주었지요.




어떤 climax 도 없고 plot twist 도 없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Bill 역할을 맡은 William H. Macy의 인터뷰에서도 볼 수 있듯이 screenplay 가 아주 돋보인 작품이었습니다. 연기의 대가들이 많이 출연했었지요. 우선 주연인 William H. Macy는 “Fargo” 의 주연도 했던 명배우입니다. Bill의 어머니로 출연한 Helen Mirren 도 이미 diva 수준의 여배우시고, 외로운 미망인 역을 한 Kathy Baker 도 주연급 배우지요. Kyra Sedgwick 은 Shelly 역을 했는데, 1996년작 Phenomenon에서 John Travolta를 지켜준 배역으로 나왔었지요. 미소 때문인지, 아니면 포근함이 느껴지는 여배우라 그런지, 이 영화에서도 참 잘 어울리는 guardian 역을 아주 잘 해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Wq5evpbfE



어쩌면 동정만 받으며 살아갔을 한 장애인의 인생 이야기를 섬세하게 그려내면서도, 이 한 사람의 끊임없는 노력과 결단력, 그리고 현실과 인식의 장벽을 뛰어넘는 일에 대한 더 큰 이야기를 그려 준 영화지요. 또한 미디어에서 거의 다루지 않거나 할리우드 작품에서 묘사되지 않는 이야기, 즉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직장에서 도움이 될 만한 기술, 성격, 인내심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취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한 현실을 다루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영화입니다. 미국에서도 DVD 외로는 찾기가 어려운 작품이거든요. 그저 "오늘은 넷플릭스에서 뭐 하나?"라고 말하며 remote control을 돌려서 찾는 탄산음료 같은 단맛 나는 영화군에 절대 속할 수 없는, 느리지만 짙은 여운을 알게 모르게 남기는, 마치 Bill Porter 가 주변 사람들에게 알게 모르게 그들의 삶에 영향을 준 것처럼, 그런 영화입니다.



- January 1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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