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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Jul 16. 2021

Jones Beach, 1992년 여름 (2/6)

태임이와이 이야기

Jones Beach, 1992년 여름

"I wish we can stay friends forever, just like we are right now (우리 영원히 친구였으면 좋겠다, 지금 우리같이)."


태임이가 제게 8월의 어느 날 오후 4시경, Jones Beach 의 한 해변에 앉아 있었을 때 제게 해 준 말이었지요.


뉴욕시를 빠져나와 동쪽에 있는 Long Island 지역으로 들어가면, 뉴욕이란 도시의 느낌은 사라지고, 그저 평범한 대서양의 이런저런 크고 작은 도시들과 천천히 움직이는 차들로 채워집니다. Nassau County라는 지역이 뉴욕시에서 차로 495번 고속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1시간 30분 정도 가면 다다를 수 있는 곳이고, 거기서 또 1시간여동안 더 동쪽으로 운전해서 Nassau County 의 동쪽 끝 경계를 넘으면 Suffork County라는 지역으로 들어갑니다. 뉴욕시에서 차로 2시간 넘어 최대 4시간까지 걸리는 공간을 차지하는 지역이지요. 이 Nassau County와 Suffork County 의 남쪽은 대서양과 맞닿아 있으며, 이 두 지역의 남쪽은 동서로 Nassau County에서 Suffork County 까지 길게 늘어진 Jones Beach Island와 Fire Island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Fire Island 의 동쪽 끝은 그 유명한 Montauk 등대가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대학생으로 맞이한 첫여름방학이었지만, 그리고 대부분의 대학생이 그랬지만, 저도 학비와 제 용돈을 벌기 위해 일을 선택했고, 그곳에 태임이도 있었습니다. 같이 일하던 모두가 대학생들이라 재미있는 날들이었고 일이 끝난 후엔 같이 볼링도 하러 가거나 근처 식당에서 늦은 시간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여름밤을 보냈었지요. 하지만 태임이는 우리들 중 가운데에서도 잘 어울리지 못하는 한 명이었습니다. 우리들이라 하면 30여 명이었는데, 우리들 중엔 반 정도의 수가 예전부터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지내던 친구들이었습니다. 재미교포 2세들로, 같은 동네, 같은 교회, 그리고 심지어는 같은 학교를 다니던 그룹으로, 그들 가운데 태임이도 한 명이었지만, 그녀는 그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았고, 그 그룹의 다른 친구들도 일부러 그녀를 위해 말을 걸거나 이끄려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외톨이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섞이지도 않는 사이였지요. 하지만 저와는 같은 일을 하고 있었기에 일상적인 대화부터 조금은 깊은 이야기까지 나누고 있었습니다. 깊은 이야기라 해도 고작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에 대한 정도였고, 특이할 만한 점은, 그녀는 그 당시 정말 유행이었던 Vanessa Williams 의 "Save the Best for Last"를 정말 좋아하여, 카세트 테이프에 이 노래만 양쪽으로 녹음해서 듣고 다닌다는 점이었지요.


7월에 시작한 일이 8월 말 종료를 앞두고 있던 어느 날 오후 3시, 그 날의 일이 끝났습니다. 날씨가 너무 화창하였고, 대서양의 건조한 공기가 뉴욕시 전체를 참 상쾌하게 한 그 날 오후, 태임이가 제가 있던 방에 들어왔습니다.


"Jungwon, I need you to do me a big favor."

(정원아 큰 부탁 하나만 들어줄래?)


"Sure, what is it?"

(그럼, 뭔데?)


"I need you to drive me somewhere right now if you are not too busy today."

(오늘 바쁘지 않으면 날 어디에 좀 데려가 주었으면 해서)


"Cool. Where?"

(그래. 어딘데?)


"To Jones Beach."

(존스비치야)


1시간이 넘어 걸리는 그곳...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그 후 제게 해 준 그녀의 말 때문에 저는 그러기로 했습니다. 그녀는 그간 너무 일에 대해 심리적인 압박을 받고 있었고, 지금 하는 일 또한 그녀 어머니의 강요에 의해 하고 있다는 이야기... 그리고 이 숨도 쉬기 어려운 곳을 빠져나가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다소 과장된 말들이었지요. 그녀의 목소리는 사실 Winona Ryder 의 그것과 상당히 비슷했습니다. 한국계 발음이 하나도 배어있지 않은 백인의 발음이라 해도 전혀 모를 목소리에, 교포 여자애들의 특별한 음색조차 없었지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나 그 목소리를 더 오래 듣고 싶다는 생각이 엉뚱하게 들었고, 그리고 느 날 오후엔 아무 일정도 없었기에, 저는 그녀를 제 차에 태우고 Jones Beach로 향했습니다. 늦어도 오후 6시엔 올 수 있겠다는 생각과 함께.


차를 타자마자 그녀의 기분은 완전히 변한 듯했습니다. 매우 발랄했고, 목소리도 즐거워졌으며, 어색했던 제 이야기들에도 참 잘 웃어주었고, 가끔은 제 오른쪽 손등에 살짝 그녀의 손을 얹으며 조곤조곤 그녀의 크고 작은 이야기들을 해 주기도 했지요. 해변가로 가던 1시간여 동안 이야기를 참 많이 했고, 제가 좋아하던 라디오 방송 106.7 FM에서는 당시 유행하던 여름 노래들이 정말 많이 나왔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해변가에 거의 도착했을 때였을까... 운전하고 있는 제게 그녀의 얼굴을 아주 가까이 들이대며 "Jungwon, tell me... who are you, really? I can't still figure out what kind of guy you really are." 라며 아무래도 큰 두 눈동자를 반짝이며 제가 답도 할 수 없는 질문을 하던 그녀의 얼굴이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그녀의 향기도 그때 처음 맡았는데, 참 좋은 향이었습니다.



주차를 한 후 우리는 가까운 모래사장에 나란히 앉았습니다. 파도소리가 잔잔히 들렸고, 수영을 할 수 없는 해변가를 일부러 골라서 가서 그랬는지, 사람들도 몇 없었습니다. 멀지 않은 곳엔 등대가 있었던, 아주 멋진 장소였지요. 지금은 말을 많이 하는 편이지만, 그때만 해도 저는 그다지 말이 많지 않았기도 했지만, 그곳의 경치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할 정도로 아름다왔습니다. 마술처럼 갑자기 제 앞에 펼쳐진 짙고 남푸른색의 바다와 하늘이 전개된 대서양의 남쪽 경치에 매료되어 앉아 있었고, 그런 제 모습을 보았는지, 그녀도 여기까지 오던 길에 보여주었던 모습과는 달리 차분히 제 옆에 몇 분간을 앉아 있었습니다. 십 분 정도 지났을까... 그녀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습니다. 담배였고, 아주 자연스럽게 태임이는 담배 한 개를 꺼내어 불을 붙였습니다. 속으로는 매우 놀란 저였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었지요 (하지만 나중에 태임이는 제게 말해주길 그때 제가 많이 놀란 얼굴이었다고 하더군요). 그 담배는 Virginia Slims라는 브랜드였는데, 아주 가늘었고, 여성들을 위해 시장에 나온 담배였습니다. 가끔 고속도로변에서 백인 여성 모델이 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이 담긴 광고판을 보기도 했지만 태임이가, 아니, 교포 여자아이가 제게 그 모습을 보여주리라고는 상상 속에서도 하지 않았던 일이었습니다.


"You know, it's bad for your health."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거 알지?)


하며 애써 태연한 척 말했습니다.


"Of course, I know. I don't swallow the smoke, so, it's OK."

(당연히 알지. 삼키지만 않으면 되니까 괜찮아)


하며 태임이는 제게 말했습니다. 그녀는 정말이지 담배를 태우기만 했지, 삼키지는 않았습니다. 몇 분이 지난 후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그다지 멋져 보이지는 않아"라고 제가 그녀에게 말하자, 태임이는 유쾌하게 웃으며 태우고 있던 담배를 끄고, 저를 응시하며 어색한 한국어로 "그래, 정원아, 너한테는 앞으로 착한 친구가 되어줄게."라고 하며 제 오른쪽 어깨에 그녀의 머리를 살며시 기대며 제게 더 가까이 다가와 앉았습니다. 그렇게 한참을 우리는 같이 앉아서 아무 말 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지요. 그 날 오후 6시까지 우린 해변가를 거닐었고, 근처에 있던 아이스크림 트럭에서 산 아이스크림을 같이 먹었으며, 해변가를 빠져나와 다시 도시로 들어와 어느 허름한 피자가게에서 저녁을 했습니다. 그 날의 기억들... 그녀가 보여준 놀라운 모습들과 몇 마디의 의미 있던 말들... 1992년 8월 말 어느 여름날의 기억들이 제겐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8월이 끝나는 마지막 주, 우린 다시 학교로 돌아갔고, 그 후 편지로, 전화로, 그리고 방학 때가 되면 만나는 방식으로 우리의 우정은 이어져가고 있었습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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