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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Jul 15. 2021

Jones Beach, 1992년 여름 (1/6)

태임이와의 이야기

"Today we had the first snowfall of the season. It was picturesque for the first three hours and then it started to rain. As a grown up, I no longer appreciate the snow as much because all I can think about are the hazardous driving conditions. Really stinks to be a grown up (정원에게... 여기 코네티컷에 올 겨울 첫눈이 왔어. 눈이 내리던 처음 세 시간은 참 멋있었는데, 그 후엔 비가 왔어. 성인이 되니 예전만큼 눈을 좋아하지 않게 되더라. 아마도 눈 때문에 운전이 어렵게 되겠다는 것만 생각하게 되는 듯 해. 어른이 된다는 게 참 별로야)." 


"Snowfall"이라는 제목으로 제게 보내진, 2007년에 받은 태임이로부터 받은 이메일의 서두였습니다. 2001년이 지나가며 소식이 끊긴 이후, 제가 2007년에 우연한 기회에 그녀가 코네티컷 주에 있는 어느 로펌에 변호사로 근무하고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그녀가 일하고 있던 로펌의 홈페이지에서 그녀의 이메일 주소를 찾은 후, 지금 다시 읽어도 너무나 긴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후 이틀이 지난 후 태임이는 제게 답장을 보냈고, 그녀의 이메일 또한 제 이메일만큼 길었던 장문의 이메일이었습니다. 이렇게 재회한 우리 두 사람은 많은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같이 지냈던 과거의 추억을 서로의 편지 속에서 다시 살아감과 동시에 현재를 바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이때 태임이는 34살의 변호사였었고 저는 35살의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일을 벌여놓고 살고 있던 때였습니다. 물론 결혼이란 틀에 아직 묶이지 않은 삶들이었기에 그나마 서로에게 이메일을 매주 주고받을 정도의 여유는 있었던 듯 합니다


그녀와 처음 만난 때가 1992년 여름이었습니다. 20살의 대학생이었던 우리는 대학생으로 처음 경험하게 된 여름방학 기간 동안 같은 곳에서 2개월 동안 일을 하며 가까워졌지요. 그 후 태임이는 Boston 에서 공부를 했고 저는 New York 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태임이는 방학 동안에는 꼭 그녀의 부모님이 살고 계시던 코네티컷으로 내려왔고, 그때마다 수고스럽게도 제가 있던 뉴욕으로 Amtrak 기차를 타고 내려와서 저와 하루 반나절 정도는 꼭 같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집으로 가는 기차편이 편하도록 우린 주로 맨해튼에서 만났고, 주로 Central Park East 를 다녔지요. 그때 그곳에 이곳저곳에 참 많던 작은 갤러리들을 거의 모두 방문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일년에 두 번 정도는 제가 그녀가 사는 코네티컷으로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부모님도 저를 잘 알고 계셨기에, 그녀를 만나러 가는 길이 그리 부담스럽지 않았지요. 주로 가을 추수감사절 주간에 다녀오곤 했는데, 가고 오던 길에서 보던 8차선 95번 국도의 단풍은 아직까지도 강한 인상으로 남아있습니다.


태임이는 제게 있어 매우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짧은 단발머리가 참 잘 어울리는 여자애였고, 누군가가 그녀의 이름을 뒤에서 부르면 그녀는 마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처럼 고개를 왼쪽 또는 오른쪽으로 빠르게 돌리는 식으로 그녀의 짧은 머리가 흩날리도록 하는 습관에서부터, 하나하나 소소히 표현할 수 없었던 그녀의 머리카락과 관련된 습관들을 기억합니다. 이성이었지만 참 편한 친구였고, 그렇다고 해서 간간히 불현듯이 찾아오는 상대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 그런 우리였습니다. 서로에 대한 이런 생각과 감정이 간혹 들 때마다 놀랍게도 우리는 "나, 가끔은 너를 깊이 마음속에 생각할 때가 있어" 라는 식의 대화를 시작으로 하여, 이런 '미묘한' 현상에 대해 마치 제3의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듯이 분석하고 이해하려는 듯 짧지만 깊은 토론을 함으로 우리 방식의 우정을 쌓아가곤 했었습니다. 네, 태임이는 꽤 매력 있었던 여자이기도 했습니다.


재미교포라는 표현을 매우 싫어했지만, 그리고 2세 교포로 한국어가 매우 서툴렀던 전형적인 Twinkie 였지만, 그녀는 미국식 이름을 가지지 않고 Tae 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길 원했고, 한국에 대한 끝 모를 동경을 하고 있던 아이였습니다. 이제 태임이를 처음 만났던 1992년부터의 이야기를 써 보고자 합니다. 우리의 기억은 꽤나 더웠던 1992년의 New York 의 여름... Jones Beach 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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