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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Jul 16. 2021

Jones Beach, 1992년 여름 (3/6)

Jones Beach, 1992년 여름

1992년에 같이 한 여름을 뒤로하고 우리는 각자의 삶으로 돌아갔습니다. 저는 가을학기가 지날 때쯤 미술을 전공하기로 결국 결정했고 태임이는 이미 법학 공부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해변가에서 태임이가 말했던 그녀의 각오... 변호사가 되어, 뉴욕, 뉴저지, 그리고 코네티컷 변호사 자격증을 획득한 후, 노동법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겠다는 열정을 이미 확인한지라 이 소식이 놀랍지는 않았습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그녀는 마치 학교에서도 이미 변호사가 된 듯한 일들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Boston College 에 다니고 있었으며, 늦어도 한 달에 한 번, 보통 때는 2주에 한 번씩 그녀의 일들과 생각을, 상당히 어려운 단어를 사용한 문장들로 가득한 장문의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그녀가 경험한 법원 출입 이야기로부터 새로 사귄 변호사 전공자들과 그리고 현역 변호사들과 간간히 Cape Cod으로 놀러 갔던 이야기, 아는 변호사 사무실의 파트너가 소유한 Yacht를 친구들과 함께 타고 New England 해안가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며 이른 저녁부터 새벽까지 선상에서 작은 파티를 했다는 이야기까지.


녀의 이야기 소재는 참 다양했습니다. 매일같이 학교에서 공부를 하며, 덜컹거리는 지하철을 타고 왔다 갔다를 반복하며 파트타임 일을 또한 매일같이 하고, 주말에야 고작 문화생활의 명목이자 제 전공이었던 미술관 방문이 삶의 전부였던 제겐, 그녀의 삶은 저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하지만 태임이는 이런 제 마음을 알 리가 없었지요. 저도 내색은 하지 않았고, 그녀의 삶을 그대로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 사실, 부럽기도 했었지요. 졸업을 하게 되는 4학년 마지막 학기까지 많은 편지와 전화를 계속 저와 나누었고, 방학 때마다 그녀의 부모님이 살고 계시던 코네티컷으로 내려왔으며, 그때마다 수고스럽게도 제가 있던 뉴욕으로 Amtrak 기차를 타고 내려와서 저와 하루 반나절 정도는 꼭 같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집으로 가는 기차 편이 편하도록 우린 주로 맨해튼에서 만났고, 주로 Central Park East를 다녔지요. 그때 그곳에 이곳저곳에 참 많던 작은 갤러리들을 거의 모두 방문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미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그녀지만, 제가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저와의 동행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제가 그림을 설명하여 줄 때마다 그 큰 눈동자를 더 크게 뜨고, 마지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인양 놀라운 표정을 하고 저를 바라보던 얼굴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한국 배우들 가운데 '채림'이라는 이름의 여성과 닮은 구석이 참 많았던 태임이였습니다.


미술전공이었지만 경제까지 같이 전공을 하기로 한 저였기에, 다른 친구들보다 4년 내 졸업이라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인턴쉽도 마무리해야 했고, 졸업반이라 준비할 일들이 많았던 관계로 6개월간은 그 누구와도 연락을 잘 하지 못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태임이도 아마 그랬는지, 그 6개월여간 편지도, 전화도 없었었지요. 이런 공백을 신경 쓸 틈도 없이 바빴던 저는 4월의 어느 봄날, 그녀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아, 오랫동안 연락을 못 했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바로 그녀의 Boston 집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 수신기에서 전달되어 온 사람의 목소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아닌, 처음 듣는 목소리였습니다. 그녀는 그 주소에서 이사간지가 1년이 되어 가고 그 번호만 그대로 두고 갔다고 하더군요. 서운하기도 했고, 약간은 미안하기도 했지만, 몇 명의 친구들이 그렇게 졸업과 함께 시간 속으로 사라져 가던 그런 시기였기에, 그녀도 그렇게 저와의 인연을 마무리하는가 보다 하며 전화기를 내려놓았습니다.


5월이 되었습니다. 1995년이었지요. 봄날 저녁이었지요. 그 푸르른 대서양이 주는 깔끔한 봄날의 공기에 더해 간간히 스며드는 꽃향기까지 느껴지는 그런 완벽한 초저녁이었습니다. internship 을 하던 회사가 위치했던 midtown 에서 학교가 있는 (West Side) Broadway 까지 그 날은 오래간만에 운전을 하고 왔고, 그날만은 참 쉽게 잡은 주차자리에 주차를 했습니다. 주차를 일찍 한 덕에 20여분의 여유시간이 있었고, 잠시 쉬기 위해 의자를 뒤로 눕힌 후 누워서 moonroof 를 통해 하늘을 보고 있었습니다. 가로수 사이사이로 비쳐내리는 일찍 켜진 가로등 불빛과, 아직은 지지 않은 저녁 태양빛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지요. 몇 분이 지났을까...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하지만 참 익숙한 사람의 목소리가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이른 저녁의 봄바람을 타고 들려왔습니다... 태임이의 목소리였습니다.


서둘러 차 밖으로 나가니 그녀가 길가에 서서 저녁 노을빛을 받으며 저를 향해 웃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뒤로 보였던 유럽 양식의 스타일로 건축된 Barnard School 건물과 그 짙은 색 브라운스톤 벽과는 너무 다르게 두각되어 보였던 그 날 저녁 태임이의 아름다운 모습...  그녀는 정장을 입고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정장 차림의 모습에 잠시 말을 잊었지만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서 그녀를 안아주었습니다. 그녀도 잠깐은 놀랐는지 가만히 서 있었지만, 서서히 제 품 안에 그녀의 얼굴을 살짝 묻었습니다. 어쩐 일인지 물어보니, 마지막 학기는 제가 다니던 학교에서 공부하기로 했고, 오후 일찍 교수님을 만난 후 방금 기숙사에 짐을 풀고 제가 행여 다시 학교로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기다리고 있었다더군요. 제 일상이 워낙 단조로왔기에 제 일정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태임이였습니다.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셨다고 하며, 그녀는 그녀의 기숙사 방에 같이 가서 저녁을 하자고 제안을 했고, 저도 이에 흔쾌희 응했습니다.


그녀의 숙소는 그저 평범한 Studio 였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로 오른쪽에 화장실이 있었고, 정면에는 침실 하나, 그리고 오른쪽에는 거실 겸 작은 주방이 있는 그런 맨해튼의 평범한 studio 였습니다. 페인트칠도 여러 번 겹칠 된 벽에 파이프에... 아주 고전적인, 보편적인, 그리고 오래된 맨해튼 studio 였지요. 태임이는 studio에 들어가자마자 신발을 마음대로 벗어버리고, 핸드백을 소파에 던져버리더니 곧장 방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I hate wearing suits! (정장은 정말 싫어!)" 하며 "I am going to change, and you can watch TV there (옷 갈아입고 나갈 테니까 TV 보고 있어)"라고 태임이는 높은 톤의 목소리로 제게 말했습니다. 그때까지 한정된 공간 속에 여성과 같이 있어본 적이 없었고, 게다가 태임이는 옷을 갈아입겠다고 방으로 들어간지라, 조금 긴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나가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저는 그 작은 studio 의 현관문쪽으로 향했고, 그녀가 신고 있던 신발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하이힐이었고, 제 20대 초반의 친구가 하이힐이란 묘한 신발 - 연한 하늘색이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 을 벌써 신고 다닌다는 생각을 하니 그녀가 제게 참 어색하게 느껴지더군요. 두 켤레의 신발을 제대로 놓고 현관문을 여는 순간 저를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Where are you going? I am almost changed! (나 거의 가 갈아입었는데, 어디 가니?)" 뒤를 돌아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열린 현관문 바깥쪽을 어정쩡하게 바라보며 저는 대답했습니다, "I guess it would be better if I stayed outside while you are changing (너 옷 갈아입는 동안 내가 나가 있는 게 나을 듯해서)." 제 생각엔 나름대로 멋진 톤으로 짧게 끊어서 멋지게 말했다고 생각했지만 - 나중에 태임이가 알려준 말이지만 - 제 목소리가 많이 떨리고 있었답니다. 그녀는 그때 이렇게 말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Oh don't be ridiculous! Come on in, and make yourself home! You are not that type for all I know! (멍청하게 굴지 말고 들어와서 편히 있어! 네가 그런 타입이 아니라는 건 내가 아니까)."

아, 이렇게 태임이는 제게 참 쉽지 않았던 친구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1995년의 봄은 옅은 흥분과 함께 활기차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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