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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Jul 17. 2021

Jones Beach, 1992년 여름 (4/6)

그렇게 다시 만난 우리는 예전과는 달리 아주 가까운 곳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1995년, 그 후 6년간은 참 가까이 지냈던 우리였지요. 그녀는 법학 공부의 마지막 해를 Columbia에서 보내다가 다시 St. John's로 옮겼습니다. 물론 두 학교 모두 대단한 법대 과정이 있었지요. 1995년은 제가 직장생활을 시작한 해였고, 게다가 금융업이었기에, 사실 자주 만나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예전보다 더 가까이 보내게 된 이유는 아마도 서로의 전문분야에서 어느 정도 경험을 쌓은 상태로 조금 더 다듬어진 생각들을 교환하는 post college 의 새로운 삶이, 대학 때 그저 방향성 없는 주제들과 덜 익은 꿈들의 조화로 뒤죽박죽 된 대화보다는 훨씬 수월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녀와 같이 다닌 길들... 가끔 주말엔 St. John's 기숙사에 있던 태임이를 Connecticut 에 있는 그녀의 집에 데려다주곤 했습니다. 일이 더 바빠지기 전, 2년간을 그래왔었군요. 그 많은 여정 중 95번 고속도로의 가을 길이 가장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뉴욕의 가을이란 참 다양한 색의 브라운이 사방에 깔린 듯 합니다. 그런 풍경을 보며 그녀와 같이 한 길들의 경험의 기억은 아주 많으나, 그 가운데 특별한 하나의 기억, 그 기억들 가운데 특히 그녀는 달리고 있는 제 차 안에서 조수석 오른쪽에 기대어 제가 운전하는 모습을 약간의 미소를 띠고 바라보곤 했던 기억이 자주 떠오릅니다. 제가 왜 그렇게 보냐고 물어본 적도 한두 번도 아니었지만, 그때마다 그녀의 답은 언제나 같았습니다:


"(영어로) 정원, 너 여자를 참 좋아하는구나?"


"(영어로) 무슨 말이야?"


"(영어로) 아니, 이상한 의미가 아니라, 너는 여성과의, 여성의, 그리고 여성과 관련된 것들을 참 좋아한다는 느낌이 들어. 전혀 나쁜 의미가 아니고, 내가 너하고 이렇게 있어도 내가 참 느낌이 편해. 우리가 알고 지낸지도 8년이 지났고, 서로 낯설거나 그런 느낌은 전혀 없지만, 그래도 너도 남자니까. 그런데 참 편해."


그런 식으로 우린 마지 서로를 제 3자처럼 소재화한 후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상대를 불편하지 않게 하는 독특한 그녀의 대화방식... 이런 방식의 대화를 기회가 될 때마다 다른 사람들과 시도해 봤는데 잘 안 되더군요. 그 애와만의 특별한 대화의 기억들입니다.


하지만 매력적인 아이였습니다. 그녀의 단발머리는 제가 가장 끌리는 그런 것이었고, 여성적인 면도 그녀의 여러 면에서 많이, 자주, 그리고 강하게 느꼈었지요. 하지만 제가 그녀에게 어느 선 이상 다가가지 않은 이유는, 그녀는 언제나 주변에 그 어떤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그녀의 애인들은 - 제가 그녀를 처음 알게 된 1992년부터 그 후 10년간 - 2명이었고 두 남자 모두 변호사들이었습니다. 첫 남자는 4년, 그리고 두 번째 남자는 6년간 열애를 한 그녀... 간혹은 늦은 밤에 그녀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그녀와 그 남자 간에 일어난 '그녀에게는 아주 슬픈 일들'을 들어주곤 했습니다. 그녀는 흐느껴 울기도 했으며, 분노하기도 했고, 제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지요. 예정하지 않은 어느 날 오후에 회사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한 적도 여러 번 있었으며, 약간은 설레는 마음에 내려가 보면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연애 고민을 잔뜩 가지고 오곤 했습니다. 그래도 제겐 소중한 사람이었고, 귀여운 여인이었지요.


하지만 이런 그녀의 방황도, 법대를 졸업한 후 Bar를 pass 한 후 아주 달라졌습니다. Connecticut 에 위치한 꽤 큰 법률회사에 취직을 한 후, 그녀의 관심은 그녀의 일로만 채워졌고, 그녀의 문체, 말투, 행동들도 모두 그리고 아주 완전히 정적으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저 또한 일로 바빠진 나머지, 우리의 관계는 2000년을 넘기며 다시금 그리고 조금씩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2001년부터 2008년은 우리 사이에 있어 긴 줄로 표현하고자 합니다. 서로에 있어 연락은 끊어졌지만, 그 긴 줄로나마 서로의 마음만은 연결되어 있었던 우리... 2001년이 지나 7년 이상 연락이 없었던 우리 하지만 그 후 다시 또 다시 재회를 한 2008년에 태임이가 보내준 이메일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Fantastic pictures, particularly the one of the prayer house.  I didn't know that photography was one of your passions.  


What's up with the song though? Pretty depressing.  Hopefully this is not reflective of your life during the past several years.  You still haven't shared what happened to you, personally, in the past years.  I'm going to give you a call one of these weekends and you can tell me all about your drama, or trauma whichever the case may be.


I voted for Hillary Clinton in the Democratic primaries.  It's about time a woman became president of the U.S.  From the news coverage, I've learned that Hillary is very popular with the Hispanic democrats.  Every time, a newscaster points this out, I remember the portion of Hillary's autobiography you e-mailed me, where she recalls her mother gave her white dress to the daughter of a migrant worker, so that the girl would have something special to wear to her first communion.  This story does not endear her to me because I think it's a self aggrandizing account of her benevolence.  


Anyhoo, please forward your telephone so we can finally catch up.  Give me a ring whenever you feel so inclined.


두 번의 재회, 다시는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업무로 인해 대부분의 제 삶이 한국에 있었어야만 했던 그때... 수많은 생각 끝에 그녀를 한국으로 초청하기로 하였습니다. 2009년 초, 그녀에게 비행기표를 Fedex로 발송하고, 봄에 휴가를 내어 오라는, 그녀와는 의논을 하지 않고 보낸 비행기표와 제 일방적인 요청과 함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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