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nes Beach, 1992년 여름
2009년 초에 태임이에게 Fedex로 비행기표를 보냈습니다. 2009년 말까지 쓸 수 있는 New York과 Seoul 간의 왕복 티켓이었습니다. 그녀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의논하지도 않은 채 발송했지요. 그녀의 Connecticut 사무실로 이를 보낸 후 일주일간 태임이의 답장 또는 전화를 기다렸습니다. 아마 매우 놀란 목소리로 전화를 하거나 또 그 멋있는 변호사 문체로 제게 긴 편지를 보내려니 하며 은근히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한 장의 답장도 한 통의 전화도 없었습니다. 역시 드라마 같거나 즉흥적인 행동의 결과는 현실에서는 성공하기가 어렵다는 생각까지 하였습니다. 물론 그 흔한 드라마 같은 장면을 만들기 위해 비행기표를 보낸 것은 아니었지요. 순전히 즉흥적인 발상에 의한 행동이었지만 조금이라도 그녀를 이 곳에서 볼 수 있다는 희망만은 진실이었습니다. 한 달 후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일주일 후 답장을 한 그녀의 편지에서는 비행기표에 대한 언급은 한 번도 없이, 그저 일상의 일들만 다소 건조하게 나열되어 써 내려간 편지였을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예전 같지 않은 느낌에 - 아마 저만의 느낌이었지는 모르나, 한국으로 그녀를 초청하고자 하는 제 의도에 대한 언급이 없던 점은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녀에게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 전화도 하지 않으며 우리는 봄과 여름을 지내버렸고, 그저 많이 바쁘려니 하며 위안하며 반은 포기한 상태로 또 이렇게 연락이 끊어지는 것이겠지 하며 지냈습니다.
그 더운 여름이 지나고 하반기에 접어든 후 다음 해를 위한 업무의 순환에 빠져들 무렵, 9월의 어느 날 오후 제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발신자를 보니 "국제전화"라고 쓰여 있고 익숙한 그녀의 집 번호가 아래 표시되어 있었습니다. 잠시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몇 개월 전까지만도 그랬듯이 편하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Hi, Tae, long time! How have you been?"
"Hi, Jungwon! It felt like a million years since I spoke with you! How come you didn't care to call me?"
하며 그녀의 웃음이 섞인 밝은 인사말이 전화기를 통해 제게 전달되었습니다. 제가 전화를 안 했다니...라는 말에 당황스러웠지만 그녀의 목소리를 듣게 된 그 자체가 이런 사소한 생각은 사그라지게 하더군요. 예전에도 느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Winona Ryder 의 그것과 매우 흡사했습니다. 다소 낮은 음성에 약간의 콧소리까지, 그리고 그 또박또박한 발음과 리듬까지 참 반가운 목소리였습니다.
그녀가 한국에 오기로 결정했답니다. 항공기 티켓에 너무 감사하고, 그녀는 제가 보내준 그 티켓의 의미를 오랫동안 생각했어야 했다는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의미를 받아들이겠다는 말도 더했지요. 수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그녀의 말들... 이제 와서 다시 물어보기는 어렵지만 그녀가 한국에 와서 저와 같이 지낸 일주일간의 일정을 되살려 기억해보면 알 듯도 합니다.
그녀의 도착일은 일요일이었습니다. 새벽 5시경 도착하는 그녀의 일정은 제가 2001년 4월 1일에 한국에 처음 발을 디뎠던 그때 그 시간과도 같다는, 다소 합리성이 떨어지는 연관성까지 찾아가며 그녀와의 전화를 끝냈습니다. 사실 그녀도 4살 때 한국에서 미국으로 간 후 30년이 넘게 찾지 않았던 한국이니, 제 그 당시 느낌과 비슷하겠다는 생각은 그리 틀려 보이지 않았습니다. 9월 말 그 날, 저는 새벽 3시에 집을 나섰습니다. 그녀를 9년 만에 만나는 날이었습니다. 초가을 새벽 날씨는 차의 창문을 열고 달리기엔 차가웠지만, 아주 맑은 날이 될 듯한 상쾌한 날씨였습니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