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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May 14. 2024

평택 출입국사무소

지나가는 생각들


서울의 출입국 사무소도 그렇지만 수원 출입국 사무소를 방문했을 때마다 든 느낌은 마치 1984년 영화 The Killing Fields 에서의 장면들 - 디스 프란 (Dith Pran) 이 프랑스 대사관에서 다른 미국인 기자들의 도움을 받아 캄보디아를 탈출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 즉 버려진 영국여권을 사용하여 위조여권을 만들고, 프란은 그 가짜 여권의 이름 "앙커틸 브루어"를 외우고자 노력하는 장면 - 을 떠오르게 했습니다. 좋은 느낌을 주는 장소는 아니였지요.



오늘은 평택에 있는 출입국사무소 출장소에 갈 일이 있었는데, 그 곳 (수원)과 비교하면 그 곳 (평택) 은 The Killing Fields 그 자체가 닐까 할 정도로 여러 여건이 아주 불쾌했습니다. 사무소의 열악한 상태가 우선 가장 큰 이유였고, 거기에 더해 민원인들도 서울이나 수원에 비하면 아주 다른 성격의 집단이었습니다. 인종적 또는 국적 우월감이라 해도 무관하겠지만, 그 곳에 그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조차 마음 속으로는 매우 거슬렸습니다. 이를 부인하지 않음이, 아무래도 제 마음 배경에는 이런 요소들이 분명히 존재했으니까요.


이곳에서 느끼는 감정이 왜 이렇게 다를까 생각해보니, 평택 출입국 사무소는 평택 및 천안 그리고 안성지역과 중부지방 대부분 지역에 거주 또는 취업중인 외국인들의 민원을 처리하는 곳으로, 아마도 한국 내 대부분의 아시아계 이주노동자들 중 '중하위권' 취업군에 해당하는 외국인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는 지역 내 외국인 대상 업무를 하는 사무소였지요. 그렇기에 아마도 이들로부터 느껴지는 그것이 다를 수 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전에 인터넷으로 예약을 9시로 잡고 미리 8시 30분쯤 그곳에 도착했습니다. 평택사무소는 평택 시의회 건너편에 위치한 9층짜리 건물 3층에 위치해 있었지요. 엘레베이터 문이 3층에서 열리고, 제 눈 앞에는 중국국적의, 다양한 동남아시아의, 서아시아의, 그리고 몽골리아와 그 외 이름모를 아시아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 현관문 바깥 공간에 이미 빼곡히 들어차 있었습니다. New York 에서 살았고, 그리고 살고 있음에도, 오늘 그 곳에서는 처음으로 xenophobia 를 느끼게 되더군요. 언어, 눈빛, 피부색, 옷차림, 태도 등 모든 요소를 통해 종합적으로 제게 전달된 이 군중들에 대한 느낌은 아주 좋지 않았습니다. 한국혈통의 외국인들은 수원이나 서울에서는 볼 수 있었는데, 오늘 그 곳에서는 제가 외국인들 중에서도 외국인이었지요. 미국인이나 서방국가에서 온 '백인'들조차 볼 수 없었습니다.


9시 2분, 제 예약번호가 2번 창구 위에 위치한 monitor 에 올라왔습니다. 창구에 앉아 제 업무를 담당해 줄 법무부 직원을 마주하게 되었지요. 여성이었습니다. 남색인지 또는 파란색 계통 제복을 입고 있었지요. 30대 초반정도 되어 보이는 이 직원은 - 잠깐이었지만 '그저 바라만 보는'상태로 그 사람의 얼굴을 쳐다볼 정도로 - 외모가 아름다운 사람이었습니다. 법무부 제복이 부끄럽게 보일 정도로 참 예쁜 사람이더군요. 예전같았으면 가슴에 달린 명찰에 새겨진 이름을 내려다보았을텐데, 이번에는 그러지도 못하고 '그저 바라만 보며' 인사를 하고 서류를 내밀었습니다.


그 평택 사무소의 환경이 저를 그렇게 만들었을지는 모르나, 이 직원은 제가 서류접수를 마무리하기 위한 절차를 친절하게 알려주었습니다. 창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hall 로 나와서 저를 안내하며 다음 단계를 진행할 곳으로 이끌어주기도 했습니다. 다른 이들에게도 이런 배려를 해 주지는 않고, 저만을 위해 해 준 친절이었더군요.


이 여직원이 써 준 메모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예전같았으면 이런 '특별한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souvenir 목적으로 그 메모 또한 보관하려 했겠지만 이 습관도 오래 전에 그만 두었지요. 하지만 이 사진과 그녀의 얼굴, 목소리, 그리고 필체는 (아마도 극히 평범한 필체겠지만) 제 기억 속에 오래 남아있을 듯 하고, 그 이상했던 평택 출입국 사무소에 3년 후 다시 가 보면 그녀가 아직도 그곳에서 일을 하고 있을지 벌써부터 제 마음속에 궁금함과 약간의 기대가 생기기도 합니다.




- May 1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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