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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Oct 11. 2024

At Middleton (2013)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


(Full spoiler)


George:

We came in the wrong door

Professor:

There are no wrong doors.

All the world's a stage.

George:

Not in my world.


40살이 넘어 50살이라는 나이에 가까워질수록 지난 삶에 대한 동경과 후회, 그리고 현재의 삶에 대한 불만과 고통스러움, 그리고 미래의 삶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이 주는 색채가 더 짙어집니다. 그리고 50살이 넘은 시점에서는 이 현상이 더 두드러지는 듯하지요. 아마도 60살에 가까워질수록 현실에 조금씩 순응하고 적응하며 살기 시작하게 되는 듯합니다. 어찌 보면 일종의 fade out으로, 삶의 폭이 50이란 숫자를 넘어 조금씩 좁아지는, 그런 현상이겠지요. 하지만 숫가가 늘어나는 만큼이나 과거에 대한 미련과 그리움은 더해져만 가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George Hartman이라는 심장수술전문의가 있습니다. 나이는 아마도 50대 언저리. 18세 아들 Conrad의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지요. 누가 보더라도 부러운 대상일 듯합니다. 가정도 잘 유지하고 있으며, 아들도 잘 자라주었지요. 요즘 애들과는 달리 아버지의 말도 잘 듣는 아이입니다. 다만 아직 어떤 공부를 할지 미정인 상태로, 조금은 정체된 상황입니다. 하지만 Princeton 대학교 또한 고려할 만큼 학교 성적도 좋습니다. George는 이런 아들을 위해 Middleton College 가 제공하는 campus tour에 가자고 하고, 길을 떠나지요.



Edith Martin 이란 고급 어린이용 가구 영업을 하는 여자가 있습니다. 나이는 아마도 40대 후반. 그녀의 까칠한 딸 Audrey 도 대학 진학을 하기 위해 Middleton College 가 제공하는 tour에 참가하기 위해 이곳에 도착합니다. Conrad 와는 달리 Audrey는 이곳에서 대학생활을 하고 싶어 하는데, 이유는 그녀가 공부하고자 하는 언어학 (좋은 직장을 찾기가 쉬운 전공이라)에 있어 미국 내 최고 중 하나인 Roland Emerson 교수의 지도를 받고 싶어 하기 때문이지요.



병원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기 위해 잠시 그룹을 떠난 George와, 다소 지루한 tour에 금세 식상이 난 Edith는 우연히 만나게 되고, 이 두 사람의 색다른 campus tour 가 시작되지요. 대학이라는 공간, 젊은 시절 꿈과 낭만, 그리고 학문에 더 깊이 파고들기 위해 수많은 날들을 보내고 밤을 지낸 고귀한 추억이 서린 대학이라는 공간에, 이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그들이 마치 20대인 것처럼 돌아가게 되지요.


아이들을 키우느라, 가정을 유지하느라, 그리고 아마도 이런 것들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할지 모르는 직장생활도 하며 거의 20년을 보내온 지금, 어느새 얼굴은 늙어가고 있고, 목과 눈가에는 주름이 생겼고, 몸은 망가지기 시작했으며, 꿈과 열정도 모두 없어진 지 오래입니다. 사랑해서 결혼한 배우자로부터 그 어떤 것도 느끼지 못한 지 이미 오래되었고, 앞으로의 삶이 dead end처럼 느껴진 이 묘한 나이에 이 두 사람은 어쩌면 '마지막'이 될 수 있는 탈출의 기회를 직면하게 된 것일지도 모를 일이지요 (아래 두 배우의 20대 시절 사진과 2013년 당시 사진을 올려봅니다).



보수적이고 수동적인 George, 그리고 아직까지는 발랄한 Edith. 이 두 사람은 처음부터 opposite이라 이 날 반나절이 지나는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오래된 친구처럼 잘 어울렸는지도 모릅니다. 왠지 거리감이 느껴지는 아들, 그리고 자신을 귀찮아하는 듯한 딸을 tour에 남겨두고 이 두 사람은 나름대로 이 캠퍼스를 둘러보기로 하고, Edith의 꼬임에 넘어가 잔디밭에 세워둔 자전거를 빌려 (훔쳐) 캠퍼스를 둘러보기 시작합니다. 종탑 꼭대기에 올라가 학교 전경을 바라보기도 하지요. 잠시 공원 벤치에 앉아 다양한 모습의 학생들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농담도 주고받습니다. 그저 옛날 그때, 대학시절 당시로 돌아간 듯한 모습이지요.



그렇게 여기저기를 다니던 중 우연히 연기 수업에 몰래 들어가서 보게 되고, 담당인 Riley 교수에 설득으로 무대에서 학생들을 앞에 두고 부부 연기를 하게 됩니다 (Riley 교수역을 한 배우는 실제로 연극학과 교수이자 배우, 감독이기도 하지요: Mirjana Jokovic). 지금까지는 그저 30년 전으로 돌아간 듯 아이들처럼 함께 시간을 보내던 이 두 사람은 이 연기 연습을 하는 동안 감정적으로 교감하게 되지요.


George: We came in the wrong door

Professor: There are no wrong doors.

All the world's a stage.

George: Not in my world.


George의 말대로, 이 연령대의 사람들은 직업이 무엇이건간에, 어떤 가정을 가지고 있건간에 wrong door는 한두 개 정도는 열어 본 경험이 있겠지요. 꽤 많은 잘못된 문들을 연 사람도 많겠지요. 그렇기에 더 이상 삶이 재미있는 연극이나 연기가 아닌, 힘겨운 '버티기'라는 것을 대면하게 되지요. 특히 이 나이에 접어들면 더한 듯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KX4e3VHQ_yc&t=157s


이 연극반 경험 이후 이들은 조금씩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만, 각자 자녀가 있고, 결혼한 상태라는 것을 자꾸 각자에게 상기시키며 어느 정도 이상의 가까움은 피합니다. 하지만 George 가 "우린 그저 여기서 점심을 같이 하는 게 아니잖아요?" 라며 파문을 만들고, 이 두 사람은 남은 시간 동안 억지로 간극을 녋혀가려고 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0kpuuNw9duA


이후 이 두 사람은 이 두 사람만의 wrong door를 열지 않습니다. 하지 못한 것이 아닌, 열지 못하고 말지요. 이 두 사람의 아쉬움은 우선 Edith 가 그와 작별하며 던지는 말속에 짧게 하지만 깊게 표현됩니다:


"I thought you fixed hearts..."

(당신, 심장 (마음) 전문의잖아요...)



George 도 잠시 오후 일찍 같이 본 1964년작 영화 The Umbrellas of Cherbourg를 기억해 내며 이렇게 말하지요:


"It's a sad ending, isn't it?"

(이 영화, 슬프게 끝나나요?)




이렇게 두 사람은 반나절의 만남을 뒤로하고 영원히 다시는 볼 수 없는 이별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두 사람, 이별을 하기 전 그들이 잠시 머물렀던 종탑에서 잠깐동안지만 둘만의 시간을 가지긴 합니다만, 매우 절제된, 그런 방식으로 이 슬픈 중년의 짧은 romance의 정점을 찍습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예상 밖의 감정적 충격을 주더군요. Conrad와 Audrey는 각자의 부모가 어디에 있는지 매우 궁금해하며 주차장에서 그들을 기다리던 중, 그 두 사람이 돌아오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아이들에게는 그 어떤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두 사람, 이 두 사람의 얼굴을 보며 걱정이 된 각자의 아들과 딸 - 이들에게 운전을 맡기고 이 50대 전후의 두 남녀는 영원한 이별의 길을 각자 떠납니다.



주차장을 나선 이 두 가족, 딸이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자 Edith는 이렇게 말하지요.


"We'are going to be fine."

(우리 괜찮을 거야)



아들에게 운전을 맡긴 George 도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하지요:


"Let's take a long way home."

(좀 먼 길로 돌아 집에 가자꾸나)




아무래도 남자에게는 더 많은 미련이 남게 되나 봅니다.




이 영화의 배경인 campus tour의 결과는 당사자들에게는 어땠을까요? 우선 Audrey를 보겠습니다. 모든 것을 계획하고 앞으로 할 일들에 대한 철저한 실행방식을 이미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는 이 여자아이는 now를 사는 젊은이지요. 이 대학에 오고 싶어 하기에 이 tour를 원했고, 그 이유는 이곳에서 그녀가 공부하고자 하는 언어학 (좋은 직장을 찾기가 쉬운 전공이라)에 있어 미국 내 최고 중 하나인 Roland Emerson 교수의 지도를 받고 싶어 하기 때문이지요. 그렇기에 이 교수와의 appointment 도 이미 해 놓은 상태입니다.



그렇게도 고대해 온 교수와의 만남. 하지만 이 교수는 이번 해를 마지막으로 sabbatical을 간다는군요. 꿈과 계획이 산산이 파괴된 Audrey는 화를 내고, 이 여자아이를 잠잠히 관찰해 온 교수는 이런 조언을 해 줍니다:


Emerson: The line between ambition and obsession can be much thinner than one might imagine. You would be well served to look down and see exactly where you are standing (야망과 집착 사이의 경계는 생각보다 훨씬 얇을 수 있단다. 아래를 내려다보고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좋겠다).


결국 Audrey는 영화 말미에 이 학교가 더 이상 자신의 관심이 아니라고 Conrad에게 말하게 되지요. Emerson 교수의 조언이 통하지 않은 듯합니다.



반면 특정한 바람 없이 이곳에 온 Conrad는 우연히 들어간 라디오 방송실에서 묘한 경험을 하게 되고, 자신이 이 쪽 분야에서 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지요. Radio를 진행하는 훌륭한 사람의 조언이 Conrad에게는 통했나 봅니다.


"Lesson number four: know your audience. It's all about making a connection. That's the beauty of radio. Something goes on between you and the people out there. It's living and changing moment to moment. You can't see it, but you can feel it. And you can't get that on VH1 (네 번째 교훈: 청중을 파악해야 해. 모든 것은 커넥션이지. 그것이 바로 라디오의 매력이야. 라디오를 진행하는 너와 청취자들 사이에는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어. 시시각각 살아 움직이고 변화하는 것이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느낄 수 있어. Music TV VH1에서는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없잖아)."




Neil Genzlinger라는 The New York Times의 평론가는 이렇게 말했다는군요 “일부 사전 홍보에서는 앳 미들턴을 로맨틱 코미디로 묘사하고 있지만, 이는 이 섬세하고 절제된 영화에 대한 너무 단순한 분류입니다”라며 긍정적인 평을 내렸고, "이 영화는 익살스러운 유머로 가득하지만, 자녀의 대학 선택을 돕는 과정에서 각자의 결혼 생활의 공허함을 마주하는 두 사람의 씁쓸한 초상화이기도 합니다."라는 평을 했습니다.


Vulture critic Bilge Ebiri는 “미들턴은 평범한 영화이지만 보다 보면 때때로 이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작은 기적처럼 느껴집니다.”라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는군요.




누구에게나 (대부분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는 대학시절. 삶의 시작을 다시 한다면 제 경우엔 대학시절이라고 말합니다. 저 또한 40살이 넘어 50살이라는 나이에 가까워질수록 지난 삶에 대한 동경과 후회, 그리고 현재의 삶에 대한 불만과 고통스러움, 그리고 미래의 삶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이 주는 색채가 더 짙어짐을 느끼기 때문이지요. 젊다는 것을 최상으로 느낄 수 있었던 대학시절, 그리고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는 것으로부터 느끼는 희열, 그리고 진지함과 두려움, 그리고 희열 속에서 사회생활을 준비하던 그 시절이었기 때문이지요.


이 영화를 불륜영화하고 절대 하지 않겠습니다. sexual 한 것은 없었기 때문이고, 이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감정이 있었지만, 사실 젊음에 대한 그리움이 상대를 통해 (또는 상대와 함께) 느낄 수 있었음에 이 두 사람은 육체적인 아닌, 정신적인 공감 속에서 각자의 젊었던 시절을 느꼈고, 다시 경험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절제함이 존재했고, 그렇기에 영원한 이별 (과거에 대한 이별 또한) 이 아프지만 가능했던 것이겠지요. 마지막 Andy Garcia (배우)의 대사가 마음을 찌르는군요:


"Let's take a long way home."

(좀 먼 길로 돌아 집에 가자꾸나)


https://www.youtube.com/watch?v=Fpyrb8oV_NY&t=1s

                     

그 반나절 추억에 대한 느낌이 현실 속에서 지워지는 것이 싫기에,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싶은 마음이었겠지요. 그 여운에 대한 소중함을 이 대사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대사를 끝으로 fade out 되는 영화의 장면, 제겐 깊은 감동이었습니다.


남은 사진들을 아래 올려봅니다.




- October 1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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