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노래
수준있는 사랑이다, 격이 높은 사랑이다 - 라고 말한다면 기껏해야 두 남녀의 연애를 너무 과하게 포장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랑이란 것을 노래로 만든 경우도 사실 대부분이 이러한데 (즉, 하찮게 들리는데), 남녀간의 사랑은 가벼울 수 밖에 없으니 당연한 이야기인 듯 합니다. 물론 "여명의 눈동자" 또는 "모래시계"의 그것을 보면 예외도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나, 드라마고 영화일 뿐이니, 현실에서 그 누가 수준있는 사랑, 격조높은 사랑을 했거나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이영훈 작곡가와 가수 이문세님의 노래들은 '수준있는 사랑'이 존재한다는, 또는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특히 3집, 4집과 5집에서 그 느낌을 받게 되는데, 5집이 이들 중 가장 잘 빚어진 작품이 아니었을까요? 5집은 모든 곡이 수려했습니다. Side A 에 수록된 곡들 (1.시를 위한 시, 2.안개꽃 추억으로, 3.광화문 연가, 4.내 오랜 그녀, 그리고 5.이밤에), 그리고 Side B 의 노래들 (1.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2. 붉은 노을, 3.기억의 초상, 4.끝의 시작, 그리고 5.사랑은 한줄기 햇살처럼) 모두 명곡들이었지요.
이들 중 마지막 노래 "사랑은 한줄기 햇살처럼"은 보통 앨범의 마지막 곡이 다분히 기쁘거나 희망적 또는 upbeat 한 것으로 올려지는 것과는 달리, 이 곡이 이 앨범 맨 마지막에 올려졌다는 것이 꽤 특이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1989년 늦가을, 미국에서 이 앨범을 LP로 사서 늦은 밤 Side A 와 Side B 를 멈추지 않고 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Side B 의 마지막 곡, 즉, 이 노래의 마지막 부분이 차분히 마무리된 후 LP 의 치직거리는 잡음이 몇 초간 지속되다가 전축바늘이 다시 제자리에 자리를 잡는 그 십수초동안 마음이 매우 무겁고, 목이 메이기까지 했으니까요.
힘겨운 시절, 하늘의 선물처럼 누군가가 다가와서 용기와 희망, 그리고 사랑의 감정을 전해 주고 홀연히 떠난 어떤 사람과의 '사랑추억'을 그린 노래라는 생각입니다. 질투와 화해, 시기와 오해, 그렇고 그런 가벼운 감정도 느껴보지 못한 그 사람과의 짧은 사랑의 추억은 아마 이 노랫말처럼 흘러가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그 추억이 아릅답고,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도 어젯밤 꿈처럼 선명히 생각나게 되는 듯 하지요.
독백 형태로 흘러가는 가사와 여러 악기가 쓰였지만 느린 피아노 선율만 마음 속에 남게 되는 이 노래는, 이영훈+이문세 era 의 마지막을 장식한 노래로 기억하고자 합니다.
그대는 한줄기 햇살처럼
흩어지는 나뭇잎사이로
내 품에 잠시 머물은
보랏빛 노을이었나
사랑한단 말도 모르는데
울먹이는 저녁 아이처럼
내 품에 잠시 머물은
한줄기 햇살이었나
그 마음을 알 수 없어
흐르던 눈물은
흐르질 않지만
그저 지난 추억이 아름다워
다시 또 생각나는가
https://www.youtube.com/watch?v=3jRf_bCVW6c
- November 23,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