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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Jan 04. 2025

뉴욕현대미술관에서 만난 고흐

뱃줄 달고 미 동부여행


두 번째 고흐를 만난 곳은 뉴욕의 현대미술관에서였다.

어느 일요일 오전, 남편과 나는 성 패트릭 대성당에서 미사를 본 후 걸어서 뉴욕현대미술관으로 갔다.

뉴욕현대미술관(Musium of Modern Art) 혹은 줄여서 MoMA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이 미술관은 미국이 한창 전성기를 구가하던 1929년, 미술 애호가였던 애비 록펠러, 릴리 블리스, 메리 셜리번의 세 여성에 의해 맨해튼 5번가와 6번가 사이에서 조그마하게 시작되었다.  그후 2차 세계대전으로 수많은 미술가들이 미국으로 망명해오고, 부강해진 미국의 자본으로 유명 그림들을 사 모으면서 세계 미술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오게 되었고 현대미술관은 뉴욕이 현대 미술의 중심에 서게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모마는 1880년대 이후의 회화, 조각, 판화, 사진에서부터 현대의 상업디자인, 건추그 공업, 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예술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뉴욕의 현대미술관


MoMA에는 파블로 피카소, 앙리 루소, 피트 몬드리안, 살바도르 달리, 프리다 칼로, 잭슨 폴록, 앤디 워홀, 모네, 크림트, 세잔느, 샤갈, 마티스 등의 유명 아티스트들의 그림과 로댕의 조각품 등 약 20만 점이 소장되어 있어 전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현대미술 컬렉션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모네의 대형 수련 그림에 대해서는 이곳을 방문하기 전부터 가슴을 설레며 기대를 하였다.

과연 현대미술관의 컬렉션은 하나하나가 걸작들만 모아둔 컬렉션의 정수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교과서에 소개된 미술 작품들을 눈앞에서 이렇게 생생히 볼 수 있었으니 안 먹어도 배부른 그런 날이었다.


나는 모네의 대형 수련 앞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방 하나를 다 차지할 정도로 굉장한 규모의 이 그림으로 인해 번잡한 도시 한가운데에 서 있는 MoMA가 환상적인 장소로 바뀌는 것만 같았다. 왜 모네가 모네인지 알 것 같은 그림이었다. 푸른 물 위에 피어있는 분홍의 수련 꽃이 너무 예뻤다.


모네의 수련 그림


그래도 이곳 MoMA의 대표 얼굴은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다. 세계인들이 이 그림을 보기 위하여 MoMA로 몰려온다. 그 외 이곳에는 고흐의 또 다른 그림인 <조셉 룰랭의 초상화> 한 점이 소장되어 있다.


고흐가 동생 태오와의 파리생활을 접고 프랑스 남쪽 어딘가를 찾아 아를에 도착한 것이 1888년 2월 20일이었다. 이곳 풍경에 매료된 고흐는 아를에 화가들이 모여사는 화가 공동체를 만들고 미술학원을 세우고 싶다는 야망을 품었다. 그는 파리에서 알게 된 친구 화가들에게 열심히 아를로 올 것을 권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의  이상을 위해 고흐는 ‘노란 집’이라고 불리는 건물의 일부를 빌려 화실로 쓰기로 하였고, 카페를 운영하는 지누 부부의 하숙집으로 이사를 하였다.

이곳에서 고흐는 아를의 전원풍경을 그렸다. 황금색으로 빛나는 밀밭에 매료된 고흐는 노란색을 듬뿍 사용해 아를의 들판을 그렸다. 또한 고흐의 일생의 주제인 인물화도 많이 그렸다. 자화상도 그렸다.

이곳에 머무는 1년 3개월 동안 고흐는 139점의 그림을 그렸다.  가히 고흐의 전성시대가 이때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모델의 한 사람이 바로 우체부 조셉 룰랭이었다. 고흐가 아를에 체류했던 동안 사귀었던 유일한 친구가 룰랭이었다. 술에 절어 지내던 룰랭은 고흐가 카페에 갈 때마다 어김없이 카페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 카페에서 둘은 흉금을 터놓고 친해졌다. 고흐는 롤렝의 순박함과 호탕함에 반하면서 그를 아버지처럼, 형님처럼 생각하며 외로운 아를 생활을 견뎌내었다.

고흐는 우체부 룰랭의 초상화를 6점 그렸는데 그중의 하나가 MoMA에 전시되어 있는 이 그림이다.


<조셉 롤링의 초상화>, 1888년, MoMA소장


그림에서 룰랭은 푸른 유니폼과 우체부 모자를 쓴 채, 화려한 꽃배경 앞에 앉아있다. 룰랭의 눈길은 선하게 보이고 불그레한 빰은 주독인 듯이 보이는데 이 그림의 압권은 물결치는 수염이다. 드리운 수염이 룰랭의 얼굴을 고상하고 우아하게, 환상적으로 만들어주는 듯하다. 전체적으로 룰랭의 밝은 푸른 옷과 화려한 꽃 배경과 밝은 얼굴은 고흐의 보기 드문 밝은 작품이다.

고흐는 모두 여섯 점의 룰랭의 초상화를 그렸는데 세 개는 단색을 배경으로, 세 개는 이 그림에서 처럼 꽃모양의 배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룰랭 가족은 고흐를 진심으로 친구로 대해주었다. 고흐가 고갱과 다투고 귀를 자르고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그를 돌보고 위로해 준 이가 이 가족이었고 퇴원 이후에도 고흐에게 관심을 기울여준 유일한 사람들이 룰랭가족이었다.

그런데 룰랭이 마르세이유로 전근을 가게 되면서 고흐는 이 가족과 이별을 해야 했다.룰랭의 전근 소식을 들은 고흐는 그전에는 단색으로 칠하던 그의 초상화 배경에 꽃그림을 넣기 시작하였다. 무언가 친구를 우아하고 고상하게 표현해주고 싶은 고흐의 우정에서였다고 한다. 그런 고흐의 심정을 이해하고 이 그림을 보면 괜히 마음이 뭉클해진다.


<밤의 카페>를 그린 고갱의 작품도 있다. 고갱은 이 작품에서 지누 부인을 중심으로 그림을 그렸으나 술을 마시고 있는 룰랭의 모습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그는 룰랭을 그저 평범한 술꾼으로 묘사하여 고흐를 속상하게 만들었다.

고흐는 지누 부인 앞에 책을 두고 그녀의 초상화를 그렸으나 고갱은 술병을 놓아 고흐가 사랑하던 사람들을 비웃었다. 이러한 고갱의 태도는 고흐를 폭발시킨 것으로 보인다.


<밤의 카페, 지누 부인>, 고갱, 1888, 러시아 푸시킨미술관 소장


나는 여섯 점의 룰랭의 초상화 중 MoMA에 있는 이 그림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아름다운 그림을 보면서도 마음은 슬펐다. 고갱도 떠나고 그의 유일한 친구인 룰랭마저 떠나게 되었으니 친구 초성화의 배경에 꽃을 그려 넣는 고흐의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고흐는 룰랭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도 모델로 하여 여러 점의 그림을 그렸다. 그의 아내인 오귀스틴과  두 아들 및 늦둥이 딸 마르셀도 간간이 고흐의 모델이 돼주었다.

외로운 고흐에게 룰랭 가족의 존재는 너무나 컸다. 그러나 이 가족과의 이별로 인해 병의 재발과 주위의 적대적 시선이 두려워진 반 고흐는 결국 생 레미의 정신병원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별이 빛나는 밤>은  MoMA에 있는 가장 유명한 그림이다.

이 그림은 1889년 고흐가 생 레미의 정신병자 요양원에서 그린 그림이다.  

생 레미에서 고흐는 자유로운 외출을 마음껏 할 수는 없었으나 따뜻하고 화창한 날씨와  아름다운 농촌 전경이 고흐의 습작의지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이곳의 밀밭과 사이프러스 나무는 고흐에게 강력한 영감을 불어넣었다. 이곳에서 일 년 정도 머무는 사이에 고흐는 무려 179점의 그림을 그렸다. 아를과 생 레미의 두 시기가 고흐의 그림의 절정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테오에게 보낸 1889년 6월 25일 자 편지에서 고흐는 “머릿속이 온통 사이프러스 생각으로 가득해. 해바라기 그림들처럼 사이프러스로 뭔가를 하고 싶을 정도야. 지금까지 어느 누구도 내가 바라보는 방식으로 사이프러스를 그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이야. 사이프러스는 마치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처럼 아름다운 선과 균형감각을 갖추고 있어. 그리고 아주 품위 있는 녹색을 띠지”.



그리하여 고흐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들어간 여러 점의 그림을 남겼다. 황금빛 밀밭과 고흐가 품위 있다고 생각한 사이프러스의 녹색과의 강렬한 대비는 고흐 그림의 절정을 이룬다.


<별이 빛나는 밤>에서 마을 왼편에 자리한 커다란 사이프러스 나무 한 그루가 절규하듯이 하늘로 치솟아 있다. 가까이에서 보니 우아한 녹색만이 아니라 고흐는 밤의 사이프러스를 표현하기 위하여 붉은 밤색으로 나무를 휘감았다. 그것이 더욱 나무를 불꽃처럼 보이게 한다. 마을은 저 멀리 조그마하게 있고 마을 뒤로 나지막하게 산들이 둘러싸고 있으며 하늘엔 달과 별들이 기형적으로 크게 빛나고 있다. 하늘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구름의 소용돌이가 마치 고호의 내면의 절규처럼 굽이치고 있다.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보면서 고흐의 그림 속에 빨려 들어 작가의 고통을 함께 느끼게 하는 것이 이 그림의 진정한 마력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나도 사이프러스 나무를 좋아하는지라 이 나무가 등장하는 고흐의 그림들에 특별히 더 애착을 느끼게 된다. 그는 과연 이제까지 그 누구도 표현하지 못한 방식으로 사이프러스 나무를 그렸다. 고흐의 사이프러스 나무는 그의 강렬한 에너지의 표출이자 예술혼의 분출이다.


이 그림은 모마미술관을 세우는데 기여한 세 사람 중 한 사람인 릴리 브리스 여사가 1941년 MoMA에 기증한 그림이라고 한다. 이 그림 값은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여겨진다.


메트로폴리탄 뉴지엄에는 더 많은 고흐 그림이 소장되어 있다니 하루빨리 MET로 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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