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 중세 풍경이 보존되어 있다니
아름다운 어느 가을날, 딸 내외가 뉴욕에서 가장 놀라운 장소를 보여주겠다고 하면서 이끈 곳이 메트 클로이스터스(MET cloisters)였다. 클로이스터(cloister)라는 용어가 생소하여 찾아보니 수도원 등에서 네모난 안뜰을 둘러싼 회랑을 뜻한다고 하였다. 이 말은 폐쇄적이라는 뜻의 라틴어 클라우수스(clausus)에서 유래하였고, 수도승이나 수녀같이 하느님을 섬기는 삶에 헌신하는 자들에게만 접근이 허용되는 공간이기 때문에 클로이스터는 수도원의 회랑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메트 클로이스터스(MET cloisters)는 중세미술품을 전시하는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별관이다. 여기서 클로이스터스(cloisters)라는 복수를 채용한 것은 이곳이 프랑스나 스페인 등의 중세 클로이스터들을 들여와 부분적으로 융합하여 본 뮤지엄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유럽에 있던 중세의 수도원이나 성당의 자재들을 미국으로 들여와 중세 수도원 형태의 미술관을 만들었다니 그 방대한 아이디어에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미국의 힘이다!
나는 패트릭 브링스가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라는 책에서 MET 클로이스터스에 관해 언급한 부분이 생각나 다시 한번 그 책을 펼쳐보았다.
패트릭 브링스는 클로이스터스를 이렇게 묘사하였다.
그녀의 아파트 건물에서 거의 모퉁이만 돌면 숲이 우거진 언덕 위로 클로이스터스가 웅장한 모습으로 솟아 있었다.
과연 브링스의 묘사처럼 숲이 우거진 언덕 위에 비바람에 깎인듯한 회색 석조건물이 표표히 서 있었다. 스코틀랜드의 어느 황량한 대지 위에 있을법한 중후한 석조건물이 뉴욕 맨해튼에 있다니 놀라운 일이었다.
그런데 건물의 외관을 보고 놀라기는 이르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그야말로 중세로 발을 들인듯한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입구 홀인 포이어(Foyer)에서부터 중세 수도원의 돌기둥과 아치 구조가 시대를 거슬러 관람객들을 아득한 중세시대로 데려가 준다. 이 세계 최고의 콘크리트 도시에 중세의 수도원이라니!
퀵사 클로이스터(Cuxa Cloister)
내가 처음 조우한 클로이스터는 퀵사였다.
어두운 포이어를 지나자 갑자기 밝고 화사한 정원이 눈앞에 펼쳐졌다. 쥬디 블랙 가든(Judy Black Garden)이다. 그 정원을 회랑이 쭉 둘러싸고 있었다. 주디 블랙 가든의 중앙에는 여덟 면의 분수가 자리하고 있고 네 귀퉁이에는 배나무처럼 보이는 나무들이 배치되어 있었으며 식물들이 빼곡하게 심어져 있었다. 봄이었으면 아름다운 꽃으로 장식되었을 것 같은 정원에는 시들어 가는 가을 식물들이 조용히 이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가을 식물의 조촐함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브링스는 이곳을 이렇게 멋지게 묘사하였다.
수도원은 속세와는 떨어져 있지만 태양과 달과 별과는 닿아있는 곳이다.
이곳을 이토록 우아하고 인상적으로 만드는 것은 정원을 둘러싼 분홍의 대리석 석주들 때문이다. 이 분홍의 대리석 기둥들은 프랑스의 생 미셀 드 퀵사(Saint-Michel-de-Cuxa)의 베네딕트 수도원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오리지널 퀵사 수도원은 9세기경 프랑스 피레네산맥 근처에 세워졌다고 하는데 17세기에 들면서 약탈당하였고, 19세기에는 기둥만 남긴 채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이 남은 석주 기둥들을 1925년 MET에서 수집하여 이곳에 가져왔다. 이곳 회랑은 원래 크기의 약 1/4로 축소되어 재배치되었지만 비율은 동일하게 적용하였다고 한다. 중앙의 분수는 퀵사 수도원 인근에 있던 생 제니스 데 퐁텐 수도원의 것이라고 한다(13세기).
이곳 뮤지엄은 이런 식이다. 중세 여러 수도원이나 성당에서 가져온 유물들을 새롭게 재배치하여 중세 분위기를 살리는 갤러리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이 광경을 보는데 고흐가 입원했던 생 레미의 정신병원이 떠올랐다. 고흐가 입원했던 병원도 생폴 드 모솔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곳이었다. 고흐는 그곳 풍경을 여러 점의 그림으로 그렸다. 내가 좋아하는 고흐의 <아이리스>도 병원 뜰에 핀 꽃을 그린 그림이었다.
클로이스터스의 설립 배경
누가 이렇게 뉴욕 한복판에다 중세를 구현해 놓은 건지 궁금하였다. 그래서 클로이스터스가 설립된 배경을 찾아보았다. 역시 열정적으로 이 일에 매진한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 시작은 미국의 유명 조각가 중의 한 사람인 죠지 그레이 버나드(George Grey Barnard)였다. 그는 파리에서 12년간 조각을 공부하며 로댕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을 제작하였다. 중세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프랑스 시골 마을에 버려진 중세 건축물 조각들을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대표적인 수집품이 프랑스 생 기옘 수도원(Saint-Guilhem-le-Désert) 회랑의 석주였다.
1914년, 미국에 돌아온 버나드는 맨해튼 북부 끝자락에 자신의 중세 미술 컬렉션을 전시할 박물관을 열었다. 그는 자신의 박물관을 <죠지 그레이 버나드의 클로이스터스>라고 명명하였다. 미국에서 중세 미술을 최초로 전시한 그의 박물관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알려져 있다.
버나드의 클로이스터스가 매물로 나왔을 때(1924년) 록펠러 2세(John D. Rockefeller, Jr.)는 자금을 제공하여 The Met에서 이 박물관과 소장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또한 자신이 소장하던 중세 미술 작품 40점 이상을 The Met에 기증하였다(대표적인 것이 유니콘 태피스트리 연작이다).
The Met는 이러한 소장품들을 바탕으로 중세 미술품을 전시할 별도의 건물을 짓고 싶어 했다. 이때도 록펠러가 자금을 제공했다. 그는 버나드의 박물관 북쪽에 인접한 66.5 에이커(8만여 평)의 부지를 구입하여 공원(현재의 Fort Tryon 공원이다)으로 전환하고 그 중심에 새로운 클로이스터스가 지어지도록 도왔다. 이 미술관은 건축가 찰스 콜렌(Charles Collens)과 The MET의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의 노력으로 1938년 멋지게 완성되었다.
네 개의 클로이스터스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이미 미술관의 명칭에서도 드러났듯이 클로이스터들이다. 이곳에는 네 개의 클로이스터가 조성되어 있고 이 클로이스터들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갤러리들이 연결되어 있다. 네 개의 클로이스터스 중에는 앞에서 찬양한 퀵사 외에도 생 기옘, 보네퐁, 트리에 같은 세 개의 클로이스터가 더 있다.
뮤지엄 1층에 퀵사와 생 기옘 클로이스터가 있고 지하층에 보네퐁과 트리에 클로이스터가 배치되어 있다.
생 기옘 클로이스터(Saint-Guilhem Cloister)
생 기옘 클로이스터는 프랑스 남부 생 기옘(Saint-Guilhem-le-Désert ) 수도원의 회랑을 복원한 것이다. 이 수도원은 804년 아키텐 공작이던 성 윌리엄(기옘)에 의해 세워졌는데, 수도원이 산티아고 순례객들이 지나는 길목에 있어 번성하였다고 한다. 회랑을 둘러싸고 있는 아치의 캐피털에는 다양한 형태의 조각을 새겨 넣었는데, 고대 로마의 잎사귀 모양이나 최후의 심판 그림 등이 있다. 벽기둥은 야자수 껍질, 폭포 같은 독특한 모양으로 제작되어 중세 장인들의 창의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곳은 프랑스혁명 이후 시민들에 의해 많은 것이 탈취당하였는데, 미국인 조각가 조지 그레이 버나드가 이곳의 클로이스터를 구입하여 미국으로 가지고 오면서 메트 클로이스터스의 시작이 되었다.
다른 클로이스터들과는 달리 이곳에는 유리 지붕이 있고 정원이라고 부를만한 시설은 설치되어 있지 않다.
보네퐁 클로이스터(The Bonnefont Cloister)
지하층에 설치된 보네퐁 클로이스터는 프랑스 남부 보네퐁 수도원(Abbaye de Bonnefont)의 석주를 가져다 조성한 클로이스터로 알려져 왔다. 최근 이곳이 보네퐁 수도원이 아니라 근처의 타르베스 수도원에서 온 것으로 밝혀졌다.
1930년대에 프랑스에서 해체되어 미국으로 옮겨져 중세 수도원의 정원과 회랑을 재현한 공간으로 유명하다. 특히 이곳의 정원에는 중세 시대에 재배된 식물 250여 종이 재배되고 있고 관람객들에게 중세 식물에 대한 교육을 담당하고 있어 전 세계에서 가장 특별한 식물 컬렉션으로 인정받고 있다.
트리에 클로이스터(The Trie Cloister)
지하층의 보네퐁 클로이스터와 인접해 있는 크리에 클로이스터는 프랑스 남부의 피레네 Trie-sur-Baise에 있는 카르멜 수도원(15세기)에서 가져온 건축 자재로 재구성한 클로이스터이다. 고딕 양식의 아치와 기둥이 특징이다. 이곳 정원은 중세 테피스트리의 밀플뢰르 배경을 떠올리게 하기 위해 조성되었다고 한다. 특히 유니콘 태피스트리에 묘사된 많은 식물들이 실제로 이곳 정원에서 재배되고 있다고 한다. 약초, 향료식물, 꽃뿐만 아니라 독초들도 포함되어 있다.
수도사들과 정원
수도사들의 생활에서 약초를 재배하고 약효를 연구하며 그 효과를 서적으로 기록하여 후대에 남기는 작업은 매우 중요한 일 중의 하나였다. 그러므로 클로이스터 내부에는 정원이 마련되어 있고 수도사들은 약이 되는 식물을 재배하며 약효를 연구하였다.
중세의 클로이스터를 표방하는 이곳 MET 클로이스터스에도 보네퐁 클로이스터 정원과 트리에 클로이스터 정원에는 약초 재배가 중요하게 소개되어 있다. 특히 트리에 클로이스터의 정원에는 독초 종류도 심어 독과 약을 구분하려는 수도사들의 노력을 알리고 있다. 이곳에는 중세를 공포에 떨게 했던 맨드레이크도 심어져 있다고 했는데 나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못하여 아쉬웠다.
수도사들은 약초를 연구하고 재배했을 뿐만 아니라 식물표본을 만들고 삽화를 그렸으며 이론적 정보를 기록한 의학서적을 만들어 지식의 전수에도 기여하였다. 그래서 이 뮤지엄의 글라스 갤러리(Glass Gallery)에는 약초와 관련된 의학 서적들, 식물 표본, 약재 도구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중세 수도원의 역할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는 이러한 자료들은 나의 흥미를 자극하였으나 시간이 많지 않아 자세히 살필 수 없어 아쉬웠다.
중세 교회 후진(apse)의 재현
이곳 미술관의 하이라이트는 앞에서 언급한 네 개의 클로스터스 외에 중세 교회의 애프스(apse)를 재현한 것이다. 애프스는 중세 교회의 제단이 위치한 반원형 공간을 뜻한다.
이곳에는 유럽 교회의 후진이 원형 그대로 재조립되어 있어 중세 교회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푸엔티두에나 채플(Fuentiduen Chaple) 애프스
맨 먼저 나타나는 후진은 퀵사 클로이스터 근처에 있는 푸엔티두에나 예배당이다. 로마네스크 홀을 지나 예배당 가까이로 가면 입구에서부터 교회 예배당의 아우라가 느껴지는 곳이다.
이곳은 스페인 푸엔티두에나에 있던 산 마르텐 교회의 에프스를 해체하여 이곳에서 재구성하여 예배당과 같은 갤러리로 만들었다. 오리지널 성당은 스페인 카스티야-레온 지역의 언덕에 1175~1200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MET는 1957년, 이곳의 남은 애프스를 스페인으로부터 구입하였다.
이 애프스의 중앙에 흰 참나무로 만든 예수 고상이 눈길을 끈다. 이 십자가는 스페인 카스티야-레온 지역에서 1150~1200년 경 제작되었다고 한다. 예수상은 황금 왕관을 쓰고 눈을 크게 뜨고 있는 모습이다. 십자가 상에서 살아있는 그리스도의 형상은 죽음에서 승리한 예수의 모습을 나타낸다고 하는데 로마네스크 스페인에서 이런 모습의 십자가 고상이 자주 발견된다고 한다.
뒤쪽의 프레스코 그림은 스페인 토레도 근처의 Era Mare de Diu de Capd'Aran 교회에서 발견된 것으로서 1100년경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이 교회는 피레네 산맥 근처의 외딴곳에 위치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잔틴 제국 예술의 영향을 받아 마리아는 아몬드 모양의 전신 후광을 입고 아기 예수를 무릎에 앉힌 모습으로 그려졌다. 좌우에는 대천사 가브리엘과 미카엘이 지키고 있으며 세 명의 동방박사들은 예수에게 선물을 바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이 교회는 1936년 스페인 내전 중에 약탈당하였고 그 후 이 프레스코화는 박물관과 개인수집가들의 손을 거쳐 메트 클로이스터가 매입하였다고 전해진다. 교회의 다른 우물들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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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곤 채플(Langon Chaple) 애프스
랑곤 채플은 12세기 프랑스 보르도 근처에 있던 랑곤의 Notre-Dame-du-Bourg 교회에서 가져온 재료들로 재구성하여 수도사들이 기도하던 공간을 복원하였다. 프랑스식 스테인드 글라스로 장식한 단정하고 간결한 로마네스크 건축 양식으로서 중세수도원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애프스의 간결한 모습과는 달리 입구 문의 석재 조각은 육중하면서 섬세하다.
고딕 채플(Gothic Chapel) 애프스
14~15세기 프랑스 성당의 고딕 예배당을 재현하였다.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높이 배치되어 있고 바닥에는 중세 기사와 수도사의 석조 무덤이 배치되어 있다. 스테인드 글라스 창문은 14세기 오스트리아 비엔나 근처의 성 예배당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이 외에도 수도사들의 간결한 생활 모습을 느낄 수 있는 장소가 퐁토 수도원 회합실(Pantaut Chapter House)이다. 이곳은 프랑스 남서부 아키텐 지방에 있던 퐁토 수도원(Pontaut Abbey)의 회합실 일부를 옮겨와 복원하였다고 한다. 퐁토 수도원은 12세기 시토회 성당이었다.
수도사들은 이곳에서 기도하고 모임도 하며 지냈다고 하는데 아무 장식 없는 로마네스크 풍의 건물이 수도사들의 간결한 삶을 느끼게 한다. 나는 이곳에서 중세 수도사들의 분위기를 가장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유니콘 태피스트리 룸(The Unicorn Tapestries Room)
클로이스터즈스 뮤지엄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이 유니콘 태피스트리 연작이라고 한다.
유니콘 태피스트리 룸은 유니콘을 사냥하는 연작 태피스트리가 전시된 방이다. 나는 처음에는 유니콘 그림이 한 방을 다 차지하고 있는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하였다. 15세기 플랑드르에서 직물을 짜서 이런 섬세하고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이 놀랍기는 했지만 수도원을 표방하는 이곳에 웬 유니콘 사냥 그림이 걸려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뒤에 기독교에서 유니콘을 예수와 동일시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 그림에서도 유니콘을 사냥하여 죽이는 모습이 예수의 수난을 나타낸다고 하고 맨 마지막으로 사로잡힌 유니콘이 부활하신 예수를 뜻한다고 하였다. 유니콘을 그리스도에 비유한 정확한 내막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위대한 장인정신의 보고임에는 틀림없다는 것은 인정하였다. 록펠러의 기증품이다.
지하층에 전시되어 있는 treasure Gallery도 나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나는 특히 수도사들이 필사한 성경과 삽화들이 포함되어 있는 책들 앞에서 발걸음을 뗄 줄 몰랐다. 딱 보아도 세월과 진귀함이 느껴지는 소장품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잔느 되브르의 시간들>이라는 책은 이 세상의 가장 유명한 채색필사본 중의 하나라고 하여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보았다. 이렇게 정교한 그림을 그려 넣고 있었을 수도사들을 생각하자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이 다시 떠올랐다. 실제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채색 필사본 책을 보다니 감동이었다.
그런데 그중에서도 가장 나의 눈길을 끄는 책은 식물을 그린 삽화 그림책이었다. 39종의 식물의 꽃그림을 그렸는데 화초를 정밀하고 아름답게 그렸고 거기에 벌, 메뚜기, 애벌레 같은 곤충을 상세하게 그려놓았다. 작가미상의 그림책이라고 하는데 이 화첩은 우리나라의 신사임당을 연상시켰다. 나 개인적인 생각에 신사임당의 작품을 곁에 놓는다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작품이기는 했다. 그러나 메트 뮤지엄에서는 이 작품을 진귀하게 여겨 이 화첩에 소개된 민들레와 아이리스, 엉겅퀴 등의 화초를 실제 보네퐁 클로이스터(The Bonnefont Cloister) 정원에서 재배하고 있고, 3개월에 한 번씩 이 책의 페이지를 바꿔 다른 그림을 관람객들에게 보여주고 있다고 하였다. 중세 식물 고증에 애쓰는 미술관 측의 수고가 느껴졌고 반면 우리나라는 신사임당의 식물을 위해 무슨 노력을 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클로이스터스가 소장한 또 하나의 유명한 작품은 로베르 캉팽이 그린 수태고지 그림이다. 세 폭의 제단화인 이 그림은 수태고지 작품 중에서도 가장 걸작에 속한다고 한다. 따로 메로데 룸(Merode Room)에 이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아직도 못다 언급한 보물들이 엄청 많다. 이 작은 미술관 안에 보물이 꽉 차있다.
하루 종일 둘러보아도 아쉬울 것만 같은 이곳을 떠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여행자의 한계이다.
트리에 클로이스터가 있는 건물의 웨스트 테라스에서 바라보면 바로 옆으로 허드슨 강이 흐른다. 허드슨 강 건너편으로 단풍이 곱게 든 뉴저지의 팰리세이드(Palisades) 공원이 보인다. 툭트인 시야에 보이는 녹색 공간이 마음까지 시원하게 씻어주는 것 같았다. 이 아름다운 전망을 위하여 록펠러가 허드슨강 건너편 땅을 매입하여 뉴저지 주에 기부하였다고 한다. 풍경까지 미리 산 통 큰, 긴 안목을 가진 부자가 미국에 있어 진짜 부러웠다.
메트 클로이스터스를 본 나의 소감은 이 세상에서 사라져 가는 중세의 보물들을 이곳에서 지켜주어서 고맙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야 의문을 가져보게 되었다.
중세를 찬란하게 빛냈던 수많은 수도원과 성당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