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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나이아가라 폭포 관람기(1)

미국 측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by 보현


사람들은 폭포 구경을 좋아한다. 높은 곳에서 신부의 베일처럼 곱게 떨어지는 폭포도 아름답지만 힘차게 떨어지는 물 폭탄이면 더욱 좋은 구경거리가 된다. 무언가 자연의 경이롭고 신비로운 에너지가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사전적으로 폭포란 높고 곧은 절벽에서 곧장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를 뜻한다. 그런데 말이 그렇지 높고 곧은 절벽 위에서 물이 모여 떨어지기란 쉽지 않다. 절벽 뒤편 어딘가에 대량의 수분 공급처가 있어야 가능한 현상이다. 그래서 폭포가 귀한 것이고, 세계 어디를 가도 비경으로 폭포가 꼭 끼어 있다.

게다가 폭포의 폭이 넓거나 길이가 길거나 수량이 많으면 압도적인 풍광을 연출하므로 대자연의 연주를 그대로 느껴볼 수 있다. 폭포구경을 마다할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미 동부에 왔으니 나이아가라 폭포에 가 보고 싶었다. 세계여행을 해본 사람들은 브라질의 이구아수 폭포나 잠비아의 빅토리아 폭포에 비하면 나이아가라 폭포는 볼품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브라질이나 잠비아로 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으니 나이아가라 폭포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운으로 여기고자 하였다.


우리 때문에 온통 신경 쓸 딸내외를 위해 남편과 나는 현지 여행사를 통해 나이아가라지역과 캐나다 여행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뉴욕에서 나이아가라 폭포로 가는 현지 여행사들이 많아 놀라웠다. 역시 한국사람들의 여행 의지는 뜨거운 것 같았다. 우리는 규모가 큰 한 여행사를 골랐다.


뉴욕의 코리아타운 앞의 출발지점까지 딸이 우리를 배웅하였다.

버스에서 다른 여행객들과 가이드와 간단히 인사를 나누었다. 뉴욕에서 출발한 버스는 한인밀집지역인 뉴저지의 한 슈퍼 앞에서 다시 손님 몇을 태워 나이아가라로 출발하였다.

뉴욕에서 나이아가라 폭포까지는 장장 8시간이 걸리는 여정이었다. 다행히 대형 버스가 배정되어 여행자들이 편안히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뉴욕에서 나이아가라 폴까지의 여정


우리 뒷자리에 앉은 부부와 통성명을 하고 보니 그분이 우리 대학에도 방문한 적이 있는 한인과학자였다. 몇 다리만 건너면 모두 아는 사람이라고 하더니 과연 한국은 좁은 사회라는 것을 실감하였다. 김박사는 한국의 명문 대학 출신으로서 미국에 유학온 후 아내와 함께 미국에 눌러앉았다고 했다. 미국 유수의 회사에 근무하였고 한국과학기술 자문역할로 한국을 방문하기도 하였으며(이때 우리 대학을 방문하였다) 지금은 라스베이거스에 거처를 마련한 체 세계 여행을 즐기는 중이라고 하였다. 내가 “라스베이거스요?” 하며 놀라자 부부는 “그곳 집값이 싸거든요. 세금 혜택도 좋아요. ”라고 하며 놀라는 나를 이해시키려고 하였다. 라스베이거스가 거주지로 별로라고 생각할 나의 편견을 깨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점점 그들의 삶이 흥미로웠다. 그들은 LA, 샌프란시스코, 시애틀 등 살기 좋다는 미국 여러 곳을 옮겨 다니다 지금은 집값이 싼 라스베이거스를 최종 거처로 삼았다고 하였다. 전에 살던 집을 처분하여 자식에게 좀 나눠주고 은행에 돈을 넣어놓은 후 이자와 투자 수익금으로 세계 각지로 여행을 다니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구를 돌아다니며 사는 노매드적 삶을 사는 인구가 늘고 있다고 하더니 김박사 부부가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내가 호기심을 보이자 그 부부는 자기들이 돌아본 지구의 여러 모습과 여행사의 장단점 및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눈 우정 등을 재미나게 소개하였다. 한 곳에 정착하여 안정된 삶을 선택한 나 같은 사람에게는 부러우면서도 신기한 삶의 모습이었다.

앞자리에 앉은 정사장 내외는 뉴욕에 거주하는 딸을 방문하러 왔다가 나이아가라 폭포 구경에 나섰다고 하였다. 정사장은 그동안 바쁘게 사느라고 아내와 함께 여행할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이제 정년퇴임을 하고 아내와 세계 여러 곳을 다녀볼 계획이라고 하였다.

좀 떨어진 뒷자리에 앉은 엄마와 딸은 친척 방문차 뉴욕에 왔다가 나이아가라 폭포구경에 나섰다고 하였다.

영미 씨와 친구 되는 분이 뉴저지에서 합류하였다. 영미 씨는 자그마한 키에 밝고 명랑한 여인으로서 온 좌석이 들리게 인사를 하며 차에 올랐다. 그녀 옆에서 어두운 얼굴의 그녀 친구가 조용히 미소를 보냈다. 영미 씨는 한국에 근무하던 한 미군의 열렬한 프러포즈를 받고 그 남자와 결혼한 후 남편과 함께 미군에 근무하고 있다고 하였다. 애리조나에 있는 공군의 군무원으로서 기지의 살림을 총책임지고 있다는 그녀로부터 그녀의 삶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영미 씨가 바쁜 중에 나이아가라 여행에 나선 이유는 함께 온 친구를 위해서라고 하였다. 영미 씨 곁에 말없이 앉아있는 영미 씨 친구는 60년대에 미국 유학을 온 선각자였지만 뭔가 사정이 좋게 풀리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얼마 전 남편과 아들을 잃고 슬픔에 빠져있다고 하였는데 본인도 당뇨병을 심하게 앓고 있다고 영미 씨가 귀띔해 주었다. 그래서인지 우울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노인이었다. 유학을 온 이래 한 번도 애리조나 지역을 벗어난 적이 없다는 그녀를 위해 영미 씨가 나이아가라와 뉴욕을 구경시켜 주기 위해 나섰다는 사연이었다. 영미 씨는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인듯했다. 긴 여정 동안 그녀의 살아가는 모습을 재미나게 들었다.

우리의 가이드는 꽤 나이가 든 듯 보이는 젊잔하게 생긴 분이었다. 직업군인 생활을 하다 제대 후 미국으로 이민 와 새 삶을 찾고자 하였으나 새 삶이 쉽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최근 가이드로 나서면서 인생의 활기를 되찾았다고 하였다. 굴곡진 인생을 만나면 그의 인생을 지지해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인지상정인가 보았다. 우리 팀원들의 가이드에 대한 숨겨진 배려가 느껴졌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여행길의 묘미인 것 같았다.


앞에서 소개한 이 사람들과 우리는 캐나다 여행까지 함께 하였다. 나이아가라 폭포까지 가며 나눈 이야기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우정을 나누게 하는 계기가 된 듯했다. 이들은 뱃줄식사를 하는 남편을 응원하기 위해서인 듯 식사할 때 한 테이블에 앉아 남편이 불편해하지 않도록 시간을 끌며 식사를 해주었고 보이지 않는 배려를 많이 해주었다.

남편은 우리의 수다에 참여하지 않고 우리들이 나누는 이야기들을 무심한 듯 듣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혼자 앉아있는(영미 씨는 바빴다) 영미 씨 친구분에게 관심을 표명해 주라고 나의 옆구리를 수시로 찔렀다.

아무튼 이때의 우정이 기반이 되어 이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것이 남편과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나이아가라 폭포까지 가는 여정은 길고 지겨울뻔했지만 이들과의 만남이 있어 지겨운 줄 모르고 갔다.


I-81 고속도로를 달리던 차가 뉴욕주의 Kirkwood 휴게소(I-81 Northbound Rest Area)에서 잠시 쉬었다. 가이드가 이곳에 유명한 물건이 전시되어 있으니 꼭 찾아보라고 우리들에게 과제를 주었다. 무엇인가 거창한 것을 기대하며 찾다가 마크 트웨인이 쓰던 타이프 라이터를 발견하고 그 앞에 발이 묶였다.

“이곳에 웬 마크 트웨인?”하고 의아해하는 나에게 가이드가 이곳과 마크 트웨인과의 관계를 설명해 주었다.


I-81 Northbound Rest Area에 전시되어 있는 마크 트웨인 유품들


마크 트웨인은 말년에 뉴욕주의 빙엄턴(Binghamton) 근처에 있는 소도시인 엘마이라(Elmira)에 살았다고 한다. 엘마이라는 그의 아내인 올리비아 랭던(Olivia Langdon)의 고향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허클베리 핀의 모험>을 포함한 여러 작품들을 집필했고, 사후에는 엘마이라의 묘지에 묻혔다고 한다. 엘마이라에는 그가 여름마다 머물며 글을 썼던 퀘리 농장(Quarry Farm 또는 서머 캐빈)이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마크 트웨인은 타자기를 사용한 최초의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이곳에 그의 타자기를 전시한 것은 이곳을 마크 트웨인을 기념하는 소규모 테마 공원으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인 듯 보였다. 이곳에 있는 사진 위 중간의 모습은 엘마이라에 있는 퀘리 농장의 전시실 모습이라고 하였다.

이 휴게소가 있는 Kirkwood에 마크 트웨인의 미니 기념관을 세운 이유는 이곳이 엘마이라에서 1시간 정도 떨어져 있고, 많은 여행객이 지나는 길목에 있기 때문에 이곳을 거쳐가는 여행객들에게 지역 문화유산을 알리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마크 트웨인의 흔적을 뜻하지 아니한 곳에서 마주할 수 있어 의외의 소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드디어 나이아가라 폭포에 도착하였다.

우리는 고트 섬(Goat Island)에서 미국 측 나이아가라 폭포를 관람하였다. 건너편에 번화하게 보이는 곳은 캐나다 측 나이아가라라고 하였고 미국 측 나이아가라 지역은 의외로 조용하고 한적하였다.


나의 첫 소감은 폭포의 높이가 별로 높지 않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이었다. 영화에서 가끔 보던 나이아가라보다 규모가 훨씬 작게 느껴졌다. 그러니 저 위에서 통을 타고 뛰어내렸어도 살아남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이구아수 폭포나 빅토리아 폭포를 본 사람들이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고 실망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이아가라 폭포로 떨어지려고 몰려오는 엄청난 물줄기의 행진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엄청난 물은 오대호에서 흘러온 것이라고 하였다.


미국측 고트 섬에서 바라본 나이아가라 폭포의 모습


물이 연달아 몰려오고 굉음을 내며 아래로 쏟아져 내리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마치 물에 딸려 내려가는듯한 아찔함을 느꼈다. 물의 엄청난 위력이었다. 과학의 초보자라도 물의 위력을 이용하여 전기를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에너지가 느껴졌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19세기말부터 수력발전소 건설지로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1895년 이곳에 수력발전소가 세워질 때 에디슨과 웨스팅하우스의 유명한 ‘전기 전쟁’이 벌어진 현장이 이곳이었다고 하니 쏟아지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마치 역사의 현장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당시 전기 보급은 직류 전기를 발전시킨 토마스 에디슨이 꽉 잡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또 다른 발명가 조지 웨스팅하우스(George Westinghouse Jr.)가 에디슨의 직류 전기 왕국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1881년에 유럽에서 교류 전기 실험이 성공하자 웨스팅하우스는 교류 발전의 저력을 꿰뚫어 보았다. 때마침 에디슨의 회사에서 뛰쳐나온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를 포섭한 그는 교류 발전 체계를 실용적인 수준까지 발전시키는 데 성공한다. 이때 테슬라가 교류 전력 시스템을 개발한 것이 결정적인 승기의 원인이 되었다. 에디슨과 웨스팅하우스의 ‘전기 전쟁’은 1893년 시카고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의 점등 계약을 웨스팅하우스-테슬라 콤비가 따내면서 사실상 결판이 났다. 거기에 쇄기를 박은 것이 1895년, 웨스팅하우스 전기회사가 나이아가라 폭포에 발전소를 세우면서 이다. 이로서 에디슨과 제너럴 일렉트릭은 ‘전기 전쟁’에서 완패하게 된다. 당시 나이아가라 폭포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는 40km 떨어진 버펄로(Buffalo)까지 성공적으로 전송되면서 전기시장의 새 장을 열었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테슬라의 교류 시스템이 세계 표준이 되는 결정적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한다.


고트 섬에는 니콜라 테슬라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이 동상은 1976년 미국의 건국 200주년을 기념하여 당시 유고슬라비아 연방정부가 미국에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유고슬라비아 출신인 테슬라를 조국에서는 영웅처럼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사실상 전기 전쟁을 주도한 사람은 조지 웨스팅하우스인데 그를 기념하는 기념물이 나이아가라에는 남아있지 않는 듯 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테슬라의 어깨를 웨스팅하우스가 토닥이고 있는 동상이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그냥 보현 생각이다.)

참고로 니콜라 테슬러와 오늘날 전기차 브랜드 테슬라는 이무 관계도 없으며 브랜드 이름은 니콜라 테슬라를 기리기 위해 붙여졌다고 한다. 테슬라가 발명한 AC 모터 기술이 현대 전기차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테슬라 수력 발전소(왼쪽)와 테슬라 동상(중앙), 그의 업적 소개(오른쪽)


나이아가라 폭포는 미국과 캐나다 사이의 국경에 있지만 미국 측에 말발굽 모양이 발달되어 있어 역설적이게도 캐나다 쪽에서 전망하는 것이 더 좋다고 하였다.


고트 섬에는 아카시 나무처럼 생긴 멋진 나무가 노란 단풍을 달고 있었다. 보스턴에서도 만났던 그 나무 이름이 다시 궁금해졌다.


고트 섬의 멋진 나무


저녁에 우리는 캐나다 측 나이아가라로 넘어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해서 캐나다 측 나이아가라 관람기를 써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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