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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Dec 10. 2024

허니 로커스트(honey locust) 나무 아세요?

미동부여행

보스턴에서 나의 눈길을 끈 것은 노랗게 단풍이 드는 아름다운 가로수들이었다. ‘Union Oyster House’라는 오래된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막 바깥으로 나선 참이었다. 눈앞에 늘씬한 가로수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잎 모양이 아카시나무처럼도 보이는데 아카시보다 더욱 잎이 촘촘하여 단풍 든 모습이 새댁처럼 고왔다. 처음 보는 나무라 나무 이름이 궁금하였다.     

 

보스턴의 허니 로커스트 가로수


나는 낯선 도시에 가면 그 도시의 가로수가 무엇인지 궁금해한다. 그리고 왜 그 도시는 하필이면 그 나무를 선택했을까도 궁금하다(궁금한 것이 많다).


함께 간 식구들에게 나의 궁금증을 토로해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남편은 “아카시나무는 아닌 것 같아”라고 하였고 사위는 아예 나무에 관심이 없었고 딸은 “어, 저 나무 뉴욕에도 많이 있는데... 뭐지?” 하는 반응이었다. 보스턴에서는 그 궁금증을 그냥 마음에 두고 지나갔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갔을 때였다.

그곳에서 다시 한번 멋진 그 나무를 만났다. 함께 간 일행에게 “혹시 저 나무 이름 아는 분 계세요?”하고 물어보았더니 김박사 사모가 “허니 로커스트라고 나오는데요”하며 담박 알려주었다. 나는 너무 반가워 “어! 어떻게 아셨어요?”하며 신기해하였더니 “구글 검색을 하면 웬만한 나무 이름은 알 수 있어요”라고 했다.

나는 머리를 쳤다. 그래 사람들에게 물어볼 것이 아니라 검색 엔진을 사용하면 될 것을. 바보같이!

“확실히 나는 구식이구나”하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나이아가라 폭포 앞 공원의 허니 로커스트 나무


‘허니 로커스트(honey locust)’라!

나는 꿀(honey)과 메뚜기(locust)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나무 이름이 신기하였다.

허니 로커스트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 자연히 ‘로커스트 빈 검(locust bean gum)’이 떠올랐다. 로커스트 빈은 우리말로 ‘메뚜기 콩’이라고 부른다. 콩이라고 하면 메주콩이나 완두콩처럼 채소를 생각하기 쉽지만 메뚜기 콩은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이다. 콩과식물 중에는 이렇게 나무에 콩이 열리는 것들이 꽤 있다. 회화나무나 아카시나무, 박태기나무, 타마린드 같은 것들이 여기에 속한다.


메뚜기 콩에서 식품첨가제로 사용되는 중요한 천연호료를 추출하고 있는데 그래서 검(gum)이란 이름이 붙었다. 호료(糊料)는 식품을 끈적하게 하는데(점증제) 널리 쓰이고 있기 때문에 식품업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 콩깍지의 여문 모습이 마치 메뚜기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펄프에는 달콤한 과즙이 들어있어 로마시대부터 천연감미료로도 쓰였던 식물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캐롭(carob) 나무라고도 한다.

   

로커스트 빈의 열매(좌), 꼬투리 및 종자(우): 사진 Wikipedia


나는 보스턴과 나이아가라뿐만 아니라 뉴욕, 뉴저지, 워싱턴 DC, 메릴랜드, 리치먼드, 버지니아 등 미동부 지역을 여행할 때 어디서건 이 나무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허니 로커스트가 캐롭의 로커스트 빈과 유사한 종류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일단  이 나무의 열매를 보아야 메뚜기를 닮은 지, 아닌지 알겠는데 도무지 열매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


딸은 이 나무의 가로수 아래를 늘 지나다니면서도 한 번도 꽃 핀 모습을 본 적이 없다면서 이 나무에 열매가 생긴다는 나의 설명에 의아해하였다. 자료에 의하면 허니 로커스트 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려면 적어도 15-20년은 걸려야 한다니 꽃을 보기가 쉽지 않을 것 같기는 하다. 또 일설에 의하면 가로수에서 떨어지는 콩들을 처리하기가 버거워 대도시에서는 아예 가로수로서 수나무를 많이 선택한다고도 한다. 은행나무 암나무의 신세와 같다고나 할까.

그런데도 나는 허니 로커스트 나무만 보이면 혹시나 열매가 열렸을까 하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지성이면 감천이랄까 드디어 뉴욕 거리에서 열매가 달린 허니 로커스트 가로수를 만났다.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내가 보기를 소원하여 그렇지 사실 나무에 매달려있는 꼬투리의 모습은 벌레가 잔뜩 붙은 듯 썩 아름답지는 않았다. 메뚜기떼가 붙어있는 것도 같았다.


허니 로커스트 꼬투리가 달린 나무 모습


더욱 운이 좋게도 헤리스버거의 <전쟁기념관> 앞 공원에서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콩 꼬투리를 발견하였다. S자 모양으로 비틀린 꼬투리 안에 작은 열매들이 들어있었다.

로커스트 빈(carob)의 한 꼬투리 안에는 씨앗이 대개 15개 정도 들어있는데 무게가 일정(0.2g)하여 다이아몬드의 질량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는 캐럿이라는 용어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애석하게도 저울이 없어 허니 로커스트 열매의 무게는 알 수 없었다.


허니 로커스트의 콩 꼬투리

   

우리나라에도 이와 유사한 나무로 ‘주엽나무’가 있다고 한다. 주로 고산지에 분포한다고 해서인지 나는 아직 본 바가 없는 나무로 여겨진다. 어디선가 마주쳤는지도 모르겠지만 인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사진을 찾아보니 주엽나무는 미국의 허니 로커스트와 매우 유사하게 보인다.  ‘주엽나무’에도 커다란 콩이 열리고, 열매가 익으면 내피 속에 끈적끈적한 잼 같은 달콤한 물질이 생긴다고 한다. 이 달콤한 과육을  먹으려고 동물과 곤충들이 달려들므로 열매가 달리는 20~30년부터는 열매를 보호하기 위하여 큼지막한 가시가 생긴다고 한다. 미국에서 허니 로커스트 나무를 보았을 때 특별히 가시가 인식되지 않았는데 우리나라의 주엽나무 줄기에는 가시가 많이 달려있어 놀라웠다.


주엽나무 줄기의 가시(왼쪽)과 콩 꼬투리(중앙), 꽃(오른쪽) 사진 by: 농사로


그런데 미국의 허니 로커스트의 학명이 Gleditsia triacanthos인데 비해 우리나라를 위시한 동아시아에 분포하는  주엽나무의 학명이 Gleditsia japonica Miq.로서 다른 로커스트 나무(지중해의 로커스트 빈의 학명은 Ceratonia siliqua이고 아프리카의 로커스트 빈의 학명은 Parkia biglobosa이다)에 비해 미국의 허니 로커스트와 근연성이 더 높음을 알 수 있었다. 미국 허니 로커스트 나무는 언제 가시를 잃어버린 것일까?

 

메뚜기 콩(locust bean)은 성경에도 나온다.  

<돌아온 탕자> 이야기로 잘 알려져 있는 복음에서 이 나무가 주엄나무라고 소개되고 있다.

탕자는 아버지의 재산을 다 탕진하고 배가 너무 고픈 나머지 돼지사료로 사용되는 주엄나무 열매라도 먹으려고 하였으나 그마저도 아무도 주지 않았다고 하는 대목이다. 여기에 나오는 pods가 주엄나무 즉 로커스트 빈의 콩 꼬투리를 가리킨다. 예전부터 중동지역에 메뚜기 콩 나무가 많았던가 보았다. 지금도 캐롭 나무의 75%가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모로코 등지에서 자란다고 한다.  현재 캐롭은 여러 용도로 사용되고 있지만 과거에는 주로 동물의 사료로 사용되었던가 보았다.     


그런데 <탈무드>에 소개되어 있는 로커스트 빈 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보면 이것이 꼭 사료로만 사용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옛날 한 젊은이가 길을 가다 호호백발노인이 메뚜기 콩 씨를 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젊은이는 이 노인에게 “30년이 되어야 열매가 달리는데 노인께서 지금 씨를 뿌려 무슨 소용이 있겠소? 열매가 열릴 때쯤이면 당신은 이미 세상에 없을 텐데요.”’라고 비웃듯 말을 했다. 그러자 이 말을 들은 노인이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씨 뿌리는 게 아니고 내가 남이 심은 메뚜기 콩 나무 열매를 먹었으니 나도 남을 위해 나무를 심어야지요. 훗날 내 자식 또는 그 자식의 자식들이 이 나무 열매를 먹으며 감사하게 생각하지 않겠소?”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에 의하면 메뚜기 콩은 당시 소중한 식량자원이었음을 나타낸다.

꼭 메뚜기 콩 나무가 아니더라도 나무가 자라 열매를 맺으려면 시간이 걸린다. 감사할 줄 알고, 은혜를 갚으려는 노인의 지혜가 참 멋지게 느껴지는 이야기이이다.


미국에서 허니 로커스트 나무를 실컷 보았다.  실컷 본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이 나무는 미국 중동부지역 전역에서 잘 자라고 북쪽한계가 나이아가라 인근지역이라고 한다. 미국 동부의 오래된 동네에는 거의 언제나 허니 로커스트 나무가 있었다.


미국에 왜 허니 로커스트를 가로수로 많이 심었는지 알고 보니 이 나무가 도시의 혹독한 환경에서도 적응력이 높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무 땅에서도 잘 자라고 토양의 PH를 탓하지 않으며 가뭄에도 잘 적응한다. 빠르게 자라고 크게 자라면서 곧게 자라 올라 보행자들을 방해하지도 않는다. 염분화된 땅에서도 잘 견딘다. 더구나 단풍이 들면 아름답다. 이만한 조건이면 가로수로 완벽하지 않은가!

가로수일 때 가시는 귀찮기만 한 존재이니 가시 없는 종을 개발하였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동아시아 원산의 이 나무가 베링 해를 건너 북미지역으로 퍼져나갔다고 한다. 1630년대에 뉴잉글랜드에 정착한 이민자들은 콩 꼬투리가 잔뜩 열리는 이 나무를 보고 "메뚜기 콩"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10월 말이 되자 뉴욕의 허니 로커스트 나무에 작은 전구들이 달리기 시작한다. 크리스마스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나무가 허니 로커스트이다. 아득한 먼 옛날, 아시아에서 이민온 이 나무가 1960년대에 이 땅을 밟은 이민자들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을 상상해 보자 묘한 자연의 순환이 느껴졌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 뉴욕의 허니 로커스트 나무

우리나라의 고산 산간에서 볼 수 있다는 주엽나무도 도심의 가로수로 적용시켜 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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