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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현 Dec 12. 2024

폭설, 계엄 그리고 우리의 삶

분노를 넘어

   

2024년 11월 27일, 엄청난 눈이 내렸다. 눈은 밤새 내린 것 같더니 아침부터 또 하루 종일 내렸다. 아파트 마당이 온통 새하얀 눈으로 덮였다. 117년 만의 폭설이라고 한다. 그것도 습기를 잔뜩 머금은 습설(濕雪)이라 눈의 무게가 상당하다고 하였다. 눈으로 전봇대나 나무가 쓰러지면서 정전사고와 인명피해까지 나왔다고 한다. 오후가 되자 걱정이 되어 차를 덮은 눈을 치워보았다. 쌓인 눈이 족히 50cm는 될 것 같았다.       

건너편의 느티나무 가지가 눈 무게에 눌려 한껏 휘어져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러다 가지가 부러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앞섰다.      


2024년 11월의 폭설


다음 날은 양재천으로 나가보았다. 양재천의 나무들 역시 눈의 무게에 눌려 부서진 가지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가장 피해를 많이 입은 나무는 참느릅나무였다. 천변의 산책로 가에 쭉 심겨 있는 참느릅나무의 경우 거의 대부분의 가지가 부러져 참혹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길 건너편의 버드나무들도 부러진 가지들이 꽤 보였다. 회화나무들의 피해도 막심한 듯하였다. 무언가 강인한 느낌을 주던 소나무조차 생가지가 뚝뚝 부러져 있었다.      

큰 피해를 입은 참느릅나무들


가지가 부러진 버드나무들


가지가 부러진 소나무


영동 2교까지 걸어갔다가 다시 영동 5교 쪽으로 되돌아오면서 양재천 시찰을 하였다. 다행히 양재천의 자랑거리인 메타세쿼이아 나무는 멀쩡하게 보였다. 은행나무도 벚나무도 별 피해를 받지 않은 것 같았다. 든든한 양버즘나무는 커다란 몸을 꿋꿋이 세운 채 눈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유독 참느릅나무나 버드나무, 소나무가 눈 피해를 많이 입은 것은 나무 재질이 약하기도 하거니와 아직도 나무에 무언가를 많이 매달고 있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느릅나무는 가을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데 하얀 열매가 겨우내 나무를 덮고 있다. 버드나무도 온난화 탓인지 늘어진 잎이 아직도 푸르게 매달려 있다. 소나무도 옆으로 가지를 뻗다 보니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메타쉐콰이어는 아직도 빨간 낙엽을 왕성히 매달고 있는 데도 말짱하였다. 삼각형으로 위로 솟아오른 형태가 습설의 피해를 막아준 듯했다. 본래 추운 지방에서 자라는 침엽수림들은 눈 피해를 입지 않으려고 삼각형을 이룬다고 한다.


양재천의 메타세쿼이아


그러고 보니 습설의 피해를 별로 입지 않은 은행나무도 나뭇잎을 떨어뜨린 모습은 영락없는 삼각형이다. 미리 잎을 떼어내는 것이 나무들의 눈 대책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눈 무게 때문에 가지가 휘어진 느티나무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으나 의외로 눈이 그치자 휘어진 가지는 본래 자리로 복원되는 모습을 보였다. 역시 오랜 세월을 견디는 나무에는 장수 비결이 심어져 있는 것 같다.      

2024년 12월 3일 밤 한국의 대통령은 뜬금없이 계엄령을 선포하였다.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에 일어나는 편이다. 이날도 새벽에 TV를 켰다가 계엄 어쩌고 하는 뉴스를 보고 또 어느 나라에서 저런 짓을 벌이나 하고 혀를 끌끌 찼다. 그러다 그게 우리나라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순식간에 의아함이 경악으로 바뀌었다. 내가 평화로이 자고 있던 그 시간에 대한민국에 계엄령이 발령되었다가 해제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것이다.     


2024년 12월 계엄령을 선포한 대한민국 대통령


117년 만에 중부지역을 뒤덮은 눈보다 더 엄청난 쓰나미가 밤새 이 나라를 덮쳐왔던 것을 생각하면 평화로이 잠들었던 내가 미련둥이같이 여겨질 정도였다. 깨어있던 시민들과 국회의원들의 신속한 활동으로 계엄령을 해제할 수 있었다니 불행 중 다행인 것 같았다. 하지만 엄청난 쓰나미 뒤에 닥칠 피해가 여간 걱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앞으로 이 땅의 평화를 믿으며 안심하고 잠자리에 들 수 있을까?

한 사람의 좌절과 울분이 나라를 하루아침에 곤두박질치게 했다는 사실이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폭설이 그쳤다.

눈에 대비한 삼각형의 나무들은 멀쩡히 폭설을 견뎠다. 단단한 나무들도 부러지지 않고 자연의 재해를 견뎌내었다. 눈 무게로 가지가 휘어져 거의 땅에 까지 늘어졌던 느티나무 가지들이 눈이 녹자 멀쩡하게 본래의 형태로 돌아가 있었다.

나는 늘 느티나무를 지혜로운 나무라고 생각해 왔다. 이 나무는 뻗을 자리를 보아 가지를 뻗는다. 햇볕이 좋은 양지바른 곳에 홀로 있으면 둥그런 캐노피를 만들어 햇볕을 마음껏 즐긴다. 그러다 도심의 가로수로 빽빽이 심어지면 역삼각형으로 몸을 만들며 햇볕을 서로 사이좋게 나눌 줄 안다.      


대한민국에 예상치 못한 쓰나미가 닥쳐왔다.

대한민국이 어떻게 오늘까지 왔는가를 생각하면 기가 막힌다. 대한민국은 세계에 희망을 보여준 국가였다.

6.25 전쟁의 폐허 위에서 불과 70여 년 만에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며 세계 5위 군사 강국으로 성장하였다. 1인당 국민소득도 G7의 어느 국가를 추월했다. 한국은 이런 하드파워뿐만 아니라 K컬처로 말하는 소프트파워는 세계적 영향력을 미칠 정도로 막강한 나라가 되었다. K팝, K시네마, K푸드 등이 있고 노벨 문학상 수상자까지 배출한 나라가 되었다. 한국은 이제 문화적으로 세계에 영감을 주는 나라로 우뚝 섰다.

나는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 이민자들이 조국을 향해 뿌듯해하는 모습을 알고 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이게 뭔가!


백범 김구 선생은 일제에 쫓기면서도 미래의 대한민국에 대해 ‘선(善)으로 우뚝 서는 문화의 나라’를 염원하였다. 지금 이 나라를 ‘선(善)으로 우뚝 선 나라’라고 할 수는 없지만 ‘문화의 나라’라는 염원은 이 세대에 가까워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한 사람의 오판으로 이 모든 것이 정지되거나 후퇴하게 되었으니 어이가 없음을 넘어 통탄스러울 지경이다.      


이 한국을 세계인들이 바라보고 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

우리는 숱한 역사의 변곡점들을 지나왔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슬기를 모아 어려움을 헤쳐 나왔다. 우리 민족은 느티나무의 슬기를 지닌 민족이다. 폭설에 잠시 가지를 늘어뜨렸다가 눈이 그치자 제자리로 돌아가는 느티나무처럼 우리도 이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설 것임을 믿는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백범 선생이 꿈꾼 대한민국을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백범 선생이 꿈꾼 부강하면서도 선과 도덕을 바탕으로 한 깊은 문화적 자존심을 가진 나라를 이룰 수는 없는 것일까?

한국의 가장 큰 문제로 ‘철학의 결핍’을 꼽는 석학들이 많다. 특히 정치 지도자들의 몰염치하고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권력싸움은 국민들을 분열시키고 화나게 하며 정치에 대한 혐오감을 극도로 높이고 있다. 사회 지도자들도 개인의 영달과 부와 명예만 좇는 이기적인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제 믿을 바는 우리 국민들의 이성밖에 없을 것 같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까?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 제일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위기의 대한민국을 되돌리는 길이라고 생각된다.

분노를 삼키고 차분하고 냉정하게 자기 역할을 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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