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아 내가 왔다
또 꽃밭 재건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
지난여름, 꽃밭 재건에 나선다고 공언해 놓고서 이 겨울에 다시 꽃밭 재건에 나서게 생겼다. 이러다 재건만 하다 제대로 꽃을 피우지도 못할까 걱정된다.
이번에 또 시골집을 방기한 이유는 10월에 한 달간 미국을 다녀왔기 때문이었다.
작년에 아들네 방문에 이어 이번에는 뉴욕에 살고 있는 딸네를 보러 갔다. 남편은 여전히 뱃줄 식사에 의존하고 있어 사실 먼 곳으로의 여행에는 여러 어려움이 따랐다. 그런데도 남편은 딸네가 사는 모습을 꼭 한번 보고 싶었는지 무리하게 여행길을 결심하였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 그러니까 지난 9월에 마지막으로 꽃밭을 둘러보러 산청으로 갔다. 잔디도 깎아 주고 정원도 정비한 다음 미국으로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날 웬 가을비가 엄청나게 왔다.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부어 겨우겨우 시골집에 닿을 수 있었다. 잔디도 손을 대지 못하였고 푹푹 빠지는 마당에는 들어서지도 못하였다.
11월 초에 미국에서 돌아왔지만, 고된 여정 탓이었던지 남편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였다. 내 마음은 나의 꽃밭이 궁금해 안절부절못하였지만, 남편이 몸을 추스를 동안 그냥 남편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 12월 초에야 시골로 가게 되었다. 거의 3개월 만의 시골행이었다.
서울에서 산청까지의 길은 나이 탓인지 점점 천로역정만 같이 여겨진다. 전에는 가뿐하던 300km의 거리가 이제는 한없이 멀게 느껴졌다.
시골집에 겨우 도착하자 꽃밭의 을씨년스러운 모습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메리골드와 백일홍, 코스모스, 옥잠화와 목수국의 마른 꽃대 등이 전성시대의 영화를 잃고 볼성사납게 말라있었다. 마른 줄기가 된 저 식물들은 한창 예쁜 꽃을 피워 우리 정원을 생기 있게 해 주던 것들이었다. 지난여름 그토록 땀을 흘리며 심어둔 국화는 아직 몇 개가 꽃을 피우고 있어 나의 서운함을 약간은 덜어주었다.
나는 짐을 대강 집안에 던져놓고 정원에 말라 있는 꽃대를 뽑기 시작하였다. 메리골드의 씨앗들이 떨어지기 싫다는 듯 내 옷에 마구 달라붙었다. 나는 달라붙는 메리골드들을 달래며 뽑아 바깥 솥 곁에 모아두었다. 좀 더 말려 다음번에 올 때 태울 생각이었다. 남편도 작업복 차림으로 나오더니 나의 일을 거들었다.
마른 식물 대를 다 제거하자 정원이 꽤 정리가 된 듯 보였다. 그제야 조금 한숨을 돌렸다. 그런데 마른풀 속에 숨어있던 작은 코스모스 꽃이 보였다. 아직도 나를 기다려준 그 작은 꽃에 울컥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겨울인데 인제 꽃을 피워서 어떡하냐 하는 걱정에 코스모스를 고이 쓰다듬어 주었다.
그런데 땅바닥에 새파랗게 자라 있는 쇠뜨기 풀이 눈에 들어왔다. 아뿔싸! 내가 방치한 지난 3개월 동안 쇠뜨기 풀들이 또 마음껏 자랐구나!
쇠뜨기 풀은 정말 골치 아픈 녀석이다. 잠시만 방심하면 왕성하게 번식하여 모든 땅을 자기들의 영토로 만들어 버린다. 겨울이라 내버려 두면 내년 봄에는 엄청난 기세로 자라 나의 정원을 파란 쇠뜨기 카펫으로 만들고 말 것이다.
쇠뜨기 풀이 얼마나 박멸이 어려운지 농부들도, 나도 이 풀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 그도 그럴 것이 쇠뜨기 풀은 속새과로서 이 지구상에서 식물이 분화할 때 차상분지의 분지방법을 버리고 가장 먼저 단축분지를 택한 위대한 식물이다. 그러니 만치 쇠뜨기는 생존 기술이 탁월하다.
쇠뜨기의 번영은 뛰어난 번식 방법 때문이다.
이른 봄에는 땅속에 있는 뿌리줄기에서 연한 고동색의 생식경이란 줄기를 내어 포자를 만들어 낸다. 이 포자가 성숙되면 바람을 타고 온 땅에 넘치도록 흩뿌려진다.
여름에는 본격적으로 영양경(줄기)을 내어 온몸으로 광합성을 한다. 그 에너지를 땅속 깊이 보내어 뿌리를 깊고 넓게 뻗어 내린다. 뿌리줄기에서는 새로운 가지를 계속해서 내보내기 때문에 한 번 자리 잡으면 좀처럼 박멸하기가 어렵다.
나는 쇠뜨기 풀만 보면 전의에 불타오른다. 쇠뜨기 풀 제거에 특화된 괭이도 있는 모양이지만 나는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쇠뜨기와의 전투에 나선다. 내가 쓰는 무기는 삽과 호미이다. 삽으로 땅을 깊이 파고 호미로 뿌리를 하나씩 파내는 방법이다. 쇠뜨기 풀의 뿌리는 어른 키만큼 땅속 깊이 자란다고도 하지만 내가 뽑은 가장 긴 놈은 50센티 정도의 길이였다. 뿌리의 마지막에는 동그란 동전 같은 것이 달려 나오는데 이것이 쇠뜨기뿌리의 출발점이다. 포자에서 시작된 뿌리인지도 모르겠다.
쇠뜨기와의 전쟁은 다음 날도 계속되었다. 벌써 땅이 언 듯 그늘진 땅에는 삽이 잘 들어가지 않았다. 나는 삽을 강하게 눌러 땅을 파고 호미를 휘둘러 쇠뜨기 풀을 파낸다. 손목과 발목, 종아리 근육을 힘차게 움직여야 한다. 손목의 통증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근래 계속 손목이 아팠다. 나는 지난봄 손자를 안아주다 얻은 병인가 하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깨달았다. 쇠뜨기 풀과의 전투를 벌이다가 얻은 골병 같았다. 나의 가는 손목은 강인한 쇠뜨기와의 전투에 지고 만 것일까? 제대로 꽃밭도 하나 만들지 못하고 벌써 골병이 든다면 너무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쇠뜨기를 파낸 자리를 골라 지난해 샌프란시스코에서 사 온 포피 씨앗을 뿌렸다. 그리고 그 위를 흙으로 덮어주었다. 벌써 올여름에 꽃을 피웠다 떨어진 씨앗에서 꽃양귀비의 새순들이 자연발아하여 여기저기 올라오고 있었다. 수국에도 새순이 맺혀있고 천리향 나무에 꽃이 열리며 작약 뿌리 근처에 빨간 새순이 고개를 내민다. 홍매 가지에도 붉은 물이 올랐고 가만히 보니 작은 꽃망울이 달려있다. 12월에 땅은 벌써 봄을 준비하고 있었다. 방기한 주인을 원망도 하지 않고 꽃들은 알아서 자기의 시간표대로 성장하고 있었다. 왠지 모를 감격이 울컥 올라왔다.
나는 창고에 모셔둔 알뿌리들을 서둘러 꺼내었다. 튤립과 수선화 구근이었다. 수선화는 그새 번식을 많이 하여 작은 알뿌리들이 잔파뿌리처럼 늘었다. 나는 삽으로 땅을 파고 알뿌리들을 정성스레 묻었다. 이 겨울의 추위를 견디고 내년 봄에 꽃들이 아름답게 나의 정원을 채워주기를 꿈꾸었다.
아!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골병이 좀 들면 어떠랴!